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인터스텔라' 스틸컷(사진=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제공)
'우주' 하면 떠오르는 공상과학(SF) 영화는 무궁무진하다. 광활한 우주에 관한 호기심을 충족시키는 데 머물지 않고 철학적 메시지까지 더한 최근작들만 해도 '마션'(2015), '인터스텔라'(2014), '그래비티'(2013) 등을 금새 꼽을 수 있으리라.
여기서 의문 하나가 생길 법도 하다. 우주만큼이나 미지의 세계로 일컬어지는 깊은 바닷속, 즉 '심해'(深海)를 대표하는 영화 등 대중문화 콘텐츠는 왜 상대적으로 취약할까.
중장년 영화팬들 중에서는 문득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어비스'(1989)를 떠올릴 수도 있겠으나, 무려 30년 가까이 흐른 이 영화가 해양 SF 영화를 대표한다는 사실은 왠지 서글프다.
주류 과학자임에도 저서 등으로 비주류 과학에 대한 대중의 관심사를 끌어올려 온 우석대 전기전자공학과 맹성렬 교수는 27일 그 원인으로 '체험에 의한 공포심'을 추론했다.
"강이나 바다에서 수영해 본 사람은 알 것이다. (수면) 아래로 내려가면 깜깜하고, 저 밑에서 뭔가 무서운 것이 갑자기 나타날 것만 같잖나. 실생활에서 경험한 이러한 점이 심해에 대한 호기심보다는 공포심을 자극하는 것으로 보인다."
맹 교수는 "우주 역시 심해만큼이나 위험하고 열악한 환경이지만, 아무래도 우주에 나가본 사람이 극소수이다보니 공포심보다는 막연한 환상이나 호기심이 클 것"이라며 "바다는 누구나 언제든 접할 수 있고, 그 깊은 곳에 대한 막연한 공포감으로 인해 상대적으로 심해를 다룬 문화 콘텐츠의 대중적 관심사를 떨어뜨리는 면이 있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심해에 대한 우리네 관심사가 우주에 비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이유를 인류의 본성에서 찾는 목소리도 있다.
SF 평론가인 박상준 서울SF아카이브 대표는 같은 날 "당대 트렌드나 취향으로 인해 특정 소재를 채택한 작품이 전 세계적으로 흥행하고, 대중의 관심이 그쪽으로 쏠리는 경향도 무시할 수 없다"며 "이 점을 제외하더라도 해저보다 우주가 더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이유는 지구를 떠나 더 넓은 시공간을 지향하는 인류의 관심사, 다시 말해 더 먼 곳을 바라보려는 인간의 원초적인 본성이 작용하기 때문"이라고 봤다.
박 대표는 "달과 화성의 경우 표면 지도가 100% 완성된 반면, 지구의 심해는 95% 이상이 완전한 미지의 세계로 남아 있다"며 "실제로 달에 갔다 온 인간은 10명이 넘는 데 비해 지구에서 가장 깊은 바닷속까지 다녀온 심해 탐험가는 3명 정도 밖에 없다"고 전했다.
◇ 지구 안팎의 상대성…"우주 탐사와 심해 탐사는 유사 체험"
영화 '마션' 스틸컷(사진=이십세기폭스 코리아 제공)
흥미로운 사실이 하나 있다. 박 대표가 말한 극소수 심해 탐험가 가운데, 앞서 언급한 해양 SF 영화 '어비스'의 연출자 제임스 카메론 감독이 포함돼 있다는 점이다.
박 대표는 "제임스 카메론 감독은 영화 '타이타닉'(1997)을 내놓은 뒤 10년 가까이 할리우드 영화계를 떠나 해양 탐사에 집중하다시피 한, 심해 탐사선을 타고 지구에서 가장 깊은 바닷속까지 내려갔던 사람"이라며 "이러한 탐사를 바탕으로 다큐멘터리도 만들고 수중 촬영 관련 발명 특허까지 직접 개발했는데, 영화 '아바타'(2009)로 대표되는 그의 우주에 대한 관심사는 심해에도 그대로 적용된다"고 말했다.
사실 대중의 관심사가 우주에 집중돼 있을 뿐, 심해에 대한 연구개발 역시 여전히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전언이다.
맹 교수는 "심해에 관한 연구는 지금까지 꾸준히 이뤄져 오는 것으로 안다. 결국 실익을 따져볼 문제"라며 "아주 깊은 바닷속은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수준까지 들어갔을 때 새로운 생물종 등을 발견하고 그것을 활용할 수 있는 여부에 좌우되는 것이 아닐까 싶다"고 했다.
박 대표 역시 "우주에 비해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하고 있을 뿐, 이를 테면 경제적인 부가가치만 따져봐도 해양 탐사는 우주 탐사에 비해 결코 매력이 떨어지는 분야가 아니"라며 말을 이었다.
"전 세계적으로 우주 개발에 투자하는 나라는 몇 안 된다. 일부 선진국이나 중진국 정도일 텐데, 이들 외 우주 개발에 투자하는 나라는 대부분 미사일 발사체 기술 개발 등 군사 목적이다. 그런데 바다와 접한 모든 나라는 해양 탐사에 투자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 이러한 점으로 봤을 때 해양 개발 분야 투자 금액이나 규모는 우주 개발 분야의 그것보다 압도적으로 클 것이다."
지구 밖와 지구 안이라는, 상반된 것으로 보이는 우주 탐사와 해양 탐사 기술이 서로 맥을 같이 하고 있다는 점도 눈길을 끈다.
맹 교수는 "(심해 탐사와 우주 탐사는) 근본적인 조건이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본다. 우주는 내부 압력이 높고 외부 압력은 거의 제로(0)에 가까워서 바깥으로 팽창하려 하고, 반대로 심해는 외부 압력이 높아서 수축하는 문제가 생길 수 있는 차이"라며 "그래서 보통 우주 탐사에 앞서 이뤄지는 훈련을 바다에서 많이 하는데, 어떤 면에서 유사한 체험이 가능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 과학기술 덕에 떠오르는 해저문명…가라앉는 대중적 관심사
영화 '아바타' 스틸컷(사진=이십세기폭스 코리아 제공)
'아틀란티스'를 익히 들어봤을 테다. 대서양에 있다가 지진 탓에 바닷속으로 가라앉았다는 그 전설 속 대륙 말이다. 프랑스 유명 소설가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근작 '제3인류'를 통해 그 찬란했던 전설의 문명에 관한 상상의 나래를 펼치도록 돕기도 했다.
맹 교수는 "우리가 UFO(미확인 비행물체)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USO'(미확인 수중물체)에 관한 체험담도 다수 있다"며 설명을 이어갔다.
"옛날에 상당한 수준의 문명이 존재했다고 가정한다면, 그들이 우주로 나갈 수도 있지만, 바닷속에서 삶을 도모했을 가능성이 더 높을 수 있다. 상당히 깊은 바닷속에 기지를 건설하고 공기를 공급할 수 있는 장치를 만드는 식으로 해저도시 건설이 가능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맹 교수는 "앞서 강조했다시피 전제는 '과연 그러한 수준의 사라진 문명이 존재했느냐'일 텐데, 개인적으로 가능하다는 판단이 선다"고 전했다. 그가 최근 펴낸 저서 '피라미드 코드'(김영사)를 통해 '처음부터 완벽했던 이집트 문명' 등을 근거로 인류 문명의 기원에 관한 숨겨진 단서를 제시하려 애쓴 이유도 여기에 있다.
아틀란티스 대륙처럼 바닷속에 가라앉은 문명에 관한 이야기는 여럿 전해진다. "과학 기술의 발달 덕에 최근에는 실제 물속에 가라앉아 있던 고고학적 유적들이 계속 발굴되고 있다"는 것이 박 대표의 이야기다.
"과거 문명의 중심지 가운데 한 곳인 지중해에서 그러한 유적들이 계속 나오고 있는 것으로 안다. 인도 대륙과 인근 섬 나라 스리랑카를 잇는 다리가 전설처럼 내려오는데, 해양 탐사를 통해 실제 그 흔적이 발견됐다는 소식도 몇 해 전에 접한 적이 있다. 해저 지형을 조사해 보니 (인도 대륙과 스리랑카를 잇는 육로) 비슷한 것이 보이더라는 것이다."
이렇듯 무한한 가능성을 품은 바닷속 미지의 세계, 즉 심해는 우주만큼이나 남다른 가치를 지닌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와 관련한 대중의 문화적 관심사는 예전에 비해 더욱 멀어지는 것이 사실이다.
맹 교수는 "해저기지 건설 등을 다룬 SF 영화들이 다수 나온다고는 하지만, 장르적으로 공포물에 속할 뿐 SF적인 철학을 담고 있는 작품은 찾아보기 힘들다"고 진단했다.
박 대표 역시 "볼거리는 물론 깊이 생각할 거리를 던지는 우주 영화들과 달리, 최근의 SF 콘텐츠 가운데 해양의 주제의식을 대표할 만한 작품이 선뜻 떠오르지 않는 것은 사실"이라며 "지구 표면의 70%가 바다인데, 나머지 30% 육지에 모여 사는 우리에게 바다는 과학기술·문화 등 여러 방면에서 관심을 모을 수 있는 무궁무진한 소재라는 점이 널리 공유되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