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영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박종민 기자/자료사진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내년 3월 세계 최초 5G 상용화 공동 개시를 결정하면서, 이동통신사의 셈법이 복잡해졌다. 유영민 장관이 직접 나서 "대한민국 5G 상용화가 중요하지, 통신 3사의 1등 경쟁은 의미가 왜곡될 수 있다"고 지적하면서 이통3사의 5G 장비 도입에 변수를 던진 것이다.
정부는 나아가 5G 장비 '보안 검증'을 선언, 보안 논란이 있는 화웨이 견제에 나섰다. 한편, 국내 통신·장비·단말·콘텐츠 등 생태계 조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사실상 '국산' 5G 장비 사용을 권고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는 발언을 내놓은 셈이다.
정부의 잇따른 통신비 인하 압박에 5G 장비에만 20조 원이 넘는 돈을 쏟아부어야 하는 통신사 입장에선 '실리'만 따지자면 화웨이가 '답'이다. 그러나 재확인된 장비 국산화라는 명분과 보안 논란은 통신사 결정을 흔드는 모양새다.
◇ '세계 최초' 싸움 '무의미' 5G 공동 개시...화웨이 장비 도입 '변수'
정부가 공식화한 5G 상용화 일정까지는 앞으로 8개월 남짓 남았다. 적어도 이통3사는 한 달 내 통신장비 업체를 선정해야 9월부터는 장비 공급을 시작할 수 있고 연말부터 5G 전파를 송출할 수 있다.
이통사들은 지금까지 한 곳이 아닌 복수 업체의 장비를 사용해왔다. 4세대 이동통신인 LTE 구축 당시, SK텔레콤과 KT는 삼성전자와 에릭슨, 노키아를 사용했다. LG유플러스는 여기에 업계 최초로 화웨이 장비를 도입했다.
화웨이 장비는 타사 대비 30% 이상 저렴한 가격도 장점이지만, 기술력이 앞서 있다는 것도 경쟁력에서 우위를 점한 상태다. 5G 전국망인 3.5㎓ 대역에서는 경쟁사 대비 약 2분기, 28㎓ 대역의 경우 1~2달 앞서있다는 것이 업계의 평가다.
이런 가운데 17일 유영민 과기부 장관이 이통3사 CEO와의 오찬에서 밝힌 '5G 공동 상용화' 방침은 LG유플러스의 5G 추진력에 제동을 걸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LG유플러스는 지난 6월 주파수 경매 뒤 5G 장비에 대한 선제적 투자를 강조했다. 말을 아끼는 SK텔레콤이나 KT와는 달리 권영수 전 부회장은 상하이 MWC에서 "화웨이가 제일 빠르고 성능이 좋다"며 장비 도입을 사실상 공식화하기도 했다. 통신 3사 중 LG유플러스가 가장 먼저 5G 서비스를 제공할 것이란 예측이 높아진 상태였다.
그러나 정부 주도의 5G 공동 개시 선언에 '최초 경쟁'은 무색해졌다. "LG유플러스의 화웨이 장비 도입 명분도 희석됐다.
유 장관은 또 "보안 문제는 매우 중요한 문제로 정부가 직접 검증할 필요가 있다"면서 "모든 기업의 5G 통신장비 보안에 대해서는 정부가 나설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보안 논란에서 좀처럼 의혹을 떨치지 못하는 화웨이에 대해 정부가 직접 견제 의지를 나타낸 것으로 풀이된다. 미국은 중국 정부가 화웨이 장비를 통해 주요 정보를 빼돌리는 등 스파이 활동에 악용할 것이라며 제재를 가하고 있고, 호주 역시 5G 통신장비 입찰에서 화웨이를 배제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화웨이 장비 도입을 통해 5G 조기 상용화를 염두에 둔 LG유플러스를 겨냥해 정부가 경고를 한 것이라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 유영민 장관 "5G 망 구축 외산보단 국산 장비"…삼성 "신뢰는 우리" 화웨이 견제
유영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이 지난 1월 이동통신 3사 CEO들과 5G 이동통신 상용화 논의를 위한 간담회에 앞서 환담을 나누고 있다. 왼쪽부터 권영수 LG유플러스 부회장, 황창규 KT 회장, 유 장관, 박정호 SK텔레콤 사장. 박종민 기자/자료사진
정부는 또다른 변수도 던졌다. '장비 국산화' 명분이다.
유 장관은 "우리나라가 5G 글로벌 주도권 선점을 위해선 사업자 간 최초 경쟁을 지양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5G 상용화를 통해 서비스와 장비, 단말, 콘텐츠 등 연관 산업이 함께 발전하고 다른 분야로 경제적인 효과가 파급돼 ICT 생태계와 4차 산업혁명의 기반이 만들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유 장관의 이같은 발언은 서비스, 장비, 단말기, 콘텐츠 등 5G 상용화 관련 모든 산업이 '국산'이어야 한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국가적으로 세계 최초 5G 상용화를 준비하고 있는데, 중국산 장비를 쓰면 '최초'의 의미가 와닿지 않다는 것이다.
화웨이보다 기술력과 개발 속도가 떨어지는 것으로 평가되는 삼성전자가 "(삼성은) 신뢰가 강하다"며 "시범 사업이 시작되는 오는 12월 1일까지 장비를 공급하는 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밝힌 지 나흘 만이다.
유 장관은 지난 5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도 "중국 정부와 오해가 생길 수 있어 조심스럽다"면서도 "한국이 세계 최초로 5G를 상용화한다는 것의 의미는 단말기, 통신장비 등 한국 기술이 사용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만약 이런 의미가 희석된다면 세계 최초 5G의 의미는 크지 않다"면서 5G 상용화가 외국 통신장비업체의 잔치로 끝날 수 있다는 우려에 공감을 나타낸 셈이다.
결국 정부가 국산 장비 사용을 권고하는 듯한 발언을 했고. 이는 결국 삼성에 유리한 발언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 화웨이, 보안 논란 속에도 기술력·가격 여전히 '매력적'…복수 선정 가능성↑국내 통신사들이 5G 장비로 화웨이를 배제한 것은 아니다. LG유플러스는 여전히 화웨이 장비 도입 계획을 고수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LG유플러스 관계자는 "(화웨이 장비) 보안은 이미 검증을 거친 상황이다. 2014년에는 스페인에서. 2015년엔 영국에서도 보안 검증을 받았다"면서 "화웨이 장비가 구축되는 곳은 기지국 말단 단위일뿐, 거기는 개인정보가 있지도 않은 구조"라며 논란을 일축했다. 이어 "삼성전자 역시 기술력은 좋지만, 누가 더 필요할 때 적기에 제공할 수 있느냐를 놓고 보면, 화웨이를 빼놓고 얘기하긴 힘들다"고 덧붙였다.
박정호 SK텔레콤 사장도 "삼성전자도 (5G 장비 기술력에서) 빠르게 올라오고 있다. 동등한 위치에서 여러 사업자의 장비를 테스트 중"이라면서 "화웨이 장비도입에 대해서도 "고민이 크다"고 말했다. 황창규 KT 사장은 다양하게 검토하고 있다”고 원론적인 태도를 내비쳤다.
화웨이 장비를 꺼리는 것이 무역 전쟁에서 비롯된 외교 문제로 보는 측면도 있다. 화웨이 보안 논란이 실제로 화웨이가 도·감청을 했다기보단 중국 제품에 관세를 물리거나 막으려다 보니 보안 이슈를 안보나 냉전 이슈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SK텔레콤이나 KT도 LTE 때와 마찬가지로 단일 업체가 아닌 삼성전자, 화웨이, 노키아, 에릭슨LG 등 복수 업체로 5G 장비를 구축할 것이라는 게 업계 관측이다. 3.5GHz 대역에서 화웨이가 강하다면 28GHz에서 더 뛰어나다고 자신하는 삼성전자의 것도 함께 사용할 것도 선택지에 넣었을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이통사 관계자는 "정부가 국산화를 권고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지만 이는 오히려 글로벌 시장에서 고립될 수 있다"면서 "5G 최초 상용화 국가가 우리끼리의 생태계만 갖고 있으면 글로벌 선도기업의 모양새가 좋지 않을 수 있다. 글로벌적인 시각이 필요하다"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