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청와대)
문재인정부의 핵심 경제정책 가운데 하나인 재벌개혁이 정권출범 1년 7개월이 지나도록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여기저기서 터져나오고 있다.
현정부 들어 일부 재벌개혁 과제에 성과가 나온 것은 사실이지만 재벌들의 자발적인 개혁을 우선시하다 보니 당초 기대보다 성과가 미진하다는 것이 이런 비판의 핵심이다.
◇ '자발적' 개혁에 우선순위...일부 성과도공정거래위원회가 지난 28일 발표한 '대기업집단의 자발적 개선사례'에 따르면 삼성과 SK, 현대차 등 15개 대기업집단이 올해 소유지배구조 개편안 등을 발표하거나 추진했다.
소유구조 개선 부분에서 삼성과 롯데, 현대중공업 등이 순환출자 해소를, 효성과 현대산업개발 등이 지주회사 체제 전환을, SK와 LG 등이 지주회사 체제 정비를 단행했다.
그 결과 지난해 기준으로 모두 280개의 순환출자고리가 남아있던 삼성과 롯데 등 9개 대기업집단의 순환출자고리 수는 올해 31개로 대폭 줄어들었다.
지배구조 개선 부분에서도 SK와 한화가 전자투표제를 도입했고, 삼성과 현대차, SK 등은 사외이사 기능을 강화했다.
내부거래 개선 부분에서는 SK와 LG 등이 내부거래가 많은 회사의 총수일가 지분을 축소했고, 대림은 내부거래 자체를 축소.중단했다.
이에 대해 공정위는 "재계와의 소통을 통해 대기업집단의 자발적 개선을 일관되게 촉구하고 대기업집단의 현황 정보를 시장에 적극적으로 공개해온데 따른 것"이라고 자평했다.
재벌들의 자발적인 개선노력 외에도 공정위는 일감몰아주기와 계열사간 부당지원, 하도급갑질 등과 관련한 엄정한 법 집행을 통해 재벌개혁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실제로 공정위는 내년 상반기 중으로 대림, 태광, 금호아시아나, 하림그룹 등의 부당지원 행위에 대해 제재를 내릴 예정이다. 또, 삼성과 SK 등 현재 조사가 진행되고 있는 7개 그룹에 대한 제재도 내년에 본격화 할 계획이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 체감하기 힘든 성과...재벌개혁 이유 차고넘쳐하지만 이같은 성과에도 현정부의 재벌개혁에 대해 높은 점수를 줄 수 없는 이유는 재벌그룹들의 경제력 집중 문제와 재벌총수와 그 일가의 전횡을 근본적으로 막을 수 있는 제도개혁이 미흡하기 때문이다.
앞서 살펴봤듯이 현정부의 재벌개혁은 재벌 스스로의 선의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데다 재벌그룹의 불공정행위에 대한 사후적 제재에 그치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공정위가 소유지배구조 개편안 등을 추진하고 있다는 이유로 재벌개혁의 우수 사례로 꼽은 삼성과 SK, 대림, 태광 등은 다른 한편으로는 부당행위로 공정위의 조사를 받고 있는 상황이다.
여기다 최근 논란이된 삼성바이오로직스의 분식회계 사태, 한진그룹 총수 일가의 갑질 논란 등 총수일가와 직간접적으로 관련된 재벌개혁 이슈는 차고 넘친다.
그러나 이같은 총수일가의 전횡을 막고 견제할 수 있는 집중투표제와 다중대표소송제, 전자투표 의무화 등을 담은 상법 개정안은 이번 정기국회에서도 통과가 좌절됐다.
또 38년만에 전면 개편되는 공정거래법 개정안의 경우 재벌그룹의 일감 몰아주기 규제 확대와 재벌총수의 지배력 확대 도구로 악용되는 공입법인의 의결권 제한, 공정위의 전속고발권 폐지 등의 내용을 담고 있지만 아직 시동도 걸지 못한 상태다.
여기다 공정위가 심혈을 기울여 내놓은 공정거래법 개정안이 재계의 입장을 대폭 수용하며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시민단체와 진보학계의 주장도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경제개혁연구소 위평량 연구위원은 "경제민주화와 공정경제의 핵심인 재벌의 경제력 집중 완화나 소유지배구조 개선과 관련된 법안이 국회에서 전혀 통과가 되지 않고 있어서 결론적으로는 재벌개혁에 대한 성과가 별로 없는 상황이 됐다"고 설명했다.
◇ 재벌개혁 후순위로 밀렸나? "물건너 갔다" 주장도상법과 공정거래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제대로 논의도 되지 못하고 있는 표면적인 이유는 재계의 입장을 대변하고 있는 자유한국당 등 야당의 반대 때문이다.
하지만 여당인 더불어민주당과 정부 역시 재벌개혁과 관련된 법안 통과에 미온적이라는 비판도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위평량 연구위원은 "3대 경제정책 기조 가운데 공정경제는 게임의 룰"이라고 전제한 뒤 "게임의 룰을 만드는 법안이 통과되지 않고 있는 것은 여당의 정치력 부제라고 본다"고 밝혔다.
여기다 고공행진을 거듭하던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이 경제악화의 영향으로 연일 곧두박질 치면서 향후 재계의 반발을 무릅쓰면서까지 재벌개혁 관련 법안을 처리할 동력이 부족할 것으라는 우려가 나온다.
특히 정부가 지난 17일 발표한 '2019년 경제정책방향'에서 3대 경제정책 기조 가운데 소득주도성장과 공정경제가 후순위로 밀리고 혁신성장이 전면에 배치되면서 재벌개혁을 포기했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민주평화당 정동영 대표는 언론 인터뷰를 통해 "재벌개혁은 사실상 물 건너갔다"라고 못박은 뒤 "경제민주화법, 재벌개혁 입법에 대해서는 정부.여당이 전혀 거기에 체중을 싣지 않았고 그냥 건성건성 지나갔다"라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