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쓸히 울려퍼지는 자선냄비 종소리…'순수한 아이들 덕에 희망은 있다'

노컷뉴스 이 시각 추천뉴스

닫기

- +

이 시각 추천뉴스를 확인하세요

16일 동대구역에서 열린 구세군 자선냄비 거리모금 현장. (사진=류연정 기자)

 

"한 시간 동안 수 백명이 지나가는데 정작 멈춰서 돌아보는 사람은 몇 십명도 안 되고 돈을 넣는 사람은 10명이 채 안 되는 것 같아요"

지난 16일 오후 2시, 동대구역 2번 출구에서 구세군 자선냄비 모금활동에 나선 한 중학생 봉사자는 추운 손을 호호 불어가며 종을 울려댔다.

'딸랑딸랑' 종소리가 역 광장에 울려퍼졌지만 쳐다보는 이는 거의 없었다. 모두 제 갈 길을 가기에 바빴다.

10분 동안 시민 한, 두 명이 꼬깃한 천원짜리 지폐를 모금함에 넣었다.

"사실 저희 부모님도 길 가다가 기부는 잘 안하세요. 정기 후원은 하시고 계시지만…"

이영학 사건 등으로 기부금 사용처에 대한 불신이 팽배해지면서 기부포비아 정서가 확산됐기 때문일까.

올해 연말은 이웃을 돕기 위한 열기가 예전만 못한 것 같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실제로 지난해 구세군 거리모금액이 이전해 대비 13%가량 줄어들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올해도 상황은 녹록지 않아 보인다.

이날 자선냄비 봉사에 나선 김은영(대구가톨릭대 4학년)씨는 "역이 복잡하다보니 구세군 냄비를 성가시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꽤 있다. 그런 분들이 와서 종이나 자선냄비를 툭툭 치고 간다"며 "기부를 하고 안 하고는 자유지만 좋은 취지에서 하는 일이니 그렇게 삐딱하게 받아들이진 말아주셨으면 좋겠다"고 싸늘한 시민들의 반응을 전했다.

일부 시민들은 기부에 대한 인식 자체가 변화하고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대구에 사는 한 40대 주부는 "자선냄비에 돈을 넣으면서 이건 영수증 처리가 안 되나 하는 생각이 불현듯 떠올랐는데 곧바로 부끄러워졌고 스스로 반성을 했다. 예전에는 순수한 마음으로 이웃을 돕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점점 그런 문화가 옅어지는 게 안타깝다"고 털어놨다.

그는 "순수하게 이웃을 돕는 따뜻한 마음을 잊지 말자는 취지에서, 또 아이들에게 그런 마음을 교육하기 위해서 구세군 자선냄비에 종종 돈을 넣고 있다"고 덧붙였다.

16일 동대구역에서 열린 구세군 자선냄비 거리모금 현장. (사진=류연정 기자)

 

실제 이날 현장에는 아이들 손을 잡고 자선냄비를 찾는 부모들이 많았고 도리어 아이들이 기부를 하고 싶다고 졸라 걸음을 멈추는 부모들도 꽤 보였다.

자라나는 새싹들 덕분에 얼어붙은 기부 문화에 다시 온기가 찾아올 거라는 희망이 보이는 대목이었다.

봉사자 강동우(영진고 1학년)군은 "많이 각박해졌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오늘 여러 분들이 기부에 동참하는 모습을 보면서 마음이 따뜻했다. 어린 아이들이 고사리 같은 손으로 돈을 넣을 때는 앞으로 우리 사회가 더 따뜻해질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고 소회를 밝혔다.

아버지와 함께 역을 찾은 정혜동(덕인초 3학년)군은 "우리보다 어려운 사람을 도와서 그 사람들이 더 행복할 수 있게 해주고 싶어요"라며 구세군 자선냄비에 지폐를 넣었다.

이를 지켜보던 강원중 구세군 동대구상담센터 소장은 "경제 상황도 좋지 않고 기부에 대한 인식도 나빠져서 기부 한파라는 이야기가 나오는 게 사실이다. 그래도 모금에 참여해주시는 분들을 보면서 올해는 조금 낫지 않을까 기대되고 소외된 이웃들이 따뜻한 연말을 날 수 있게 많은 분들이 도와주시고 있다는 것에 감사하게 된다"고 말했다.

지난 12일 기준 올해 구세군 자선냄비 거리모금액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약 36% 적다.

구세군 자선냄비 거리 집중 모금기간은 31일까지며 대구에서는 동성로와 동대구역 등지에서 만나볼 수 있다.

0

0

오늘의 기자

    많이본 뉴스

      실시간 댓글

        상단으로 이동
        페이스북 트위터 네이버 다음 카카오채널 유튜브

        다양한 채널에서 노컷뉴스를 만나보세요

        제보 APP설치 PC버전

        회사소개 사업자정보 개인정보 처리방침 이용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