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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시정부의 흔적 "문 대통령 찾았던 '백범의 계단',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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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시정부 흔적 기록한 <임정로드 4000km> 출간
1919년 4월 11일, 상하이에 수립된 임시정부
추격 피하며 난징, 광저우 거쳐 마지막엔 충칭까지
보존 잘된 곳도 있지만, 폐허가 되어버린 곳도 있어
산티아고 순례길처럼 임정로드도 많이 찾아갔으면



CBS 라디오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

■ 방 송 : FM 98.1 (18:15~19:55)
■ 방송일 : 2019년 3월 1일 (금요일)
■ 진 행 : 정관용 (국민대 특임교수)
■ 출 연 : 김종훈 오마이뉴스 기자

◇ 정관용> 오늘이 3. 1운동 100주년이고 올해가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죠. 그래서 특별한 초대석을 마련했는데요. 100년 전 임시정부 요인들이 활동했던 지역, 대한민국 탄생 흔적 이런 곳들을 쫓아다니면서 책으로 기록하신 분입니다. 무려 4000km나 돼요. 임정로드 4000km라는 책의 저자입니다. 오마이뉴스의 김종훈 기자 어서 오세요.

◆ 김종훈> 안녕하십니까?

 


◇ 정관용> 우리 청취자분들 가운데 대부분은 알고 계십니다마는 혹시 깜빡하신 분이 계실까 봐. 4000km라고는 하는 게 상해임시정부가 만들어지고 여러 곳으로 사실 쫓겨다녔죠?

◆ 김종훈> 그렇습니다.

◇ 정관용> 중국 전역을. 그걸 다 쫓아가면 4000km가 됩니까?

◆ 김종훈> 직선거리로 했을 때 4000km입니다. 상하이부터 충칭까지 만 26년이 넘는 그 역사 기간 동안에 유지됐던 임시정부의 기록들이 4000km인 겁니다.

◇ 정관용> 그래요. 상하이에서 그러니까 1919년 4월 11일날 임시정부가 처음 출범한 거 아닙니까?

◆ 김종훈> 그렇습니다.

◇ 정관용> 그리고 몇 년쯤 상하이에 있다가 어디로 움직이는지 우선 큰 그림부터 그려봐주세요.

◆ 김종훈> 말씀 주신 대로 1919년 4월 11일에 대한민국이라는 국호를 가진 임시정부가 상하이 서금으로 해서 처음 탄생을 했습니다. 이후에 윤 의사의 의거 32년 4월 말에 윤봉길 의사의 의거가 일어난 뒤에 임시정부의 요인들은. 그러니까 김구 주석을 비롯해서 임시정부 요인들은 자싱, 항저우, 난징, 창사, 광저우, 류저우, 치장 그리고 마지막으로 충칭까지 이렇게 중국을 말 그대로 횡단한 겁니다.

◇ 정관용> 1932년까지는 상해에 계속 있었는데 윤봉길 의사의 의거 이후에는 집중적으로 추격당하기 시작하는 거군요.

◆ 김종훈> 그렇죠. 그때부터 말 그대로 강물 위에 뜬 정부라고 해서 그래서 피신생활을 장강을 따라 이어지는 피신생활을 충칭까지 계속 이어진 겁니다.

◇ 정관용> 그야말로 풍찬노숙의 시기였던 거죠.

◆ 김종훈> 그렇죠.

◇ 정관용> 언제 여기를 다 다녀오셨어요?

◆ 김종훈> 저희 후배들과 함께 갔었는데 후배들과 집중적으로 갔다온 것은 작년 여름 6월부터 7월달에 집중적으로 갔다 온 거고 그전에는 저 혼자 답사 차원에서도 갔었고. 다녀오고 나서도 책을 좀 더 완성도 있게 만들기 위해서도 또 갔고요.

◇ 정관용> 상해로부터 충칭까지 그 경로를 다 밟아가려면 며칠 정도 걸립니까?

◆ 김종훈> 저희는 기본적으로 기록을 위해서 천천히 갔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갔을 때는 20박 21일로 갔는데 제가 일반 시민들이 학생들이 청년들이 가기에는 좀 어려움이 있지 않습니까? 솔직히 20박 21일이. 그러다 보니까 나눠서 저희 일정을 축약해서 정리하다 보니까 15일 정도 갈 수 있게끔 만들어놨습니다.
임시정부 흔적을 쫓는 김종훈 기자 (사진=로드다큐 '임정' 유튜브 캡쳐)

 


◇ 정관용> 15일 정도면. 그리고 여러 지역을 다녔는데 그 가는 곳마다 그 당시의 흔적이 아직도 남아 있습니까?

◆ 김종훈> 다행히 적지 않게 그래도 주요 도시에 남아 있습니다.

◇ 정관용> 그래요. 상하이에는 임시정부 청사가 기념관이 아직 있죠?

◆ 김종훈> 예. 우리가 흔히들 마당루청사라 알려진 상하이임시정부가 26년부터 32년까지 활용한 상하이 12번째 청사입니다.

◇ 정관용> 상해 내에서도 많이 옮겨다녔군요.

◆ 김종훈> 그렇죠. 12번째 옮겨간 그 마지막 청사가 현재 보존이 잘 돼 있고요. 그런데 말씀드린 대로 12번째지만 그 앞에 11번째까지 청사들은 그럼 어디에 있냐. 대한민국이 탄생한 그곳은 어디에 있냐. 아직 정확한 위치를 모릅니다.

◇ 정관용> 몰라요? 처음 아까 서금 1호라고 그랬잖아요.

◆ 김종훈> 서금 1호, 22호라고 알려진 옛 명칭으로 김신부로 22호라는 곳에서 우리가 지금 사용하는 대한민국이랑 국호, 우리의 헌법, 우리의 민주공화정이 만들어진 곳이라고 기록은 남아 있는데 그 정확한 위치를 모릅니다.

◇ 정관용> 그래요? 가봤죠, 서금 1호?

◆ 김종훈> 가봤습니다.

◇ 정관용> 지금 어떻게 돼 있어요?

◆ 김종훈> 남북으로 길게 뻗은 도로예요. 저희가 걸었을 때 2시간 가까이 걸어야 될 정도로 길게 뻗은 도로인데 재개발의 열풍이 막 불다 보니까 급변하고 있는데 옛 흔적을 찾기가 굉장히 어렵고요.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행스러운 점은 노력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임시정부가 최초에 통합을 했던 19년 통합을 했던 9월달에 통합한 적이 있는데 그 두 번째 청사가 현재 지금 정확한 위치가 밝혀졌습니다.

◇ 정관용> 위치만 밝혀진 거예요, 아니면 건물도 남아 있어요?

◆ 김종훈> 건물은 남아 있지 않고 그 위치가 의류매장으로 지금 현재.

◇ 정관용> 의류매장.

◆ 김종훈> 남아 있다는 것을 확인을 했고요.

◇ 정관용> 그러니까 사실상 상해 안에서도 12번은 옮겨다녔는데 건물까지 남아 있는 건 마지막 12번째 유일합니까?

◆ 김종훈> 그렇죠.

◇ 정관용> 나머지는 그냥 흔적밖에. 흔적도 없는 거네요, 어찌 보면.

◆ 김종훈> 상하이에 그래서 흔적이 참 찾기가 힘들어요. 많이 남아 있는 것 같으면서도 한편으로는 그 흔적들이 남아 있지 않다는 게 또 현실이고요.

오마이뉴스 김종훈 기자 (사진=시사자키 제작진)

 


◇ 정관용> 그리고 다른 도시들은 어때요?

◆ 김종훈> 윤 의사 의거 후에 김구 선생을 비롯해서 주요 인사들은 자싱이라는 곳에 도피를 했어요. 우리로 치면 수원 같은 곳인데 거기에 굉장히 보존이 잘 돼 있습니다.

◇ 정관용> 그래요?

◆ 김종훈> 주부청 선생이라는 분의 도움을 받아서 피신생활을 이어왔던 건데 잘 돼 있어요. 너무너무 잘 돼 있어서 고마울 정도로 잘 돼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여러 시민들이 그곳의 위치를 정확하게 모르는 거예요. 그러다 보니까 가질 않아요. 저희가 직접 갔을 때 그 임시정부 요인들이 이렇게 머문 피난처가 한 달에 저희가 4명이었는데 7명밖에 오질 않았어요.

◇ 정관용> 한국 사람이?

◆ 김종훈> 네. 그러니까 중국 관리인이 한국인 방문자, 중국인 관리자를 이렇게 방문자를 따로 관리를 하고 있는데 숫자를 다 기입하고 있는데 저희가 6월 말에 갔을 때 7명밖에 안 되더라고요.

◇ 정관용> 중국 사람들은 많이 찾아온대요?

◆ 김종훈> 네, 많이 오고 있습니다.

◇ 정관용> 그래요? 중국 사람들은 그렇게 왜 거기를 많이 찾아갈까요?

◆ 김종훈> 거기에 주부청이라는 선생의 기념관이 있는데.

◇ 정관용> 주부청이라는 분이 어떤 분이에요?

◆ 김종훈> 우리로 치면 부지사님이셨어요. 그런데 상해법과대학의 총장을 하시던 분인데 윤 의사의 의거에 감명을 받아서 말 그대로 어떠한 조건 없이 같이 항일운동을 한다는 이유로 김구 선생을 말 그대로 피신을 도와주고 그리고 주요인사들 피신을 도와줬던 분입니다.

◇ 정관용> 숨겨줬던 거죠.

◆ 김종훈> 몇 년 동안 숨겨주셨습니다.

◇ 정관용> 몇 년 동안. 그럼 김구 선생 등등이 거기에 기거하셨던 집도 그대로 있다 이거죠?

◆ 김종훈> 그대로 있습니다.

◇ 정관용> 그럼 기록도 있고?

◆ 김종훈> 그대로 있고요.

◇ 정관용> 그런데 한국인들은 안 찾아간다?

◆ 김종훈> 몰라서 못 간다고 생각돼요.

◇ 정관용> 거기가 자싱이고. 또 그다음 또 다른 도시는?

◆ 김종훈> 여러 도시들이 계속 이어지는 거예요. 항저우, 난징 말씀드린 창사, 광저우, 류저우, 충칭까지 쭉 이어지는 건데 다행히 우리나라 정부를 비롯해서 학자분들 그리고 시민단체에서 많이 노력을 해 주고 계세요. 그래서 점점 그 위치들을 정확하게 밝혀나가고 있는 과정인 겁니다.

◇ 정관용> 위치만 있어요, 아니면 그 당시에 어떤 집이나 이런 건 그대로 남아 있는 곳들도 있습니까?

◆ 김종훈> 있습니다. 항저우 같은 데는 실제로 김구 선생이 자싱에서 도피를 할 때 항저우 청사 같은 경우는 나머지 애국지사들이 그러니까 차리석 선생을 비롯해서 송병주 선생, 김철 선생 등이 항저우 청사를 지켰다는 거예요. 이 의미는 무엇이냐. 우리의 독립운동이 물론 김구 선생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거지만 다른 분들도 열심히 했다는 거예요. 물론 그 청사가 중국에서 정한 국가지정 유물이 돼서 현재 잘 남아 있습니다.

◇ 정관용> 항저우에 청사 그대로.

◆ 김종훈> 그리고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될 한 곳이 있는데 바로 충칭의 연화지청사라는 곳이에요. 1945년 8월 15일 일제 패망 이후에 대한민국이 이곳에서 독립을 맞이합니다. 해방을 맞이하는 거죠.

◇ 정관용> 마지막 임시정부 청사가 있는 곳이고요.

◆ 김종훈> 그렇죠. 중국 내에서.

◇ 정관용> 그러니까요. 그 건물도 그대로 남아 있어요?

◆ 김종훈> 네, 잘 보존이 되어 있습니다.

◇ 정관용> 기념관으로 혹시 운영됩니까?

◆ 김종훈> 잘 보존돼 있습니다. 그런데 충칭 연화지청사 같은 경우는 정말 곡절이 많았어요. 그러니까 상하이도 굉장히 도심지에 있지만 충칭 연화지청사 같은 경우는 충칭 내에서 인구 3000만의 충칭 내에서 가장 도심지에 있는 곳이에요. 그런데 그곳을 지키기 위해 이달 선생의 후손인 이소심 여사 같은 분들이 이곳을 지키기 위해 굉장히 노력을 했어요. 그래서 결국에는 보존을 했고 2017년 12월에 역대 대통령 중 현역 대통령들 중 최초로 문재인 대통령이 그곳에 섰던 거고요.

◇ 정관용> 현장까지 대통령이 갔다왔군요. 3000만 명의 대도시의 도심 한복판인데 고층빌딩으로 아마 뒤바뀌어 있어야 정상일 텐데.

◆ 김종훈> 그렇죠.

◇ 정관용> 어쨌든 지켜냈군요.

◆ 김종훈> 지켜냈습니다.

◇ 정관용> 결국 그건 중국 정부 당국이 그만큼 관심이 있다는 거 아닐까요?

◆ 김종훈> 그럼요, 그렇게 볼 수밖에 없고요. 이 항일운동의 그 과정 속에서 우리 애국지사들이 어떠한 역할을 했는지 그대로 보여주는 거예요. 윤 의사의 의거 이후에 홍커우 의거 이후에 장개석 총통이 당시 중국에 수백만 대군도 하지 못했던 걸 한국의 일개 청년이 해놨다. 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 해가지고 그때부터 전폭적인 지원을 김원봉 장군과 김구 선생이 양쪽으로 지원을 했습니다. 그런 기록들이 여전히 보존되고 이어지고 있다는 거죠.

◇ 정관용> 난징에도 뭐가 많이 남아 있나요?

◆ 김종훈> 난징이 상하이 의거 이후에 윤 의사 의거 이후에 애국지사들이 난징으로 이제 다 거기서 집결을 해서 말 그대로 힘을 모으는 시기라고 보여집니다. 30년대 초반인데 난징에도 많은 곳들이 남아 있는데 난징에서는 대표적으로 말씀드린 약산 김원봉 선생과 관련된 기록들이 그나마 남아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난징 외곽에 천룡사라는 곳이 있어요.

약산 김원봉 장군 (사진=자료사진)

 


◇ 정관용> 절입니까?

◆ 김종훈> 절입니다. 도교사원이에요, 현재. 그런데 폐허입니다.

◇ 정관용> 건물도 없고?

◆ 김종훈> 건물이 다 쓰러져가는 지붕도 없는 건물들이 난징 외곽에 남아 있는 겁니다.

◇ 정관용> 그런데요?

◆ 김종훈> 거기가 어떤 곳이냐 조선혁명간부학교라고 말 그대로 우리나라의 군간부들을 길러내기 위해서 김원봉 약산이 의열단 이후에 군 간부를 양성하기 위해 만든 학교입니다. 이곳 출신이 바로 시인 이육사와 작곡가 정율성입니다. 그런데 기록이 유일하게 거의 남아 있는 약산과 관련된 중국 내의 기록이라고 보면 돼요.

◇ 정관용> 그래요. 그런데 폐허예요?

◆ 김종훈> 폐허입니다. 찾아가기도 너무너무 힘들고.

◇ 정관용> 거기 졸업하신 분. 졸업이 아니라 거기서 길러진 분이 이육사하고 정율성. 작곡가 정율성은 중국 인민해방군 군가를 작곡하신 분 아닙니까?

◆ 김종훈> 네, 그분입니다.

◇ 정관용> 그 정도 중국이 아주 영웅으로 떠받드는 분인데 그러면 거기 그렇게 폐허로 놔두면 안 되죠.

◆ 김종훈> 애석한 부분이에요. 그리고 남은 자들의 과제예요.

◇ 정관용> 그렇죠.

◆ 김종훈> 거기서 125명의 우리나라 청년들이 조국의 독립을 위해서 최고 엘리트 청년들이 그곳에 모인 거예요. 현재 그곳에 기록들이 아무것도 안 남아 있다는 거죠.

◇ 정관용> 이렇게 상해로부터 시작해서 충칭에 이르기까지 한 보름 정도의 여행코스를 자세하게 안내하는 마치 무슨 여행가이드북처럼 책에 쓰여져 있어요.

◆ 김종훈> 여행책입니다.

◇ 정관용> 그렇죠. 처음부터 끝까지 다 못하면 중간중간만 할 수도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다 토막토막 내가지고 말이죠. 그런데 이 책에 준비물 이런 것도 쭉 기록이 돼 있던데 재미있는 대목이 좋은 옷 한 벌을 따로 준비하자. 그건 왜 그래야 합니까?

◆ 김종훈> 물론 여정 내내 좋은 옷을 입고 다닐 수는 없어요. 다만 제가 중국 충칭 연화지청 백범의 계단이라고 명명돼 있고 그 계단에 섰을 때.

◇ 정관용> 백범의 계단이 있어요?

◆ 김종훈> 백범의 계단이라고 일부러 책을 쓰면서 일부러 그 계단에 이름을 붙였습니다. 공식이름은 없습니다. 그냥 연화지 청사의 계단이라고 불리던 곳인데 이곳에 이름을 붙이고 싶었어요. 그래서 백범의 계단이라는 명명을 했습니다. 뭐냐.

◇ 정관용> 백범 선생이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하신 거잖아요.

◆ 김종훈> 거기가 바로 연화지청 백범 계단이 있는데 우리 앵커님도 잘 아시겠지만 2017년 12월에 말씀드린 대로 문재인 대통령이 내각요인과 그리고 애국지사의 후손들과 함께 그 계단에서 사진을 찍었습니다. 그 사진이 마치 1945년 11월 3일날 해방 후에 애국지사들이 김구 선생을 비롯해서 애국지사들이 환국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사진을 찍은 모습과 똑같았습니다. 그래서 그곳에 섰을 때 저는.

◇ 정관용> 여기서는 차려입고 찍어야겠다?

◆ 김종훈> 네, 바로 그 지점인 거예요. 왜냐하면 마음가짐이 달라지는 거예요. 해방이라는 게 우리 손으로 직접 물론 노력은 했지만 직접적인 계기가 우리가 못 만들었기 때문에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해서 김구 선생의 얼굴의 표정을 보면 안 좋아요. 그 헛헛한 감정들을 저는 우리의 지금의 민주공화국과 우리의 대한민국이 잘 차려진 우리의 옷을 입고 그곳에 서면 감정이 더 남다르거든요. 그래서 좋은 옷을 준비했으면 좋겠다고 말씀드린 거죠.

◇ 정관용> 그렇군요. 이처럼 중국 그래도 곳곳에 여전히 기념관도 있고 또 그 기록도 남아 있고 또 그걸 도와주는 중국분들도 많이 계신데 정작 우리 대한민국 안에는 임시정부와 관련된 그 어떤 시설물도 없죠?

◆ 김종훈> 애석하게도 공식적인 기념관들은. 다만 서대문에.

◇ 정관용> 이제부터 시작이잖아요.
1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제100주년 3.1절기념식에서 시민들이 태극기를 흔들며 만세삼창을 하고 있다. (사진=이한형기자)

 


◆ 김종훈> 이제부터 시작인 겁니다. 첫 삽을 뜨는 겁니다. 4월 11일날. 그런데 아시겠지만 99년 동안 우리나라 임시정부 기념비는 4월 13일로.

◇ 정관용> 날짜도 잘못 기록했었죠.

◆ 김종훈> 이제사 바뀐 거예요, 이제사.

◇ 정관용> 그러니까요. 서울 안에도 사실 임시정부와 관련돼서 다녀볼 곳들이 있지 않나요?

◆ 김종훈> 그럼요. 김구 선생이 우리나라로 돌아온 뒤에 임시정부청사를 사용했던 곳이 경기장입니다. 지금도 잘 보존돼 있고요. 그리고 대표적으로 제가 추천드리는 한 곳은 효창원이라는 곳이에요.

◇ 정관용> 효창공원 말고?

◆ 김종훈> 그렇죠. 효창공원인데 효창공원은 엄밀히 따지면 잘못된 말이고요. 왜냐, 효창원. 정조대왕의 아들과 부인이 잠들어 있던 곳인데 일본이 일제가 이 무덤을 판 다음에 여기다 골프장을 지었습니다. 김구 선생이 나라 민족의 정기를 바로세우겠다며 이봉창 의사와 백정기 의사, 윤봉길 의사의 유해를 수습해서 모셨어요.

◇ 정관용> 맞아요.

◆ 김종훈> 그곳이 현재 지금 국가관리 묘역으로 올해 이번에 드디어 바뀌게 됩니다.

◇ 정관용> 백범기념관도 있고 거기 여러 우국지사들의 묘도 다 있고 하니까. 그래요, 거기라도 가서 한번 우리 민족정신을 느꼈으면 좋겠고.

◆ 김종훈> 그럼요.

◇ 정관용> 여유가 있다면 이 4000km 한번 뛰어봤으면 좋겠네요. 요즘 여기 다니시는 분들도 꽤 많이 늘어났더라고요.

임정로드 4000킬로 대한민국 100년, 상하이에서 충칭까지 임시정부 투어가이드 (사진=필로소픽 제공)

 


◆ 김종훈> 책을 들고 인증샷을 찍어준 분들이 적지 않습니다. 그렇게 고마운 점은 청년들이 나서서 추천을 해 주는 거예요. 말 그대로 우리가 산티아고 순례길 굉장히 많이 가잖아요.

◇ 정관용> 그보다 여기 갑시다, 이런 거네요.

◆ 김종훈> 그런 의미인 겁니다. 굉장히 멋있는 여행인 거예요.

◇ 정관용> 그렇네요. 임정로드 4000km 책을 펴내신 오마이뉴스의 김종훈 기자였어요. 고맙습니다.

◆ 김종훈>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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