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가 지난 24일 오후 국회 로텐더홀 계단 옆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조해주 중앙선관위 상임위원 임명에 반대하며 농성을 펼치고 있는 의원들과 이야기를 하고 있다. (사진=윤창원 기자)
지난 24일부터 이어온 '릴레이 농성'을 이어온 자유한국당이 설 명절을 앞두고 고심에 빠졌다. 농성 시작 시점에 '릴레이 단식 계획안'이라는 제목의 문서가 언론에 알려지면서 '간헐적 단식', '딜레이 농성' 등 조롱의 대상이 됐다.
한국당은 지난 24일 문재인 대통령이 조해주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상임위원 후보자 임명을 강행하자, 즉시 국회 본관에서 농성장을 차린 후 릴레이 농성을 시작했다. 농성은 각 상임위원회 소속 의원 4~5명씩 조를 구성해 9시~14시 30분, 14시 30분~20시까지 등 하루 2회 각 5시간 30분씩 농성장을 지키는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문제는 당장 5일 앞으로 다가온 설 연휴 기간 동안 '릴레이 농성' 지속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는 점이다. 현재까지 계획된 안에서 마지막 일정은 당내 국토위원 9명이 다음달 1일 14시 30분부터 20시까지 진행하는 농성이다.
귀성객들이 몰려드는 명절 특수성을 고려하면 지역구 관리가 필요한 개별 의원들 입장에선 이 기간에 지역대신 국회 농성장을 지키기가 쉽지 않다. 당 조직강화특별위원회에서 최근 당협위원장 교체를 단행했을 뿐더러, 내년 총선을 앞두고 지역 내 경쟁자들과 본격 신경전이 시작되는 기점이 통상 명절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당으로서는 이미 '단식' 논란으로 한 차례 소동을 겪은 터라, 이마저 중단하기도 애매한 상황이다. 명절을 핑계로 릴레이 농성을 중단할 경우, '설 명절'을 출구전략으로 삼은 것 아니냐는 부정적 여론이 발생할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이다.
당 지도부는 일단 '릴레이 농성' 지속에 무게를 두고 있다. 나경원 원내대표는 28일 의원총회 후 기자들과 만나 "1월 국회 내내 여당이 국회 소집에 응하지 않고 있다"며 "앞으로 우리당은 지금까지 농성은 계속 이어가면서 국회의 목소리를 직접적으로 전달하는 방법을 논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원내 핵심 관계자도 CBS노컷뉴스와 통화에서 "명절엔 각 의원들이 각 지역으로 내려가 현장 민심을 청취하는 전략이 더 나을 수도 있다"며 "릴레이 농성을 지속하는 것과 지역구 귀향 중에서 어떤 선택을 할지 고민 중"이라고 설명했다.
여의치 않을 경우, 나 원내대표와 당내 비례대표를 중심으로 별도 조를 구성해 설 명절 기간 동안 농성을 이어가는 방안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당 지도부가 이처럼 '농성 지속' 여부를 두고 고심하는 이유는 대여(對與)투쟁 수단으로 나름 정당성을 확보했음에도, 준비 과정에서 미숙함을 보였다는 내부 비판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나 원내대표는 지난 26일 자신의 SNS(페이스북)을 통해 "단식이라는 용어로 릴레이 농성의 진정성이 의심받게 된 것을 원내대표로서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정치권과 언론이 5시간 30분에 불과한 농성에 대해 '웰빙 단식'이라는 비난을 뼈아프게 받아들인 것으로 읽힌다.
이에 대해 당내 한 핵심 당직자는 통화에서 "원내대표가 유감이란 표현까지 썼다는 것 자체가 이미 전략 미스를 인정한 것 아니겠냐"며 "당초 24시간씩 실제 하루 동안 단식하기로 계획했는데, 조 편성 과정에서 시간 조정이 잘못된 것"이라고 해명했다.
지난해 12월 선출된 신임 지도부가 의욕이 앞서면서 미숙한 대응을 보이고 있다는 비판도 나왔다.
릴레이 농성에 참여한 당내 중진의원은 통화에서 '단식' 논란에 대해 "당 지도부가 바보같은 짓을 해서 욕을 먹어도 싸다"며 "지도부도 그렇고 원내 행정국에서 보좌하는 직원들이 그런 문구 조정들을 잘 해줘야 하는데 간과한 것"이라고 불만을 드러냈다.
다른 중진 의원은 "단식 해프닝 때문에 정치편향적 선관위원을 임명했다는 '본질'이 지금 다 사라졌다"며 "일단 농성을 시작한 이상 여당에게 뭘 받아야 풀 수 있는데, 오히려 출구전략을 어떻게 쓸지 걱정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