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날을 하루 앞둔 지난 8일, 강서구 화곡본동 자치회관 2층은 오전부터 한글을 배우기 위한 수강생들로 가득 찼다.
강서구청에서 매주 월, 수, 금 두 시간씩 진행하는 성인문해교실 한글 중급반은 배정된 좌석을 가득 채워 따로 의자를 가져다 놓아야 할 만큼 학습 열기가 뜨거웠다.
자치회관 관계자는 "정원은 20명인데 배우고 싶다는 분들이 많아서 30명으로 운영하고 있다"며 "배우러 오시는 분들을 가라고 할 수가 없어서 최대한 빡빡하게 가르치고 있다"고 했다.
오전 10시, 구로동에서 처음 온 '젊은이' 안정애(64)씨를 위한 환영인사를 겸한 출석체크가 끝나고 수업이 시작됐다.
칸이 널찍한 어린이용 받아쓰기 공책 위에 잘 깎은 연필을 손에 꼭 쥔 수강생들의 표정은 사뭇 진지했다.
지난 3월부터 강의를 듣기 시작한 김명숙(64)씨에게 한글교실은 각별하다. 사는 내내 국민학교를 졸업하지 못해 글을 모르는 건 콤플렉스였다고 한다.
김씨는 "손녀를 봐주는데 점점 크면서 '할머니 이 글자가 뭐야?' 물을 때 그걸 모르겠더라"며 글을 배우게 된 계기를 설명했다.
비뚤비뚤한 글씨지만 학습열정은 젊은 사람 못지않다.
김씨는 "받침이 있는 글자를 어떤 순서로 써야 하는지 몰라 집에 가서 엉엉 운 날도 있었다"며 "진작 글을 알았다면 더 재밌게 살 수 있었을 텐데"하고 공부에 대한 애틋함을 나타냈다.
임분순(71)씨도 "아들 손주도 다 키워서 육아를 졸업하고 나니 글을 배우고 싶더라"며 "학교도 다니고 사람들도 만나니 이제야 좀 사는 맛이 난다"며 100점 받은 받아쓰기 공책을 들고 웃었다.
이들을 가르치는 최종란 강사는 "처음에는 자신 이름도 못 쓰시던 분들이 자녀들 도움 없이 은행업무도 보고 왔다고 자랑을 할 때 가장 보람 있다"고 말했다.
늦게 배운 한글이지만 하고 싶은 일은 넘친다.
올해 구순을 맞은 이상분씨는 "공부를 다 해서 천안에 있는 막내딸에게 편지를 써주겠다"며 "이번 추석 때 딸한테 말했더니 '잘 못 쓰면 돌려보낼 것'이라며 너무 좋아했다"고 웃었다.
김명숙씨는 "운전면허도 따고 공인중개사 시험도 도전해 볼 것"이라며 "이제 도전하는 게 두렵지 않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