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가 지난 21일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윤창원 기자)
보수정당 사상 첫 여성 원내사령탑인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가 본격 '리더십' 시험대에 올랐다.
지난 11일 신임 원내대표로 선출됨과 동시에 나 원내대표는 당시 국회 로텐더 홀에서 '연동형 비례제' 도입을 주장하며 단식 농성을 진행 중이던 야3당과 사실상 협상에 돌입했다.
여야가 12월 임시국회와 오는 27일 본회의 개의에 합의한 상황에서 유치원 3법(유아교육법·사립학교법·학교급식법 개정안)과 고용세습 국정조사, 청와대 특별감찰반 사태, 카풀정책 등 산적한 현안도 나 원내대표를 어깨를 무겁게 만든다.
원내대표로 취임 후 열흘 간 초반 행보에 대한 당내 평가는 대체로 긍정적이다. 당 최고 의결기구가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운영되고 있는 상황에서 대여(對與) 투쟁과 함께 당내 인적쇄신을 큰 반발 없이 진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유치원 3법과 카풀 정책 등에서 지나치게 정부‧여당과 대립각을 세우려고 힘쓴 나머지 일반 여론과 배치된 주장을 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먼저, 나 원내대표는 취임 후 가장 큰 숙제였던 선거제도 개편 관련 바른미래당 손학규‧정의당 이정미 대표의 단식농성이라는 산을 넘었다. 원내대표로 선출되기 전인 지난 6일부터 시작된 두 야당 대표의 단식농성은 사실상 한국당을 타깃으로 해 부담으로 작용했는데, 다행히 여야 5당이 극적 타결을 이룬 것이다.
당초 나 원내대표는 연동형 비례제도 도입을 꺼리는 당내 여론을 돌릴 수도 없고, 그렇다고 단식농성을 두고만 볼 수도 없는 난감한 처지였다. 당내에선 이같은 상황에서 '권력구조 개헌'을 전제로 한 '선거구제 개편'이라는 조건을 걸어 출구를 마련한 나 원내대표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기류다.
다만, 합의문 서명 후 '도입 검토' 등 문구 해석을 두고 곧바로 신경전이 벌어져 본격적인 협상은 이제부터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21일 국회에서 열린 자유한국당 청와대 특감반 진상조사단회의에서 나경원 원내대표가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윤창원 기자)
최근 논란이 된 청와대 특감반의 '민간인 사찰' 의혹 관련 제1야당의 대응 전략도 나 원내대표에게 달렸다. 특감반원이었던 김태우 전 수사관이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연일 폭로를 이어가는 가운데 명확한 사실관계를 바탕으로 청와대의 실정(失政)을 지적하는 게 관건이다.
전임자인 김성태 전 원내대표가 지난 4월 김기식 전 금융감독원장의 외유성 출장 및 셀프후원 등을 집중 비판, 김 전 원장은 취임 17일 만에 자진 사퇴했다. 당내에선 김 전 원장 사퇴와 드루킹 특검 등을 김 전 원내대표의 투쟁력에 의한 결과로 보는 시각이 많아, 나 원내대표를 향한 당내 기대가 클 수 밖에 없다.
지난 국정감사에서 일부 사립유치원 원장들이 운영비로 '명품백' 및 '성인용품' 등을 구매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논란이 된 '유치원 3법'도 나 원내대표 앞에 놓인 과제 중 하나다. 내년도 예산안 처리를 위해 지난 8일 열린 본회의 직전까지 여야 원내대표와 교육위 소속 의원들은 '유치원 3법' 협상을 펼쳤지만 무산된 바 있다.
이후 지난 20일 교육위 법안소위에서도 이견을 좁히지 못하면서 사실상 12월 임시국회 내 처리가 물 건너갔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이에 민주당이 본회의 상정까지 330일이 걸리는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카드를 꺼내들면서 한국당은 여론의 압박을 받는 모양새다. 나 원내대표는 각 의원들의 전문성과 책임성을 고려해 '상임위 중심주의'를 표방했지만, 사안의 중대성을 고려하면 당 지도부가 협상에 나설 수 밖에 없다는 관측이다.
지난 10월 국정감사에서 한국당이 '서울교통공사 채용비리'를 시작으로 촉발된 '공공기관 고용세습 국정조사'도 순탄치 않을 전망이다. 지난 20일 한국당 김성태 전 원내대표의 딸 KT 채용비리 의혹이 제기되면서 야3당 공조가 흔들리고 있다. 민주평화당과 정의당은 해당 의혹도 국정조사에 포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민주당은 김 전 원내대표 딸 의혹을 국정조사 범위에 포함할지 논의한 바 없다고 했다. 나 원내대표는 해당 논란에 대해 당의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지만, 국정조사 계획서 협상 과정에서 악재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다. 서울교통공사 채용비리 의혹을 들추며 시작된 대여 공세 분위기를 어느 정도 이어갈 수 있을지 나 원내대표에게 달렸다는 게 중론이다.
이외에도 지난 20일 택시업계의 총파업을 부른 '카풀 정책' 관련 방향성을 명확히 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문재인 정부와 대립각을 세워 지지율을 얻기 위한 목적으로만 '카풀 정책'에 반대할 경우, '자유시장경제'와 '4차산업혁명 성장'을 외쳐온 당론과 배치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나 원내대표는 전날 총파업 집회에서 "택시 생존권을 말살하는 정부의 정책을 그대로 둬서는 안 된다"며 "여러분의 목소리를 담아 상생할 수 있는 카풀을 같이 고민하겠다"면서도 구체적인 대안 언급은 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