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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 불신'의 그림자…"재판도, 법관도 믿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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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부 수사 그 후①]

지난해 여름 시작된 검찰의 사법농단 수사가 양승태 전 대법원장 등을 기소하며 8개월 끝에 마무리 수순을 밟고 있습니다. '재판 거래' 등 믿을 수 없는 일들이 사실로 확인되면서 우리 사회에 '사법 불신'의 그림자는 그 어느때보다 짙게 드리워져 있습니다. 문제는 이런 초유의 사태도 너무 쉽게 잊혀진다는 건데요. 사법농단 사태를 취재했던 CBS법조팀이 '사법부 수사 이후' 관심을 갖고 지켜봐야할 부분들을 정리해봤습니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 "재판도, 법관도 믿지 않는다"
계속


성창호 부장판사.(사진=연합뉴스)

 

2019년 봄. 성창호, 정준영 등 판사들의 실명이 포털사이트의 '급상승 검색어'에 오르는 세상이 됐다. 소위 좋은 일로 '뜬'게 아니라 조롱과 비아냥의 대상이라 당사자뿐만 아니라 이를 바라보는 이들마저 뒷맛이 씁쓸하다.

성 판사는 1심에서 김경수 경남도지사에 대해 징역 2년을 선고하고 법정구속시키면서 네티즌들의 입길에 올랐다. 해당 판결을 '양승태 키즈'의 보복이라고 아무렇지도 않게 얘기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이후 검찰이 사법농단 연루 혐의로 성 판사를 기소하고, 법원이 성 판사의 '재판 업무'를 배제하면서 성 판사는 본의아니게 연일 논란의 중심에 서고 있다.

최근 이명박 전 대통령에 대해 보석을 허가한 정준영 판사 역시 관련 기사에 "사지를 찢어 죽이자"는 악담 댓글이 서슴지 않게 달리는 등 곤혹스럽기는 마찬가지다.

백번 양보해 판사의 재판 업무가 평생 '업(業)'을 쌓을 수 밖에 없는 일이라도 해도, 이런 막무가내식 인신 공격은 추락한 법원의 현 모습과 적확하게 오버랩되는 측면이 있다.

물론 앞뒤 재지 않고, 자신과 생각과 다른 판결에 대해 무자비한 비난의 화살을 쏘아대는 '마녀사냥'식 비판은 비단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초유의 '사법농단 수사'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구속되는 등 작금의 법원은 말 그대로 쑥대밭이 됐지만, 따지고 보면 사법부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는 예전에도 존재했다는 말이다.

'유전무죄 무전유죄'는 저잣거리의 삼척동자도 흥얼거리는 얘기가 됐고, 고무줄처럼 늘었다 줄었다하는 '형량 잣대'는 판사들의 전유물처럼 느껴진 지 오래다. 더 나아가 '제식구 감싸기'라는 말은 아예 법원 용어처럼 들릴 정도다.

하지만 '사법농단 사태'를 겪으면서 사법부에 대한 불신은 "설마, 아니겠지"하는 최후의 보루를 넘어 아예 돌아오지 못할 강을 건넜다는 평가가 나온다.

막연히 사법부 전체에 대한 불신이나 특정 판결 결과에 대한 불만 섞인 목소리가 아니라 이제는 사법부 구성원인 법관들을, 그리고 그들의 손에 의해 좌우되는 재판을 더 이상 믿지 않겠다는 의사가 공공연하다는 것이다.

특히 이번 사태를 통해 만천하에 드러난 사법행정권 남용과 재판거래는 국민들에게 '재판이 법률과 판사의 양심이 아니라 자신들의 사적 이익을 위해 정치권과도 '딜(거래)'을 할 수 있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각인시켜 준 셈이 됐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사진=박종민기자/자료사진)

 

실제로 지금까지 검찰 수사로 베일이 벗겨진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의 행태만 봐도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특정 판사에게 특정 사건이 가도록 배당 조작을 하고, 일본 전범기업을 대리한 특정 로펌의 소송서류를 검토해주는 법원은 소설 속이 아니라 현실속에 자리잡고 있었다.

남들의 비자금 조성은 엄히 다루면서 자신들은 공보관실 운영비를 통해 '쌈짓돈'을 만들어도 괜찮다는 '내로남불', 검찰이 청구한 영장은 줄줄이 기각하면서 그 안에 들어있는 정보는 빼돌려 윗선에 보고하는 행위에는 일말의 거리낌도 없었다.

판사 사찰, 즉 '법원 블랙리스트'로 촉발된 이번 사법농단 사태는 실은 법원 내부에서 자체 해결할 기회가 여러번 있었다.

검찰 수뇌부 역시 사태 초기에, 삼권분립 차원에서라도 '법원 내부 해결'이 가장 합리적인 방안이라고 거듭 강조하기도 했다.

하지만 사법부는 이미 자정 능력까지 심각하게 훼손된 상태였다. 사법부는 3차례에 걸친 대법원 자체조사 결과를 언급하며 '블랙리스트는 없다'고 공언했지만, 사실과는 거리가 상당히 있었고 결국 '검찰 수사'가 불가피했다.

지금의 '사법 불신'이 하늘에서 갑자기 '뚝'하고 떨어진 게 아니라, 법원 구성원들 스스로가 그런 씨앗을 심었고 남몰래 키워낸 결과물이라는 말이다.

통계로 본 사법부의 추락은 더 적나라하다. 지난해 6월, 사법농단에 사태에 대해 대법원이 '눈가리고 아웅'할 때 여론은 싸늘했다. 리얼미터가 CBS 의뢰로 한 설문조사에서 사법부 판결을 신뢰한다는 응답은 조사 대상자 가운데 27.6%에 불과했다. 다시말해, 열에 예닐곱은 재판을 신뢰하지 않는다고 답한 것이다.

지난해 검찰의 사법농단 수사가 한창일 때, 법원과 검찰은 전현직 판사들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놓고 충돌했다.

당시 법원은 이들에 대한 영장을 줄줄이 기각하며 "정당하게 법과 원칙에 맞게 구속영장을 발부 여부를 결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검찰은 "이번 수사는 법원의 적폐를 청산하는 작업이다. 법원이 살아야 검찰수사도 살고 그래야 나라도 산다. 한번은 정리하고 가야하지 않겠나"라고 물러서지 않았고, 여론은 검찰의 손을 들어줬다.

대법원 전경(사진=자료사진)

 

병은 숨기는 게 능사가 아니고, 환부는 제대로 도려내야 살길이 있는 것이다. '그들만의 리그'에 박수쳐줄 국민은 더이상 없다.

적당한 지 여부는 차치하더라도 법원의 환부는 도려졌다. 이제 사법농단 사태의 근원적 배경이었던 대법원장의 권한, 그리고 대법원장을 보좌하는 법원행정처를 어떻게 개편할지 내부의 지혜를 모아야할 때다.

그렇지 않는다면 지난해 11월 말, 헌정사상 처음으로 대법원장에게 화염병 테러를 저지른 70대가 경찰에 붙잡힌 뒤 소리질렀던 말을 또 들어야할지도 모른다.

"이 사건은 당연무효입니다. 당연무효입니다."

'사법 불신'이 하늘을 찌르는 데, 땅에서 '법원 개혁'을 하겠다는 말은 상상할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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