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물·횡령 등 혐의로 1심에서 징역 15년을 선고받은 이명박(78) 전 대통령이 6일 오후 서울 서초구 고등법원에서 열린 속행공판을 마치고 호송차로 이동하고 있다. 서울고법 형사1부는 이날 이 전 대통령이 청구한 보석을 조건부로 허가한다고 밝혔다. (사진=이한형 기자)
이명박 전 대통령이 구속된 지 349일 만에 조건부로 풀려난다. 자택에 구금하고 변호인과 혈족을 제외한 접견·통신도 엄격히 제한하는 조건이다.
6일 서울고등법원 형사1부(정준영 부장판사)는 다스 비자금 횡령과 삼성 뇌물 등의 혐의로 구속기소된 이 전 대통령의 항소심 공판에서 보석 청구를 조건부로 허용했다. 지난해 3월 22일 구속된 후 약 1년 만의 석방이다.
보석 조건은 사실상의 '자택구금'이다. 주거지를 서울 논현동 사저로 한정하고 배우자와 직계혈족, 변호인 외의 접견·통신도 제한한다. 특히 이번 재판과 관련된 사람과는 가족과 변호인 등을 통한 접촉도 엄격히 금한다. 보증금은 10억 원의 보증서로 갈음했다.
이러한 조건들은 이 전 대통령이 앞서 보석을 청구하면서 명시한 것과 상당히 차이나는 수준이다. 이 전 대통령은 지난달 고령과 건강 문제 등을 사유로 보석을 청구하면서 보증금 1억원과 자택과 서울대병원으로 주거제한을 걸었다.
재판부는 오는 4월 8일 이 전 대통령의 구속기간 만료를 앞두고 원만한 재판 진행을 위해 보석을 허가한다는 취지를 설명했다. 특히 이른바 '황제보석'으로 논란이 됐던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의 사례를 의식한 듯 이번 석방이 '병보석' 사유에 근거한 것이 아님을 강조했다.
(사진=이한형 기자)
재판부는 "최근 재판부가 교체됐는데 구속기간 만료까지 고작 43일간 충실히 심리하고 판결을 선고하는 것은 불가능한 상황"이라며 "구속기간 만료로 석방되면 피고인은 완전히 자유로운 상태가 돼 주거나 접촉제한을 부과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보석조건을 준수한다는 조건으로 임시 석방하는 것일 뿐 구속영장의 효력은 유지되는 셈"이라며 "만일 피고인이 조건을 위반하면 언제든지 취소하고 다시 구치소에 구금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 전 대통령은 병원 진료가 필요한 경우 '주거 및 외출제한 일시해제' 신청을 해 법원의 허가를 얻어야 한다. 또한 논현동 사저를 관할하는 강남경찰서장은 이 전 대통령이 주거와 외출제한 조건을 준수하고 있는지 매일 1회 이상 확인하고 결과를 법원에 통지해야 한다.
이러한 사항에 대해 이 전 대통령은 변호인단과 협의를 거쳐 "조건을 모두 숙지했고 받아들이겠다"고 결정했다. 이 전 대통령은 이날 재판정에서 "구속되기 이전에도 오해 소지가 있는 일은 하지도 않았다"며 "철저하게 할 것이고 걱정 안하셔도 될 것 같다"고 말했다.
또 재판부는 '충실한 심리'라는 보석 허가 취지에 따라 1심 재판 과정에서 심문에 나오지 않은 증인들을 다시 한 번 소환하고 정당한 사유 없이 응하지 않을 시 구속영장 발부 등 구인절차를 밟기로 했다.
이 전 대통령은 구치소에서 석방 절차를 밟고 오늘 오후 3~4시 경 자택으로 향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