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육군에서 사용 중인 조준경 PVS-11K
군이 A업체로부터 납품 받은 조준경이 A업체가 미국 시중에 판매하는 조준경보다 가격은 비싸면서도 성능은 훨씬 떨어지는 것으로 드러났다.
결국 군은 다시 새 조준경을 구매하기로 했지만, 현재 시험평가를 하는 조준경들도 시중에 파는 조준경보다 비싸기는 마찬가지다.
현실과 동떨어진 무기도입 체계로 300여억원의 예산을 날리고도 여전히 탁상행정에 머물러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앞서 군은 총기를 처음 만져본 58세 여성도 조준경을 통해 사격을 하면 정확한 사격이 가능하며 크게 홍보한 바 있다.
◇ 3백억 들였는데…美시중 제품보다 성능 떨어져15일 더불어민주당 김병기 의원이 확보한 자료에 따르면, 합동참모본부는 2008년 11월 보병전투원 전투력 향상의 일환으로 주·야간 조준경을 구입하기로 결정했다.
합참은 방사청을 통해 A업체에 조준경 연구.개발부터 양산까지 맡겼고, 조준경 도입을 결정한 지 10년 만인 지난해 전방부대에 보급했다. 조준경 'PVS-11K' 총 3만5117대, 비용은 303억4천여만원으로 1대당 64만원 수준이었다.
하지만 문제가 생겼다. 조준경 배터리 시간이 48시간밖에 되지 않아 장기 군사작전 수행에 부적합했던 것이다.
더욱 황당한 것은 A업체가 현재 미국에서 판매하는 조준경의 배터리 성능은 2만 시간에 달한다는 사실이다. 군 요구성능을 충족하는 것은 물론 다른 시제품에 비해서도 평균 이상의 성능을 지니고 있지만 가격은 절반 수준인 약 33만원(297달러)이다.
결국 군은 A업체가 만든 조준경 중 비싸면서 성능은 떨어지는 조준경을 납품 받는 사이 미국 시중에는 A업체의 값싸고 성능 좋은 조준경이 팔리는 모양새가 됐다.
◇ 왜 이런 황당한 일이?같은 업체에서 만든 조준경인데, 군에 납품되는 조준경이 미국에서 팔리는 조준경보다 성능은 떨어지고 비싼 현실의 배경에는 군의 무기구입 체계가 자리 잡고 있다.
군은 복잡한 단계를 거쳐 무기체계를 도입한다. 구매를 결정하는 일부터 연구.개발 과정을 거쳐 양산까지 5~10년 정도 걸린다고 한다. 문제의 조준경도 구매 결정부터 양산, 보급까지 10년 정도가 걸렸다.
군은 장비나 무기 등에 대한 구매를 결정할 때 '요구성능'이라는 조건을 붙인다. 군에서 요구하는 장비나 무기의 최소 수준으로, 이 조건이 충족되는 제품들 중 가격 경쟁력이 큰 제품을 사야 한다.
문제는 무기를 구매하기로 할 때 '요구성능'을 제시하는 시점과 실제 무기가 보급되는 사이의 시간 동안 무기나 장비와 관련한 기술이 급속도로 발전한다는 점이다.
10년 전에 제시한 요구성능만 만족하면 무기를 군에 납품할 수 있지만, 시중에는 경쟁력 있는 제품을 내놓아야 하기 때문에 우수한 성능의 신제품들이 서로 앞다퉈 나오게 된다.
육군은 결국 올해 조준경 배터리 수명을 400시간으로 늘려 새 조준경을 다시 구매하기로 했다. 조준경을 보급한 지 1년 만에 재구매를 결정한 것으로, 기존에 들어갔던 303억 4천여만원은 결국 낭비가 된 셈이다.
◇ 재구매 검토 조준경도 시제품보다 비싸하지만 육군이 현재 재구매를 검토하는 조준경조차 시중에서 판매하는 제품보다 비싼 것으로 드러났다.
육군은 무기체계 전력화 단계가 현실에 맞지 않는다는 점을 인정하고 자체 구매 방식(전력지원체계 조달)으로 조준경을 구입하려 하고 있다. 내년부터 조준경 등 워리어 플랫폼 장비를 보급해 2023년까지 전력화를 완료하기로 계획하고 있다.
현재 군은 입찰에 참여한 조준경의 성능을 시험평가하고 있는데, 가격대가 53만원에서 82만원 사이인 것으로 확인됐다.
하지만 이미 A업체가 미국에서 판매하고 있는 제품만해도 군이 제시한 요구성능을 충족하고 있다. 가격이 33만원으로 현재 시험평가를 받는 제품보다 가격 경쟁력이 뛰어나지만, 군은 비싼 제품들만 들여다보는 상황이다.
김병기 의원은 "광학전자장비와 같이 기술발전 속도가 굉장히 빠른 무기체계에 대해서는 장기간이 소요되는 기존의 전력화 방식보다 신속한 구매 방식으로 획득할 필요가 있다"며 "이 경우에도 철저한 시장조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