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52시간 노동시간 상한제가 이달부터 각 사업장에 시행됐다. 특례업종에 포함돼 시행이 1년 유예된 방송사 기자들도 이 법을 피해갈 수 없게 된다. CBS노컷뉴스 사회부 1년차 기자가 지난 일주일의 근무를 기록했다. 저녁이 있는 삶을 누릴 수 있었을까? [편집자 주]
4일 오전 CBS 보도국 사무실에서 기사를 작성하는 김형준 기자. 전날 내근 당직근무를 선 기자는 이날 오전 10시가 되어서야 퇴근했다. (사진=김다인 인턴기자)
# 7월 2일 월요일 : 아침 일찍 인천의 한 도금공장을 찾아 52시간 상한제를 처음 맞은 직원들을 인터뷰했다. 오늘부터 퇴근이 오후 6시로, 2시간 앞당겼다고 한다. 아들과 놀아주고 싶다거나 방송통신대 진학을 준비하겠다며 기대하는 직원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렇다면 나는 하루에 몇 시간을 근무하고 있나'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쉽게 계산이 되지 않는다.
취재한 내용을 서울 강남경찰서 기자실에서 정리하고서 저녁엔 다시 목동에 있는 회사로 돌아가 경찰팀 회의에 참석했다. 근무 시간과 범위를 바이스(경찰팀 부팀장)에게 물었지만 "글쎄, 나도 잘 모르겠는데"라며 갸웃할 뿐이었다.
기자가 출근하는 서울 강남경찰서. (사진=김형준 기자)
보통은 아침 7시쯤부터 그 날의 취재계획과 출입처 일정, 타사 보도 등에 관한 보고를 준비한다. 그렇게 하루가 시작되지만 끝나는 시간은 정해져 있지 않다. 오늘도 저녁 7시면 그나마 일찍 퇴근했나 싶었는데 별안간 스마트폰이 불길하게 울려댔다. 역시 업무지시였다. 저녁이 있는 삶, 정말 올 수 있을까?
# 7월 3일 화요일 : 출입처 소속 경찰관과 점심 약속이 있었다. 52시간 근무 얘기를 꺼냈더니 "사회부 기자가 그게 가능하겠냐"며 혀를 끌끌 찼다. 그리고 오늘은 내근 당직근무까지 겹쳤다. 아침에 출근해서 보도국 사무실에서 밤을 보냈으니 근무시간은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나게 됐다.
# 7월 4일 수요일 : 새벽부터 취재 지시가 날아왔다. 서울 대한문 앞 쌍용차 분향소를 둘러싼 노조와 친박단체의 충돌상황에 관한 사실관계를 추가로 확인하라는 지시였다. 밤사이 잠을 거의 못 자 멍한 상태로 취재를 마쳤다. 기사를 완성하고 시계를 봤더니 오전 10시를 넘겼다. 퇴근하면서 확인해 보니 누적 근무시간은 벌써 38시간을 넘겼다.
퇴근 후 모처럼 집에서 단잠을 잤다. 깨자마자 스마트폰을 켜 팀 업무용 채팅방을 확인했다. 그 사이 100건이 넘는 메시지가 쌓여 있었다. 출입처를 맡은 서울 수서경찰서에서 오토바이 날치기범을 붙잡아 구속했다는 기사는, 미안하게도 이미 동료 기자의 몫이 됐다. 동기가 1인 2역을 하고 있던 것이다. 사건 사고는 밤낮을 가리지 않는다. 때문에 '인력 충원이 되지 않는다면 52시간 상한제로 가는 길은 멀고 험할 것'이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 7월 4일 수요일 저녁 : 오랜만에 친구를 만났다. 그런데 내내 메신저 채팅방에서 벌어진 업무지시와 보고를 확인하다 결국 핀잔을 들었다. "스마트폰 뚫어지겠다. 사람 앞에 두고 너무하는 것 아니냐." 다니던 회사에서 얼마 전 주 35시간 근무제를 도입했다는 친구가, 그저 부러울 따름이다.
# 7월 5일 목요일 : 오늘도 정신없이 사건 현장을 쫓아다니고 제보자 얘기를 듣느라 종일 바쁜 일과를 보냈지만 다행히 정시 퇴근에는 성공했다. 추가 취재가 필요한 상황이었지만 누적 근무시간이 벌써 48시간을 채운 터. "내일 오전에 더 취재해서 보고하라"는 바이스 지시를 뒤로 하고 여유 있게 저녁 식사를 했다.
5일 저녁 기자가 찾은 서울의 한 영화관. 그러나 기자는 영화 상영 중에도 스마트폰을 손에서 놓지 못했다. (사진=김형준 기자)
그리고는 아주 오랜만에 액션 영화를 한 편 볼 수 있었다. 역시 스마트폰을 계속 붙잡고 있어선지 내용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래도 기분이 나쁘지 않다. 52시간까지 이제 4시간, 내일은 금방 퇴근할 수 있겠지?
# 7월 6일 금요일 : 정오쯤 드디어 52시간이 모두 채워졌다. 약속대로 아무도 나를 찾지 않았다. 하지만 잠시 한국방송기자클럽(BJC) 보도상 시상식에 참석한 뒤부터 오후 내내 바로 이 체험기사를 써야 했다. 근무 시간이 끝났지만 누가 대신 써줄 수도 없기 때문에 어쩔 도리가 없었다. 기사를 완성하고 제작하다 보니 주말에도 쉬지 못했다.
어디까지가 근무였고, 또 어디까지가 사생활이었을까? 진짜 '저녁이 있는 삶'이 오기 위해서는 근무범위가 명확히 설정되고 인력 충원도 필요하다는 사실을 이번 일주일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