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컷 영화톡]'마약왕' 송강호가 지워낸 '내부자들'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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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12-20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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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기자들이 본 '마약왕' 이야기
송강호·유신·여성 캐릭터들…'내부자들'과 같은 '청불' 다른 알맹이

영화 '마약왕' 스틸컷. (사진=쇼박스 제공)

 

대목인 겨울 극장가 기대작으로 꼽혀 온 송강호 주연 '마약왕'이 19일 개봉했습니다. 1970년대 시대상과 '내부자들'(2015)로 역대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 영화 흥행 기록을 지닌 우민호 감독 작품으로도 이목을 끕니다. 최근 언론시사회를 통해 '마약왕'을 미리 본 기자들이 나눈 이야기를 전합니다.

유원정 기자(이하 유): 처음과 끝이 송강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밀수업을 하던 소시민적 모습부터 마약왕이 된 후 미묘한 변화가 쌓여 다른 인격체가 되는 모습까지, 송강호는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연기를 펼친다. '마약왕' 위치까지 올라간 후 이두삼 심리 변화는 특히 송강호의 밀도 있는 연기가 집약된 부분이다.

이진욱 기자(이하 이): '변호인' '택시운전사'에서 익히 봐 왔듯이, 인물의 극적인 변화를 설득력 있게 그리는 배우가 송강호 말고는 잘 떠오르지 않는다. 그의 변화무쌍한 연기를 제대로 끌어냈다는 것만으로도 이 영화는 커다란 성과를 얻었다.

유: 부와 권력을 가졌지만 늘 불안과 의심에 시달리는 모습은 어쩔 수 없는 결말이면서도 잘못된 선택을 연속한 이두삼 개인에 대한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그 역시 특수한 시대가 만들어낸 뒤틀린 결과물에 불과하다는 점을 영화는 분명히 한다. 자칫 잘못하면 개연성에 흠집이 날 수도 있는 주연 캐릭터의 180도 변화를 송강호는 2시간 30분에 이르는 긴 러닝타임 동안 점진적으로, 설득력 있게 표현해낸다. 사이 사이 영화 분위기를 형성하는 블랙코미디까지 펼쳐 송강호라는 배우가 가진 역량을 짐작하게 한다.

영화 '마약왕' 스틸컷. (사진=쇼박스 제공)

 

이: 이두삼은 기민한 인물이다. 촉이 예민하다. 무엇을 해야 자신이 원하는 결과물을 얻을 수 있는지 잘 안다. 일제강점기 만주에서 태어나 해방 뒤 한국으로 돌아온 그의 비주류적 삶이 어떠했을지 짐작할 수 있다. 그런 그가 무법지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온갖 권력형 비리가 판치는 사회에서 살아갈 선택지는 많지 않았을 것이다. 이 점에서 이두삼은 시대가 낳은 괴물이라는 데 동의한다.

유: '마약왕'의 시대 배경은 '무엇이든지 수출만 하면 애국이 되는' 1970년대다. 마약으로 거대한 부를 끌어 모은 이두삼(송강호) 역시 자신이 수출 역군이며 애국자라고 굳게 믿는다. 그러나 검사 김인구(조정석)가 이두삼을 취조하는 장면 속 대사에서 그 시절의 진정한 수출 역군은 한달에 600원씩 받으며 16시간 노동을 했던 방직공장 여공들임을 알 수 있다.

이: 극중 검사 김인구가 마약 카르텔을 소탕하기 위한 본부를 꾸린 장소도 의미심장하다. 미싱 앞에 줄지어 앉은 여공들이 고개 숙여 일하는 방직공장에 들어선 본부는 온갖 부조리한 이해관계를 엮어가며 마약을 유통하고 떼돈을 버는 이두삼, 권력자들의 모습과 절묘한 대비를 이룬다.

유: 실제로 1970년대는 YH무역농성사건 등 여성 노동자들의 사회 운동이 활발하게 펼쳐지던 시기다. 이들은 나라 수출 산업을 이끌면서도 장시간 저임금 노동에 시달려 인간적 대우를 받지 못했다. 김인구 검사가 방직공장에 이두삼 조사팀을 차림으로써 영화는 그들의 노동환경을 여러 번 노출한다. 수출로 상을 받는 이두삼의 모습과 어두운 방직공장에서 쉬지 않고 노동하는 방직공장 여공들의 모습이 겹쳐지면서 시대의 아이러니가 드러난다.

영화 '마약왕' 스틸컷. (사진=쇼박스 제공)

 

이: 1972년부터 1980년까지 이 영화가 다루는 시기는 박정희 유신시대와 정확히 일치한다. 전태일 열사 분신 등에서 알 수 있듯이 정치·사회·경제 문제로 장기집권 체제가 흔들리는 상황에서 국민들을 광범위하게 통제하려 드는 권력의 민낯을 이 영화는 이두삼이라는 인물의 일대기를 통해 우회적으로 비판한다. 그러면서도 몰입도를 잃지 않았다는 점은 이 영화의 미덕으로 다가온다.

유: 이두삼 개인사와 시대를 대표하는 크고 작은 정치사들을 블랙코미디식으로 얽히게 연출했다. 국가가 엄격하게 개인을 통제하던 유신시대에 마약 등이 자유롭게 유통되는 상류층 세계는 먹고 살기 힘들었던 평범한 서민들의 세상과는 하늘과 땅만큼 다르다. 영화는 마약 산업으로 서민에서 상류층에 진입하는 이두삼의 변화를 통해 위선적이면서도 모순적인 시대 상황을 충분히 이야기한다.

이: 제도적인 민주화가 이뤄지고, 광화문 촛불시위까지 거쳤지만 과연 이 시대가 그 당시와 얼마나 다른가 생각해보면 내용면에서는 크게 달라진 부분이 없다. 적어도 '정의롭게' 사는 것이 '바보 같은' 것으로 취급되는 시대라는 점에서 그렇다. 위기 상황에 시스템보다는 그럴듯한 인맥이 더 의지가 되는 상황도 그렇다. 시스템 허점을 잘 이용해 자신의 이득을 챙기며 살아가는 것이 '똑똑한 인생'이라는 평가가 당연한 시대, 이 내용이 변하기 전까지는 비슷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다.

유: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 이야기도 하지 않을 수 없다. 우민호 감독은 전작 '내부자들'에서 부패한 권력을 보여주기 위해 노골적인 성관계 장면이나 집단 누드 장면 등을 이용했다. 그러나 '마약왕'은 남성 권력자들이 여성을 성적 대상화하는 방식으로 부패성을 보여주지 않는다. 마약이라는 소재를 이용해 훨씬 개별적으로, 그리고 송강호가 연기한 이두삼이라는 인물의 심리 변화를 중심으로 시대의 민낯을 드러낸다.

영화 '마약왕' 스틸컷. (사진=쇼박스 제공)

 

이: 극중 이두삼이 아내 성숙경(김소진)과 싸우면서 폭력을 쓸 때 성숙경의 반응이 흥미롭더라. 그간 영화 속 여성 캐릭터들의 수동성에 대한 비판을 수용한 결과물로 다가왔다. '마약왕'과 같은 날 개봉해 맞대결을 예고한 '스윙키즈'에도 남성의 폭력에 반응하는 여성 캐릭터가 비슷한 맥락에서 대응하는 장면이 나온다. '마약왕' 속 여성 캐릭터들 활용은 어떻게 다가왔나?

유: 우려와 달리 로비스트 김정아 역 배두나와 이두삼 아내 성숙경 역 배우 김소진은 영화 속에서 인상적인 활약을 펼친다. 비록 송강호가 원톱이지만 그 외 입체적인 조연 캐릭터들은 여성 배우들이 담당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보수적인 1970년대라는 배경을 감안했을 때 각기 다른 계층의 이 여성 캐릭터들을 최대한 주체적으로 그리려 노력한 점이 엿보인다.

이: 김정아는 이두삼의 불륜 상대이기에 앞서 그를 도와준 대등한 위치의 사업 파트너이고, 성숙경은 이두삼의 아내이기 전에 위기 상황에서 강단 있게 집안을 이끌어가는 실질적 가장이다. 두 캐릭터는 이두삼의 부속물처럼 존재하기보다는 자신의 신념과 주관, 선택대로 삶을 꾸려나간다. 이두삼과 갈등을 빚는 장면에서도 물리적, 심적인 폭력에 당하고만 있지 않는다. 물론 배두나·김소진 두 배우의 섬세하고도 에너지 넘치는 연기가 없었다면 이런 캐릭터는 완성되지 못했을 것이다.

▷ 유원정 기자 한줄평: '내부자들2'가 될까 우려했지만 스타일은 살리되 알맹이는 달라졌다.
▷ 이진욱 기자 한줄평: 송강호와 유신이 다했다. 연기와 시대가 어우러져 빚어내는 시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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