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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인 독립운동가 단재 신채호선생 순국 83주기 추모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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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오전 11시 백범기념관에서 열려

 

일제 강점기 언론인이자 사학자로서 민족의식 고취에 힘쓴 독립운동가 신채호 선생을 기리는 단재 신채호 선생 순국 83주기 추모식이 21일 오전 11시 서울 백범기념관 대회의실에서 열린다.

기념식은 오진영 서울지방보훈청장을 비롯해 각계인사, 독립운동 관련 단체 대표 및 회원, 유족, 시민 등 3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단재선생 약력보고와 헌사 및 추모사, 단재의 노래 제창, 헌화 등의 순으로 진행된다.

신채호 선생(1880. 12. 8.~1936. 2. 21.)은 충청도 회덕현 산내면 어남리(現 대전 중구 어남동)에서 출생했다.

1898년 성균관에 입학한 후 개화사상을 접하고 독립협회에 가입해 적극 활동했다.

1905년 4월에 성균관 박사가 되었으나 그 해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관직 진출을 포기하고 황성신문에 논설을 쓰기 시작했다.

이후, 양기탁의 요청으로 대한매일신보의 주필로 활약하며 일제의 침략과 친일파의 매국행위를 비판하고 국권회복에 민족이 힘쓸 것을 역설했다.

1907년 안창호, 이갑 등과 더불어 비밀결사 신민회의 창립에 참가했다.

선생은 그 해 대구를 중심으로 전국적으로 전개된 '국채보상운동'에도 적극 참여했다.

언론을 통한 애국계몽운동에 주력하면서 독사신론을 비롯한 많은 역사 관련 서적을 저술해 근대민족사학의 기초를 확립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후 1911년에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교민단체인 '권업회'를 조직하고 기관지인 권업신문의 주필로서 재러동포들의 독립사상을 고취하고 권익을 옹호하는 등 항일언론활동을 전개했다.

만주 일대의 고구려, 발해 유적지를 답사하는 등 국사 연구와 문필 활동에 힘쓰던 선생은 1919년 4월 상하이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에 참가해 의정원 의원, 전원위원회 위원장 등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이후 중국 북경을 중심으로 상해, 천진 등을 무대로 조선상고문화사, 조선사연구초 집필 등 역사연구에 힘썼다.

선생은 무정부주의 독립운동에 관심을 갖고 '무정부주의동방연맹' 활동 등 활발한 독립운동을 전개했으나 독립운동 자금 모집을 위해 대만으로 가다가 일제에 체포되어 뤼순 감옥에서 복역하던 중 1936년 옥사 순국했다.

정부는 선생의 공훈을 기려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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