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대이란 제재 복원을 앞두고 이란에서 리라화 가치 급락과 물가 급등에 대비한 금 사재기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이란 핵합의(JCPOA·포괄적공동행동계획)를 탈퇴한 미국은 워싱턴 현지시간으로 7일 0시부터 대이란 제재를 재개한다.
1단계 세컨더리 보이콧(2차 제재)으로 이란 통화인 리알화 거래가 제한되고 이란 정부에 귀금속 판매가 금지되며 은행들이 이란의 귀금속 거래에 자금을 조달하는 것도 금지된다.
5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인용한 세계금위원회(WGC) 집계에 따르면 올해 2분기 이란에서는 금값이 급등하는 와중에도 골드바·금화 수요가 15t으로 전년 동기대비 3배 급증했다.
이란 중앙은행은 수요를 맞추려 60t이 넘는 수십만 개 금화를 새로 주조했다.
이란에서는 명절에 금화를 선물로 주고받고 결혼식 예물로 금 장신구를 쓰는 전통에 따라 금 수요가 꾸준히 있지만, 최근의 가격 폭등은 그 정도 수요를 훨씬 넘어선 것이다.
국제 금 시세는 올해 들어 6% 넘게 하락한 1천210달러 선을 맴돌고 있지만, 이란 중앙은행의 8.13g짜리 '에마미' 금화 가격은 올해 1월보다 2배 이상 높은 수준인 3천600만리알이다. 이 금화값은 지난주 4천500만리알로 역대 최고치까지 올랐다.
이란인들은 지난해 말 중앙은행이 외환 투자를 다른 쪽으로 돌리려는 목적으로 재개한 에마미 금화 경매에 선주문을 넣으려 은행 밖에 줄을 지어 서고 있다.
이렇게 금 수요가 늘고 값이 오른 것은 이란 경제가 미국의 제재로 타격을 받을 것으로 예상되면서 이란인들이 금을 안전장치로 여긴 데 따른 현상이다.
두 자릿수 물가상승률·실업률에 더해 리알화 가치가 더 하락하는 데다 오는 11월 2단계 제재의 타격이 본격화하면 내년 이란 경제는 역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의 리알화 공식 환율은 달러당 4만4천리알이지만, 암시장의 환율은 7월 한 달간 25% 이상 상승했다.
이란중앙은행은 미국의 경제·금융 제재로 '환란'이 우려되자 외환시장을 안정시키는 방안을 긴급히 내놨다.
이란중앙은행은 올해 초부터 리알화 가치가 빠르게 하락하자 외화 유출을 막는 여러 조치를 내놨으나 사실상 효과가 없었다.
사설 환전소의 환전 업무를 금지하는 등 지나치게 외환 유통을 통제하자 오히려 불안해진 시민들이 품귀해진 달러를 암시장을 통해 사재기하는 바람에 시중 환율이 공식 환율의 배가 넘는 부작용만 생겼다.
이란 정부는 미국의 제재 명단에 오른 중앙은행 총재를 외환시장 관리를 실패한 책임을 물어 지난달 25일 전격 경질하는 충격요법을 동원하면서 미국의 제재에 버티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압돌나세르 헴마티 신임 중앙은행 총재는 5일 밤 국영방송을 통해 미국의 제재가 시작되는 7일 시행되는 외환·통화 정책을 발표했다.
이번 대책은 4월 통화 단일화와 함께 단행했던 '초강경' 방안보다 외환의 유통을 완화하는 내용이다.
금지했던 사설 환전소의 환전 업무를 개인당 1만달러 한도로 다시 허용해 '장롱 속' 달러를 시장으로 유인, 외환 유동성을 높이기로 했다.
암시장과 고시환율의 차가 벌어지면서 수입이 급속히 줄었던 의약품, 식료품 등 필수 품목을 수입하는 업자에겐 고시환율인 달러당 4만2천 달러로 달러를 최대한 공급하기로 했다.
석유화학, 석유제품, 철강, 천연가스, 콘덴세이트를 수출해 달러나 유로를 벌어들인 기업이나 개인은 중앙은행이 중개하는 2차 외환시장에서 외환 수요자인 수입업자와 주식처럼 외환을 수요·공급의 원칙에 따른 환율로 거래할 수 있도록 했다.
헴마티 총재는 "정부는 환율에 개입하지 않고 환율을 고시하지도 않겠다"고 밝혔다.
이란 외환시장이 4월 환율 단일화 이전으로 환원한 셈이다.
아울러 이란에 유입되는 합법적 통화와 금에 세금을 면제하고, 일반인의 달러 예금 계좌 개설을 독려하는 방안도 포함됐다.
이번 조처가 발표되자 6일 오후 리알화 비공식 환율은 달러당 9만6천리알 정도로 약간 진정됐다.
헴마티 총재는 "우리는 경제전쟁과 비슷한 상황에 있지만, 우리에게 미국의 제재가 가해지는 날에 우리는 시장을 개방한다"며 "우리의 경제 상황은 매우 좋고 우리 외환 수지도 양호하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