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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리뷰] "교육도 상품"…예사롭지 않은 北 '장마당 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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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의 행군' 후 공교육 붕괴, 전업과외 등 사교육 시장화 꿈틀
탈북민 20~28% "사교육 경험 있다"…남한 못지않은 교육열 DNA
국가가 의식주 해결 난망…'진정한 자력갱생' 차원에서 시장경제 작동

■ 방송 : CBS라디오 <임미현의 아침뉴스="">
■ 채널 : 표준 FM 98.1 (07:00~07:30)
■ 진행 : 임미현 앵커
■ 대담 : 홍제표 기자

◆ 임미현 > 한반도와 동북아 국제정세를 살펴보는 '한반도 리뷰' 시간입니다. 홍제표 기자, 오늘은 어떤 주제를 갖고 나왔나요?

◇ 홍제표 > 북한에도 빈부격차가 있을까요? 물론 북한도 사람 사는 곳이니까 전혀 없을 수는 없겠죠. 하지만 근래 들어 빈부격차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확대되고 있습니다. 우리의 기존 상식을 뛰어넘기도 하고, 놀랍게 느껴지는 부분이 적지 않습니다. 그런데 조금 이상합니다. 사회주의 평등국가인 북한에서 굶어죽는 평등이 있을지언정 자본주의 국가처럼 빈부격차가 생겨나고 있다니 말입니다. 혹시 북한이 부지불식간에 이른바 '체제전환'이라도 하는 걸까요? 오늘은 북한 사회를 바꾸고 있는 시장경제 실태를 살펴볼까 합니다.

◆ 임미현 > 네, 시장경제라고 하면 의·식·주를 비롯해서 얘기할 게 많을텐데 뭐부터 시작할까요?

 

◇ 홍제표 > 좀 생뚱맞을지 모르지만 사교육 문제로 시작해보겠습니다. 한국에서도 최근 'SKY캐슬'이란 드라마가 인기를 끌었죠? 이런 분위기를 탔는지 자유아시아방송(RFA)란 북한전문매체는 현지 소식통을 인용해 북한도 요즘 사교육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고 보도해 흥미를 끌었습니다. 인기 있는 교사와 1대1 과외수업할 경우는 비용이 수십배나 올라 문제가 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 임미현 > 북한도 우리와 한 민족이니까 교육열이 높을 수밖에 없긴 하겠는데, 사교육이 기승을 부릴 정도라니 좀 씁쓸하긴 하네요. 그래도 아직은 먹고사는 문제도 해결 안 된 사회이기 때문에 고위층 등 일부 계층에만 해당되는 문제 아닌가요?

◇ 홍제표 > 아닙니다.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이 2014년부터 2017년까지 시기에 탈북한 북한이탈주민을 대상으로 북한에서 자녀에게 사교육을 시킨 경험이 있는지 물어본 결과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해마다 조금씩 편차는 있지만 20~28% 가량 경험이 있다고 했습니다. 자신을 사회 상층으로 인식하는 집단에선 33%였지만 중층 집단에서도 26%에 달했습니다. 북한이탈주민이 북한의 평균 주민상을 대표한다고 볼 수는 없지만 사교육이 상층에만 국한돼있지 않다는 점은 알 수 있습니다.

◆ 임미현 > 북한도 우리처럼 대학입시가 주 목적이겠죠?

김일성종합대학내에 설치된 김일성 동상의 모습. (조선중앙통신 = 연합뉴스 자료사진)

 

◇ 홍제표 > 그렇습니다. 김일성종합대를 비롯한 명문대 선호 현상은 당연하고, 고급중학교 진학시에도 일종의 영재학교인 제1중학교 입시 과외가 성황이라고 합니다. 입시 과외는 수학, 물리, 영어가 주요 과목이지만 최근에는 중국어나 컴퓨터 개인교습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우리와 꽤 비슷한 모습인데, 과외 방식도 아까 말씀 드린 1대1 고액과외 외에 10~20명씩 모아서 하는 그룹과외 등 다양하게 이뤄지고 있습니다. 과외비는 달러나 위안화로 가격이 매겨지는데 한 달에 150~200위안(한화 약 2만5천원 ~3만3천원) 수준입니다.

◆ 임미현 > 그런데 사교육과 시장경제,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 거죠?

◇ 홍제표 > 북한에서 사교육이 생겨난 배경을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북한은 사회주의 무상교육을 실시했던 나라입니다. 원칙적으로 사교육은 금지돼있고 할 필요도 없는 나라였습니다. 실제로 북한의 보통교육법은 '이기적인 목적으로 비법적인 개인교수 행위'를 할 경우 행정이나 형법상 처벌을 가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90년대 '고난의 행군' 시기 경제난을 거치며 공교육 시스템이 무너지자 사교육이 이를 보완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학부모들이 일정 정도 경비를 부담하게 된 것이죠. 그러던 것이 시장화를 통해 경제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되자 이번에는 여유계층이 생겨나면서 본격적인 사교육 시장이 형성되기 시작했습니다.

◆ 임미현 > 교육 자체가 국가의 관리 영역에서 시장으로 넘어오고 있다는 얘기군요.

◇ 홍제표 > 바로 그렇습니다. 우리의 이른바 '1타 강사'처럼 실력 있는 과외교사에게 학생이 몰리는 것은 인지상정입니다. 교육 서비스를 하나의 상품으로 인식하고 가격을 책정하는 시장 매커니즘이 작동하는 것입니다. 더구나 교육은 한 사회의 이데올로기를 차세대에 이식하는 핵심 역할을 합니다. 그런 점에서 아직 부분적이긴 하지만 국가의 역할을 시장이 분담하기 시작했다는 것은 의미가 큽니다.

◆ 임미현 > 교육뿐만 아니라 의식주 전반에 걸쳐서도 시장경제가 많이 자리 잡았다고 볼 수 있겠네요?

◇ 홍제표 > 통일연구원 박영자 연구위원은 '김정은 시대 8대 변화' 보고서에서 "진정한 '자력갱생'의 시대에 살고있는 북한 주민들은 북한이 더 이상 '평등사회'가 아님을 실감하며 살아남기 위해 매일 고군분투한다"고 표현했습니다. 시장경제가 활력을 얻게 된 것도 사교육과 마찬가지로 경제난 때문입니다. 국가가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해주지 못하자 주민들이 스스로 책임지게 된 것이죠. 박 위원의 말을 들어보겠습니다.

"기관이나 상인들이나 돈주들이 왕성하게 불법과 합법을 넘나들면서 활동을 하기 시작했다. 각종 상업, 운송업, 서비스업 등 분야에서 광범위하게, 관료들과도 결탁되면서 (활동한다)"

◆ 임미현 > 그렇다면 경제 사정도 많이 나아졌다고 볼 수 있나요?

◇ 홍제표 > 물론 대북제재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는 있지만 '고난의 행군' 시절의 참담한 상황은 극복한 지 오래됐습니다.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북한사회변동 2017' 보고서에 따르면 김정은 정권이 안정기에 접어든 2015년 이후에는 하루 세끼 식사가 가능하다는 응답이 86%를 넘었습니다. 우리와 비교할 것은 못 되지만 최소한 굶지는 않게 된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북한이 비핵화하면) 주민들이 고기를 먹게 해주겠다"고 말한 것은 여러모로 적절한 발언이 아닌 것 같습니다.

◆ 임미현 > 의식주는 해결됐다고 해도 빈부격차 확대 같은 시장경제 폐해도 분명 뒤따를 것 같은데 어떻습니까?

◇ 홍제표 > 불가피한 현상입니다. 과거 북한의 의식주는 배급제 방식이었습니다. 소수 특권층을 제외하면 지역이나 직업과 상관없이 평등하게 배급이 이뤄진 것입니다. 하지만 경제난을 거치며 배급제가 유명무실해지고 개인 역량이나 수완에 따른 소득 격차가 뚜렷해졌습니다. 특히 북한의 경우는 도시-농촌간 격차 등 지역간 차이가 심각한 수준입니다. 특권층이 사는 평양에선 피자나 스파게티 같은 고가의 외국 음식점이 성행하는 반면 양강도나 자강도, 강원도 같은 지역은 아직도 강냉이밥으로 끼니를 때우는 집이 많은 현실입니다.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 임미현 > 그렇다면 김정은 정권이 앞으로도 계속 시장경제를 용인할지가 궁금하네요.

◇ 홍제표 > 그럴 단계는 훨씬 지났다는 게 전문가들의 일치된 견해입니다. 우선 좋든 싫든 시장경제, 돈의 맛을 알아 버렸습니다. '붉은 자본가'로 불릴 만한 '돈주'들도 시장경제를 발판으로 신흥 세력으로 커나가고 있습니다. 기존 정치권력도 여러 겹으로 이와 결탁해 분리하기 쉽지 않습니다. 김정은 정권으로선 안정적 권력 운용을 위해 당분간은 현상유지가 필요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북한은 노동당과 장마당으로 운용되는 양당제 국가라는 농담이 있는데 농담만은 아닌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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