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장근무를 포함해도 1주 최대 52시간으로 상한선을 낮춘 노동시간 단축이 이달부터 본격 시행된다.
한국은 손꼽히는 IT 선진국이자 세계경제 10위권 안에 드는 경제강국으로 국민소득 3만 달러 시대를 눈앞에 두고 있다.
하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매일 10시간 넘게 일하고도 주말까지 근무하는 기업이나 24시간 영업하는 가게가 당연하게 여겨질 만큼 장시간 노동이 일상화된 '일 중독 사회', '야근 왕국'이기도 하다.
이러한 장시간 노동은 일부 열악한 노동환경에 처한 비정규직 노동자나 영세자영업자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지난해 1월 보건복지부에서 근무하던 여성 사무관은 정부세종청사의 복도 계단에서 숨진 채 발견됐고, 두 달 뒤에는 고용노동부 소속 과장급 공무원이 숨졌다. 또 가상통화 정책을 담당하던 청와대 정기준 경제조정실장도 지난 2월 숨을 거뒀다.
이른바 '철밥통'으로 불리며 일반 기업의 노동자에 비해 비교적 업무 강도가 약하다고 여겨지는 공무원들조차 장시간 노동에 시달린 끝에 '과로사'까지 당하고 있는 실정이다.
실제로 지난 5년 동안 공무원 사망자는 327명으로, 이 중 절반 이상인 169명이 과로사 대표질환인 뇌심혈관계질환으로 숨졌다. 고용이 불안정하거나 업종 특성상 장시간 근무가 강요되는 다른 직종의 경우는 사정이 더욱 심각할 수밖에 없다.
2016년 노동자원 활용율과 1인당 총근로시간. OECD 한국경제보고서
한국의 2016년 노동자 1인당 연평균 노동시간은 2052시간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가장 오래 일하는 멕시코(2348시간)에 이어 두 번째 장시간 노동 국가다.
이는 OECD 회원국 평균 노동시간인 1707시간보다 345시간이나 더 길어서, 한국인들은 휴일 등을 빼고는 거의 매일 1시간 이상 더 오래 일하는 셈이다.
이처럼 오랫동안 일한 탓에 한국의 인구 대비 노동 투입량도 OECD 2위에 해당하지만, 노동시간당 노동생산성은 OECD 상위권 국가의 46% 수준에 불과하다.
OECD는 지난달 발표한 '한국경제보고서'에서 "한국의 낮은 노동 생산성은 선진국 수준으로 지속적인 개선 여지가 있다"며 "낮은 노동 생산성은 매우 긴 근로시간과 상쇄되며 그 결과 낮은 삶의 질과 저조한 여성 고용이란 희생이 따른다"고 지적했다.
또 "전통적인 성장 모델은 국민소득 증가율이 OECD 평균 수준으로 둔화되면서 효과성을 잃어 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더 이상의 장시간 노동은 경쟁력이 없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2003년 법정노동시간을 주 44시간에서 40시간으로 단축하자 생산공정의 효율성을 높이는 압력이 강해지면서, 제조업 노동자 1인당 연간 생산은 오히려 1.5% 증가한 바 있다.
법정노동시간인 주5일 8시간씩 40시간에, 노동자 동의 아래 연장근무를 포함해 최대 52시간으로 제한하는 근로기준법 개정의 취지가 바로 여기에 있다.
게다가 노동시간 단축은 비단 업무 효율성을 높일 계기가 될 뿐 아니라 노동자들의 삶의 질을 개선하는 '소득 주도 성장'의 핵심 고리가 될 전망이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 김유선 선임연구위원은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의 양은 제한되는데, 노동시간이 짧아지면 해당 노동자의 노동 생산성이 늘어나기도 하지만, 결국 일감을 나눌 수밖에 없다"며 "비록 기업들이 유연근무제 등 다른 방법을 찾겠지만, 결국 업무량을 나눠 새로운 일자리 창출이 일어날 것"이라고 기대했다.
또 "노동자로서는 노동시간이 줄어들어 일과 생활이 양립하도록 하는 것이 법 개정의 취지"라며 "특히 그동안 주52시간 이상 일하는 노동자들이 100만명이 넘는데, 이들 대부분이 장시간 노동으로 건강이 상하거나 업무 집중력이 떨어져 사고를 당하는 등 산업재해에 노출되던 것도 개선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