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 퇴직자들의 재취업 비리를 계기로 공직 퇴직자들이 대기업과 대형로펌 등의 로비스트로 활동하는 관행을 깨야 한다는 요구가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검찰 수사를 통해 재취업 비리가 확인된 공정위를 제외한 다른 정부기관들은 퇴직자들의 재취업 관행과 관련해 '나몰라라'하며 입을 다물고 있는 상황이다.
◇ 막강 감독권 국토 퇴직자도 이익단체로 직행
지난 2016년 국토교통부 고위직으로 퇴직한 A 씨는 퇴직 이듬해인 지난해 공직자윤리위원회의 취업심사를 거쳐 대한건설협회에 재취업했다.
대한건설협회는 건설업자의 이익을 대변하는 단체다. A 씨는 퇴직전 5년간 국토정책국과 국토도시실 등 건설분야와 무관하지 않은 곳에서 근무했지만 공직자윤리위원회는 A 씨의 재취업을 승인해줬다.
지난해 4급으로 퇴직한 B 씨는 퇴직 2개월 만에 화물자동차운송연합회에 재취업했다. 그는 퇴직전 5년동안 교통정책조정과 등 교통관련 업무를 담당했지만 역시 공직자윤리위원회는 B 씨의 재취업이 가능하다고 봤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심재철 의원이 국토교통부로 받은 최근 5년간 4급 이상 퇴직자들의 재취업 심사현황에 따르면 공직자윤리위원회는 최근 5년간 모두 38명을 심사해 35명에 대해 취업가능과 취업승인 결정을 내렸다.
4급 이상 공무원은 퇴직전 5년 이내에 근무했던 부서나 기관의 업무와 관련된 곳에 3년간 취업할 수 없고 취업을 원할 경우 공직자윤리위원회의 심사를 거쳐야 한다.
하지만 위의 예처럼 국토교통부 퇴직자들은 별다른 제한없이 취업심사를 통과해 자신이 맡았던 규제.감독 업무와 관련된 이익단체에 재취업할 수 있었다.
◇ 힘있는 기관일수록 퇴직자 '취업가능' ↑참여연대 행정감시센터는 공정위 재취업 비리를 계기로 지난 2014년부터 2017년까지 최근 4년간 공직자윤리위원회의 취업심사를 거친 퇴직자 1465명의 사례를 취합해 분석했다.
그 결과 전체의 93.1%에 이르는 1340명이 공직자윤리위원회로부터 취업가능 결정을 받았다. 신청자 10명 중에 9명 이상이 퇴직후 3년 이내 재취업에 성공한 셈이다.
기관별로 살펴보면 취업가능 결과를 받은 비율이 가장 높은 곳은 국가정보원과 한국은행으로 각각 33명과 13명이 취업심사를 받아 100% 취업가능 통보를 받았다.
이어 경찰청(328명), 대통령비서실(37명), 국세청(32명) 등이 각각 98.5%, 97.3%, 96.9%의 비율로 취업가능 통지서를 받아들었다.
이들 상위 5개 기관은 모두 권력기관이거나 최고 정책결정 기구로 소위 '힘있는' 기관일 수록 취업가능 비율이 높은 것을 알 수 있다.
여기다 취업제한심사를 거치지 않고 불법 취업한 임의취업자 648명 가운데 63.4%에 달하는 411명이 과태료를 비롯한 제재조치를 면제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 검찰 수사 받은 공정위만 자체 대책 발표
지난 2014년 세월호 참사 당시 해양수산부 출신 퇴직자들이 유관단체 등에 재취업해 로비스트로 활동하며 안전 관리와 감독이 부실해진 사실이 드러난 이후 취업심사 범위와 기준이 강화됐다.
하지만 공정위 재취업 비리 수사나 취업심사 사례분석 결과에서도 드러났듯이 취업심사를 받은 퇴직자 대부분이 재취업에 성공해 실제로는 이런 조치들이 공직자들의 재취업에 법적 정당성만 부여하는 꼴이 됐다.
세월호 참사 이후에도 공정위처럼 조직이 나서 대기업을 압박하며 퇴직자들의 재취업을 압박하거나, 또는 조직의 방조 하에 이해관계가 맞물린 유관단체나 대기업.대형로펌 등에 재취업하는 관행이 여전하다는 것이다.
그나마 검찰 수사로 범죄사실이 드러난 공정위의 경우 여론의 집중포화를 맞고 이같은 관행을 없애겠다며 퇴직자들과의 사적이 접촉 금지 등 '공정위 신뢰제고 방안'을 지난달 20일 내놨다.
하지만 공정위를 제외한 타 정부부처나 기관의 경우 재취업 문제와 관련해 선을 그으며 자체 개혁안 등 대책을 마련하지 않고 있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대책을 발표할 당시 "이 것(재취업 비리)이 단순히 공정위만의 문제가 아니라 정부 전체의 문제이기도 하고, 또 이러한 제도의 기본은 인사혁신처에서 준비가 돼야 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