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한국당 김병준 비상대책위원장 (사진=윤창원 기자/자료사진)
제1야당 자유한국당의 6·13 지방선거 참패 후 이 정당의 선장이 된 김병준 비상대책위원장이 오는 24일로 취임 100일을 맞는다.
김 위원장은 노무현정부 청와대 정책실장을 지낸 '노무현의 남자'에서 대통령선거와 지방선거에서 연이은 패배로 허물어져 가는 보수야당의 구원투수가 됐다.
100일간의 성적표는 일단 하루가 멀다고 계파 갈등에 몸살을 앓던 당을 안정적으로 이끌고 있다는 점에서는 좋은 점수를 줄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반면 당 혁신의 핵심이라 할 인적 쇄신에서 성과를 내지 못했다는 측면에선 후한 점수를 받기 어려워 보인다는 지적이 뒤따른다.
비대위는 우선 연말까지 조강특위를 통해 당협위원장 교체 작업을 마무리하고, 내년 2∼3월로 예정된 전당대회를 치르기 전에 당헌·당규 개정, 범보수 통합 작업까지 추진할 계획이다.
현실 정치인으로서의 '김병준 리더십'도 인적청산, 외부인재 수혈 등과 함께 시험대에 올랐다는 분석이다.
지난 7월 비대위 출범을 전후로 한국당은 지방선거 패배의 책임 소재를 두고 친박(친박근혜)과 비박(비박근혜), 복당파와 잔류파, 친홍(친홍준표)과 반홍(반홍준표) 등으로 갈려 극심한 계파 간 갈등을 노출했다.
이런 상황에서 김 위원장은 취임 일성으로 보수 가치 재정립을 들고 나왔다. 당 안팎에서는 비대위가 들어서면 '살생부 리스트'부터 돌 것이라는 얘기가 파다했기 때문에 이는 예상 밖의 행보였다.
김 위원장은 또 비대위 산하 가치·좌표 재정립 소위, 정책·대안 정당 소위, 정당개혁 소위, 시스템·정치개혁 소위 등 4개 소위를 만들어 핵심정책 과제를 추려내기로 했다.
문재인정권의 성격을 '과도한 국가주의'로 규정하고, 이에 대항해 한국당이 추구해야 할 가치로 '자율'과 '국민성장론'을 내세웠다.
김 위원장은 평소 강연과 연설 등에서도 '막춤을 추더라도 국민 스스로 추게 해야 한다'는 비유를 들어 거시경제 정책부터 국민의 일상생활까지 스며든 국가주의를 경계해야 한다고 강조해왔다.
일각에서는 이같은 '반(反)국가주의' 프레임이 지나치게 교과서적이어서 대중 정치언어로는 적절하지 않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지만, 문재인정권과 대척점을 세우고 보수야당의 존재감을 드러냈다는 긍정적인 평가도 받는다.
하지만 '김병준의 한국당'마저 한반도 비핵화와 탈냉전이 역사적 전환기를 맞은 현실을 외면한 채 대북 정책과, 평화 이슈에 관한 정치·외교노선에서 수구·냉전적 태도를 버리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계속 받고 있다.
나아가, 인적 쇄신을 포함한 당 혁신 작업이 지지부진했기 때문에 지난 100일의 한계는 명확하다고 보는 이들이 많다. 인적 쇄신 없는 가치 재정립·정책혁신은 반쪽짜리에 불과하다는 시각이다.
애초 김 위원장은 '인위적인 인적 쇄신에는 반대한다'고 주장했다. 인적 쇄신이 곧 계파 갈등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다분하다는 점을 고려한, 계산된 발언이었다.
이 때문에 계파 다툼을 억제하는 효과는 있었지만, 당 안팎에서는 '100일간 한 일이 뚜렷하게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비평도 나온다.
이런 가운데 김 위원장은 전국 253개 당협위원장 정리 작업에 착수했다.
당협위원장을 평가하는 조강특위 위원에 외부인사인 전원책 변호사를 영입해 사실상 '전권'을 주겠다고 공언한 상태다.
이를 두고 당내에서는 대구·경북(TK)이나 부산·울산·경남(PK)과 같은 '양지'부터 3선 이상 현역들이 맡은 지역은 모두 물갈이 대상이라는 말도 돌았지만, 결국 '현역의원 물갈이는 불가능할 것'이라는 냉소적인 시각도 팽배하다.
조강특위를 통한 인적청산과 별개로 김 위원장은 최근 '강연정치'에 시동을 걸면서 청년층을 끌어안는 행보도 보이고 있다.
취임 후 처음으로 호남을 찾아 조선대에서 특강을 한 데 이어 제주대·대전대 등에서 청년들에게 대한민국이 당면한 현실과 미래 방향에 대해 말했다. 지난 20일에는 영등포 당사에 마련한 '시민정치원'에서 청년 대상 특강을 열었다.
보수대통합을 위한 범보수 인사들과의 접촉면도 넓혀가고 있다.
최근에는 오세훈 전 서울시장, 황교안 전 국무총리, 원희룡 제주지사를 잇달아 만나 보수 외연 확장에 나섰다.
이들 범보수 인사들이 가까운 시일 내 입당하거나 당장 내년 초 전당대회에 나서겠다고 밝히지는 않았지만, 김 위원장이 2020년 총선을 앞두고 벌어질 정계개편과 보수통합의 불씨를 지피고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그럼에도, 답보를 지속하는 지지율 제고는 김 위원장에게 가장 버거운 과제 중 하나다.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지지도가 80%대의 고공행진을 펼치다가 60%대로 내려앉았지만 한국당은 이를 흡수하지 못한 채 낮은 박스권 지지율에 만족해야 하는 처지다.
김 위원장은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아직 해야 할 일이 태산같이 남아 있어서 지지율에 압박을 느끼지 않는다"며 "당 개혁을 위한 소위 등은 일정대로 가고 있다"고 강조했다.
김 위원장은 "당 지지율만 생각하면 비대위 초반부터 사람을 후다닥 내보내고 말지 왜 이렇게 길게 가겠는가. 당이 진정으로 변하는 모습을 국민들이 얼마나 이해해주느냐가 중요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