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최저임금 인상률이 10.9%에 그치면서 2020년 시급 1만원 공약이 사실상 폐기됐다.
그동안 경영계와 당정 일각에서 주장하던 '속도조절론' 압박이 관철되면서 소득주도성장도 힘을 잃을 위기에 놓였다.
◇10.9% 올랐다지만…저임금 노동자에겐 실질인상효과 훨씬 낮을 듯최저임금위원회(이하 최임위)는 지난 14일 2019년 적용 최저임금을 올해보다 10.9% 오른 시급 8350원으로 의결했다.
얼핏 2년 연속 두자릿수 인상률을 유지해 대폭 오른 듯 보이지만, 문재인 정부가 약속했던 2020년 최저임금 1만원 공약에 비하면 턱없이 낮은 수준이다.
내년 최저임금의 인상폭은 820원으로, 공약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내후년에는 1650원 인상률이 19.7%에 달해야 하기 때문에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물론 최저임금 인상 효과에 대한 찬반 논란이 있어 일부 속도조절이 불가피하다는 점을 감안해도, 여기에는 상여금과 수당을 최저임금에 포함시킨 산입범위 확대 변수까지 숨어있다.
기존에는 최저임금에 포함되지 않던 상여금과 수당이 최저임금으로 계산돼 그만큼 임금을 인상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명목상의 인상률과 실제 임금 인상률에는 괴리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민주노총 이슈페이퍼 3월호
한국노동연구원이 최임위 의뢰로 지난 10일 제출한 '산입범위 확대시 최저임금 실질 인상효과' 자료를 보면 내년 최저임금 인상률이 명목상 10% 오를 경우에는 실질인상률은 평균적으로 9.0%만 오를 것으로 분석했다.
이는 최저임금과 무관한 고소득 노동자들까지 포함한 결과로, 최저임금 인상과 산입범위 확대에 직격타를 맞는 저소득 노동자들의 임금 삭감 효과는 더욱 심각하다.
연구원이 소득분위 하위 1~3분위에 속하는 노동자 가운데 시급 7530원 이하를 받다가 산입범위 확대로 7530원 이상을 받는 경우로 대상을 좁혀 임금 인상 효과를 분석한 결과 최저임금이 10% 오를 때 실질인상률은 2.2%에 불과했다.
민주노총은 이를 토대로 이번 10.9% 인상의 실질인상률을 계산한 결과 실질인상률은 9.8%에, 최저임금 인상과 산입범위 확대에 직접 영향을 받는 저임금 노동자들의 실질인상률은 2.4%에 그칠 것으로 예상했다.
최저임금위원회 공익위원
◇"'빛 좋은 개살구' 최저임금, 사실상 정부 결정"…소득주도성장 힘 잃나이처럼 이번 최저임금 인상률이 두자릿 수 인상률을 유지하면서도 실제로는 낮은 인상효과를 거둘 것이라는 결론은 이미 예상됐던 바이기도 하다.
최임위는 노동계와 사용자, 그리고 정부 추천으로 구성된 공익위원이 각각 9명씩 참여하는데, 그동안 번번이 노사 양측이 합의를 내리지 못한 채 공익위원이 사실상 최저임금을 결정했다.
올해에는 사용자위원이 전원 퇴장하고, 민주노총 측 노동자위원이 모두 퇴장하는 이변이 일어나 공익위원 9명과 한국노총 추천 노동자위원 5명만이 표결했지만, 결국 8대6으로 공익위원안이 채택됐다.
만약 민주노총 측 노동자위원이 복귀해 노동자위원안에 투표했다고 하더라도 이 경우에는 사용자위원들이 복귀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에 결국 공익위원들의 '캐스팅보트' 권한에는 변화가 없었을 것으로 보인다.
전국비정규직노조연대회의 오민규 정책위원은 "최저임금 산입범위 개악 때문에 실질인상률을 지난해 수준으로 올리려면 명목인상률을 30% 이상 올려야 했다"며 "올해 최저임금 인상률이 매우 낮을 것이라고 오래 전부터 예상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동안 최저임금 결정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해온 것이 정부와 청와대의 의지. 그리고 이것을 반영한 공익위원"이라며 "사실상 정부가 올해 최저임금을 이 정도 수준(시급 8300원대)에서 제어해야 한다고 생각한 것 같다"고 주장했다.
또 지난해 하반기 공공부문 용역노동자에게 시중노임단가 적용을 강화하기로 결정한 점을 지적하며 "이들에게 지급되는 단순노무종사원 임금단가는 지난해 8330원으로, 지난해 노동자위원의 2차 수정안"이라며 "올해 시급과 거의 비슷한 수준이어서 이를 의식한 것은 아닌가 의심스럽다"고 덧붙였다.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실제로 최저임금 결정 직전까지 정부와 여당의 핵심인사들은 '최저임금 속도조절론'을 앞다투어 강조했다.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은 최임위가 최저임금을 결정하기 불과 이틀 전인 지난 12일 "최저임금 인상이 일부 업종과 청년·노년층 고용 부진에 영향을 줬다"며 "신축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최저임금위원회의 합리적 결정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정부 내에서 경제 컨트롤타워를 자처하는 김 부총리가 최임위를 직접 거론하며 공익위원들에게 사실상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셈이다.
홍종학 중소벤처기업부 장관도 "속도가 맞지 않아 돈이 돌기 전에 부담이 커지는 상황"이라며 '속도조절론'을 설파했다.
국회 환노위원장으로 재임하며 산입범위 확대를 추진했던 홍영표 원내대표는 지난 6월 "시간당 최저임금 1만원은 경제 흐름을 봐가면서 추진해나갈 수밖에 없다"며 "노동계가 이해없이 무조건 올리라고만 하니 답답하다"며 노동계를 비난하기도 했다.
심지어 최저임금위 공익위원들도 당정의 '속도조절론' 발언이 지나치다고 불만을 제기할 정도였다.
류장수 최저임금위원장은 김 부총리의 발언 다음날 "최저임금위원회가 독립성과 자율성을 잃으면 남는 게 없다"며 "독립성을 훼손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발언에 대해서는 감정적 대응은 하지 않겠다"고 반발했다.
강성태 공익위원도 지난 14일 최저임금을 결정한 직후 언론브리핑에서 "정부관계자나 언론이 굉장히 (최저임금 결정이) 임박한 시점에 거론한다면 이것은 압박"이라며 "차분히 검토할 시간을 주지 않고 어떤 의견을 강하게 푸쉬한다는 느낌을 가질 수밖에 없다"며 비판하기도 했다.
이처럼 정권 내 보수인사들이 앞장선 '최저임금 힘빼기'가 사실상 성공하면서 최저임금 인상을 주춧돌로 삼았던 소득주도성장 정책에도 난항이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