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사법농단 의혹과 관련해 직권남용 등의 혐의를 받는 박병대 전 대법관(가운데) (사진=이한형 기자)
사법농단 의혹을 수사하는 검찰이 박병대 전 대법관에 대한 구속영장을 재청구하며 새로운 혐의와 증거를 적용했다.
서울중앙지검 수사팀(팀장 한동훈 3차장검사)는 18일 박 전 대법관에 대해 '형사사법절차 전자화 촉진법(형사절차전자화법)' 위반 등 혐의로 구속영장을 재청구했다.
형사소송법상 한 차례 기각된 구속영장을 재청구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혐의를 적용하거나 새로운 증거를 적용해야 한다.
이 가운데 새로운 혐의가 형사절차전자화법 위반이다.
이 법에서는 형사사법업무에 종사한 사람이 직무상 알게 된 형사사법 정보를 누설하거나 권한없이 처리하거나 타인이 이용하도록 제공하는 등 부당한 목적으로 사용할 경우 5년 이하의 징역이나 5천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하도록 한다.
박 전 대법관은 법원행정처장이던 2012년 2월 판사출신 정의당 서기호 전 의원이 판사 재임용 심사에서 탈락한 것을 취소해달라고 법원행정처장을 상대로 낸 소송에 관여한 혐의를 받는다.
박 전 대법관은 변론기일이 8개월 이상 열리지 않자 2013년 8월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에게 "서 (당시) 의원이 의도적으로 재판을 지연시키고 있으니 신속하게 재판이 진행될 수 있는 방안을 검토해 보고하라"는 취지로 지시했다.
이어 검토보고서를 보고받아 기일지정신청서를 제출하는 방안으로 재판에 부당하게 관여한 것으로 검찰은 보고 있다.
이 같은 혐의는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죄와 '상상적 경합'으로 의율된 것으로 보인다. 상상적 경합은 한 가지 범죄 행위가 여러 개의 혐의에 해당된다는 법률 용어다.
형사절차전자화법 위반 혐의는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서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죄와 함께 법리공방의 대상이 될 전망이다.
따라서 박 전 대법관의 구속여부를 가를 핵심은 검찰이 추가로 확보한 증거가 될 것으로 관측된다.
앞서 법원은 지난해 12월 "범죄 혐의 중 상당 부분에 관해 피의자의 관여 범위 및 그 정도 등 공모관계의 성립에 대해 의문의 여지가 있다"며 박 전 대법관에 대한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이에 따라 검찰은 임 전 차장‧양승태 전 대법원장 등과의 공모관계를 입증하기 위해 관련자 진술 등 추가 증거를 확보하는데 수사력을 모았다.
영장심사에서 검찰이 이같이 확보한 추가 증거가 박 전 대법관의 공모관계를 얼마나 탄탄하게 입증할지, 또 박 전 대법관이 어떤 소명으로 추가 증거를 탄핵할지가 관건인 셈이다.
검찰 관계자는 "혐의의 중대성과 구속영장 기각 후 추가 수사 내용, 추가로 규명된 범죄 혐의 등으로 볼 때 구속영장 재청구가 필요하다고 봤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