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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행감찰 과정서 '가혹행위' 논란…행안부 "수사 의뢰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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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폐된 차량에서 '회유·협박'…"내가 맘먹으면 살아남은 공무원 없어"
고양시 공무원 노조 '반발'…"구시대적 인권유린 자행" 장관 직접 사과해야

 

"○○○ 주무관 문제가 있네. 기본이 안 돼 있잖아. 싸우자는 거야. 시도 국과장도 내 앞에서 그런 자세로 감사 안 받아(중략). ○○○씨는 선을 넘어 버렸어. 어떤 벌을 받는지 내가 똑똑히 보여줄게."

드라마나 영화 속 대사가 아니다. 경기도 고양시청 감사실에서 지방공무원을 조사하던 중앙부처 공무원이 퍼부은 '협박성 발언'이다. 해당 음성은 조사를 받는 공무원의 휴대전화에 고스란히 녹음됐다.

행정안전부의 한 조사관(5급)이 고양시 소속 A주무관(7급)을 대상으로 권위적이고 비상식적인 '암행감찰'을 벌였다는 주장이 제기돼 논란이 일고 있다.

A주무관은 "감찰 과정에서 90분간 차량에 감금돼 협박과 강요를 당했다"고 주장한 반면, 행안부 조사관은 "암행감찰 규정을 벗어나지 않았고, 가혹행위도 없었다"며 맞서고 있다.

사실관계 파악에 나선 행안부는 양측의 주장이 엇갈리자 고양시 의견에 따라 경찰에 수사를 의뢰하기로 했다.

◇'감찰기법 vs 가혹행위'…차 안에서 90분간 조사

"성의 있게 임하면 내가 봐 줄 수도 있어. 내가 맘먹으면 살아남은 직원이 없어(중략). 지금 바로 동구청으로 가서 회계서류 다 뒤져서 사무관리비 집행 잘못한 것이 있는지 찾아보고, 찾아서 진술서에 쓰고 도장 찍어서 내가 알려주는 번호로 사진 찍어 보내. 밤 8시가 됐든, 9시가 됐든 오늘 중으로 문자로 사진 찍어 보내."

지난 1일 A주무관이 국가인권위원회에 접수한 '행정안전부 ○○○ 조사담당관을 고발합니다'라는 진정서 내용의 일부분이다.

진정서에 따르면 지난달 30일 오후 2시30분쯤 A주무관은 행안부 조사관에 이끌려 고양시 청사 외부 이면도로에 주차된 차량 조수석에 탑승했다. 당시 차량에는 조사관 1명이 더 타고 있었다.

A주무관은 뒷좌석에 있는 조사관 B씨가 "오래전부터 A주무관을 감찰해왔고, 이미 갖고 있는 자료만으로도 끝내 버릴 수 있다"며 "부당하게 사무 관리를 집행한 사실을 하나도 빼놓지 말고 20분 동안 다 적어"라며 강요를 받았다고 밝혔다.

이어 A주무관이 "부당하게 사무 관리를 집행한 사실이 없다"고 하자, 조사관 B씨는 "지금 나랑 장난해"라며 공포 분위기를 조성한 뒤 자신이 불러준 내용으로 확인서를 작성하라며 재차 강요했다고 주장했다.

이 과정에서 "공무원 안 해도 먹고 살 수 있느냐. 집은 뭐냐. 애들은 몇이고 몇 살이냐. 아직 신혼이냐"는 등 감찰과 관련 없는 조사관 B씨의 질문도 반복됐다고 했다.

그러면서 B씨가 "지금 바로 이전 근무지로 가서 회계서류 다 뒤져서 사무관리비 집행 잘못된 것을 찾아 사진을 찍어 휴대전화로 보내라"고 요구했다고 강조했다.

A주무관은 "오후 4시쯤 일방적이고 굴욕적인 취조를 마치고 차량에서 내렸다"며 "90분 동안 일방적인 비밀감사를 요구받으며 공포를 느껴야 했다"며 심적 고통을 드러냈다.

다음날 A주무관은 출근길에 시청 감사담당관실 직원으로부터 어제 자신을 취조한 이들이 행안부 직원이 맞다는 연락과 함께 오전 10시까지 감사팀으로 오라는 통보를 받았다.

A주무관은 "감사팀에서 조사가 시작된 뒤 행안부 조사관 B씨가 어제 내 행동에 대해 지적을 했다"며 "공무원 같은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 어떤 벌을 받는지 똑똑히 보여줄게"라고 말한 뒤 개인 소지품을 꺼낼 것과 시 조사팀장에게 몸수색까지 할 것을 지시했다고 전했다.

◇고양시 공무원 '공분'…"김부겸 행안부장관 공식 사과하라"

"호랑이 앞에 토끼처럼 굴면 살고, 할 말하면 죽이는 것이 행정안전부 감사관의 감사방식이고 자세입니까. 시종일관 반말과 위협적 언행으로 부당한 행위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면 싸우자는 거냐며 감사 못하겠다고 하는 것이 감사관의 태도입니까. 2018년 대한민국에 이런 감사가 존재한다는 것이 끔직하고 충격적일 따름입니다."

지난 3일 A주무관이 시청 내부게시판에 행안부의 부당한 감찰 활동에 대한 억울함을 토로한 내용이다. 중앙부처의 비상식적인 감사방식이 공개되자 내부게시판은 행안부 조사관을 비난하는 수 백건의 글들이 올라왔다.

"내부 감사를 통해 마무리가 된 내용으로 불법적인 감찰을 한다는 것을 납득할 수 없다", "지금이 군사정권도 아니고 그야말로 적폐다. 영화 1987이 떠오른다" 등의 내용이 줄을 이었다.

다음날 고양시 공무원노조도 행안부를 항의 방문해 해당 감사관의 파면과 김부겸 장관의 직접인 사과를 요구했다.

노조는 "인권유린적인 감사로 조합원인 A주무관이 억울함과 공포로 심적 공황상태에 빠져 노조에 긴급히 도움을 요청했다"며 "행안부 직원이 구시대적 봉건적인 방법으로 헌법과 형법에 위배되는 인권유린을 자행했다"고 밝혔다.

이어 "지금껏 관행·적폐 습관인 물타기와 치졸한 눈속임을 하지 말고, 은밀한 보복행위도 시도하지 말아야 할 것"이라고 지적하고 "행안부장관은 피해 공무원에게 공식 사과하고 문제 직원을 즉시 파면하라"고 요구했다.

그러면서 "적절한 조치가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해당 감사관에 대한 형사고소 등 법적인 모든 조치를 강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해 행안부는 해당 조사관의 업무를 중단시키고 사실관계 파악에 나섰다.

행안부 관계자는 "해당 직원을 복귀 시켜 사실 관계를 확인하고 있는데 얘기가 다른 부분이 있다"며 "조사가 끝나봐야 알겠지만 감사 과정에서 강압 여부가 확인된다면 절차에 따라 징계를 진행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지난 4일 행안부는 고양시를 방문해 조사관 B씨에 대한 진상조사를 벌였지만 차량 감금, 협박 등 가혹행위에 대해서는 경기도, 고양시와 의견 차이를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고양시는 경찰에 수사를 의뢰해 사실관계를 확인하자고 제안했고, 행안부는 이를 수용한 것으로 전해졌다.

고양시 관계자는 "양측의 주장이 엇갈리고 있는 만큼 가혹행위 여부는 경찰 수사로 드러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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