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태 전 대법원장 (사진=윤창원 기자/자료사진)
'사법농단'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이 양승태 전 대법원장을 피의자 신분으로 전격 소환한다. 이로써 양 전 원장은 헌정 사상 처음으로 검찰조사를 받는 전직 대법원장이라는 불명예를 안게 됐다.
서울중앙지검 수사팀(팀장 한동훈 3차장검사)은 4일 양 전 원장 측에 오는 11일 오전 9시30분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에 출석하라고 통보했다.
검찰 관계자는 “대체로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혐의를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이 분리해서 적용 받았고, 이들에게 적용된 혐의들을 대부분 양 전 원장에 합쳐 적용했다”고 밝혔다.
따라서 양 전 원장의 혐의는 앞서 지난해 11월 구속기소된 임 전 차장의 혐의와 상당부분 겹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당시 검찰은 40개가 넘는 임 전 차장의 범죄사실에 양 전 원장을 공범으로 적시했다.
양 전 원장은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들 민사소송 재판, 옛 통합진보당 의원 지위확인 소송, 박근혜 전 대통령 비선의료진 특허소송 등 당시 정부가 정치적으로 민감해한 재판에 개입한 혐의를 받는다.
또 헌법재판소 내부정보와 ‘정운호 게이트’ 관련 수사정보 유출, 법관사찰, 법원행정처 비자금 조성 등 혐의도 받고 있다.
여기에 검찰은 최근 박·고 전 대법관들 영장 기각 이후, 일제 강제징용 재판 개입과 법관 ‘블랙리스트’ 의혹에 대한 보강수사를 진행하면서 양 전 원장이 이들에 직접 개입한 정황을 확인했다.
법원행정처가 당시 사법부에 비판적인 판사들에게 인사상 불이익을 주려고 작성한 '물의 야기 법관 인사조치' 문건에 양 전 원장이 서명한 사실도 포착했다. 이 문건은 사실상 '판사 블랙리스트'라는 게 검찰의 판단이다.
검찰 안팎에서는 판사 블랙리스트 문건과 관련해 자필 서명이 들어간 만큼, 이것이 양 전 원장의 발목을 잡을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나온다.
강제징용 재판과 관련해서도 검찰은 양 전 원장이 당시 일본 전범기업 측을 대리한 김앤장 법률사무소의 한모 변호사를 자신의 집무실에서 직접 만난 사실을 확인했다.
양 전 원장 본인과 충분히 관련된 부분이 있어 소환 통보했다는 수사팀 기류를 볼 때, 상당부분 혐의 입증에 자신감을 내비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에 검찰은 두 전직 대법관이나 임 전 차장과 공모한 혐의 말고도 양 전 원장의 개별 혐의를 직접 추궁할 가능성도 크다.
검찰은 기존에 알려진 혐의만으로도 조사 분량이 방대하다는 입장이다.
이 때문에 양 전 원장을 2차례 이상 소환해 조사할 가능성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검찰은 지난해 6월 사법농단 의혹과 관련한 고발사건 10여개를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에 배당하면서 수사를 본격 시작했다.
수사 개시 7개월 만에 사실상 모든 의혹의 정점에 있는 양 전 원장에 대해 검찰이 소환통보함에 따라 조만간 사법부 수사가 종점을 찍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