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 제공)
"남북 사이의 철도·도로 연결부터 남북경제협력 사업까지 트럼프 대통령이 요구한다면 그 역할을 떠맡을 각오가 돼 있고 그 것이 미국의 부담을 덜어줄 수 있는 길이다."지난 19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통화를 가진 문재인 대통령의 이 말 한마디가 때아닌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하태경 바른미래당 최고위원은 다음날인 20일 문 대통령의 말을 두고 "문재인 대통령은 북한 문제만 나오면 이성을 상실하는 경향이 있다"는 자극적인 말로 세간의 관심을 끄는데 성공했다.
하 의원은 경협은 비핵화 이후 시행해야 할 조치라며 "트럼프조차 북한에 여전히 투자 리스크가 크다고 생각해 투자를 안하겠다는 건데 무슨 'X배짱'으로 경제를 모르는 대통령이 투자하겠다고 큰 소리를 치느냐"며 "국민 세금은 대통령의 호주머니가 아니다"라고 비난 공세를 퍼부었다.
일부 보수언론도 문 대통령의 말을 두고 '재정적 부담을 지겠다는 소리'라며 강하게 비판하고 나섰다. 협상은 북미가 하는데 금전적 부담만 한국이 질 수 있다며 우려했다.
하지만 외교가의 관계자들은 이러한 비판 자체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문 대통령의 말 어디에도 '금전적'이라거나 '우리가 모두' 부담하겠다는 말은 없다며 과한 해석이라는 분석을 내놨다.
오히려 실질적인 성과를 내야 하는 이번 2차 북미정상회담에서 영변핵시설 폐기·검증 등 북한의 비핵화 조치가 이뤄질 경우 따르게 되는 미국 측의 상응조치에 한국이 적극 협조할 의사를 표현한 것이란 해석이다.
또 이는 최근 미국 내 조야의 북미회담 회의론에서 자유롭지 않은 트럼프 대통령의 운신의 폭을 넓히려는 시도로 볼 수 있다. 북한에도 '비핵화만 충실히 이룬다면 한미 협조 아래 원하는 경협이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메시지를 에둘러 던지며 비핵화를 촉진하려는 시도일 수 있다.
한 외교소식통은 "문 대통령의 뜻은 비핵화 등 한미가 함께 하고 있는 길들이 제대로 이어질 것을 상정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그간 대북제재 예외 인정 등을 미국과 긴밀한 연결고리 안에서 추진해 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 상응조치에 대해서는 미국 뿐 아니라 다른 국가들에서도 자연스럽게 도맡게 될 것임을 강조한 것으로 보인다. 오히려 트럼프 대통령이 비핵화 협의 동력을 이어갈 수 있도록 독려하는 차원에서 양 정상 간 이같은 이야기를 주고받았을 것으로 보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덧붙였다.
문 대통령이 "북한의 비핵화 조치를 견인하기 위한 상응조치로서 한국의 역할을 활용해달라"는 취지의 의사를 함께 트럼프 대통령에게 전달했다는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의 말 역시 비핵화를 등한시한다거나, 금전적 부담만 지겠다는 식이라는 비판이 터무니없음을 뒷받침한다.
북한문제를 둘러싼 한반도의 평화와 그 비용의 문제는 사실 오랜 숙제다.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며 신중하게 추진돼야 할 문제다.
그러나 하 의원 등의 주장은 정치인으로서 양 단의 가치와 균형에 대한 고민을 엿볼 수 없다. '세금을 마음대로 쓰는 대통령'이라며 국민 감정을 조종하는 자극적 시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북한이 남북 경협을 원하고 있고, 이에 대해 우리 정부도 의지를 밝힌 것이란 측면에서 향후 논의가 발전할 가능성에 관심이 쏠리는 것은 사실이다. 또 완전한 비핵화를 전제로 신중하게 추진해 나가야 하는 것 역시 맞다.
하지만 이번 2차 북미 정상회담 테이블이나 합의문에서는 남북경협에 대한 내용을 구체화하거나 공식화하기는 어려울 가능성이 크다. 남북경협의 한 축인 우리 정부가 빠진 상황에서 북미 간에 경협 사항을 공식 의제로 다루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외교안보 전문가는 "향후 논의가 진행된다면 '남북' 경협이기 때문에 추후 우리가 경제적 부담을 상당부분 지게 될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면서도 "그러나 핵심은 '돈'이 아니라 비핵화가 제대로 진행되느냐다. 비핵화의 구체적 행동을 이끌어내는 한미 간 공조를 바탕으로 추진해나가면 된다"고 강조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 교수도 "남북관계의 특수성을 고려했을 때 남북 경협은 장기적으로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에 상당한 도움이 된다. 미래를 위한 투자다. 미래 북한의 경제 개혁·개방 흐름 속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기 위해서라도 지금부터 투자를 선점하는 개념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