靑 노동정책 잇단 말바꾸기…'우회전' 시작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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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교조 법외노조·노동시간 단축 처벌 유예, 며칠 새 입장 바꿔
"정부 내 보수세력 움직이나…참여정부 실수 반복 말아야"

 

최근 굵직한 노동 이슈에 대한 정부 입장이 며칠새 180도 바뀌는 일이 반복되면서 촛불정부의 때 이른 보수화가 우려된다는 비판이 나온다.

◇"정부는 전교조 법외노조 철회 못한다?" 팩트(fact)부터 틀린 청와대

김영주 고용노동부 장관은 지난 19일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하 전교조)과 만나 법외노조 통보 철회 여부를 놓고 "법률 검토를 해 가능하다면 청와대와도 협의해 진행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바로 다음날인 20일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돌연 "(전교조 법외노조 해고자 문제는) 대법원 판결이 나와있는 상황"이라며 "그런 상황에서 정부가 일방적으로 직권 취소를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을 바꿨다.

이어 "그것(법외노조)을 바꾸려면 대법원에서 재심을 통해 기존 판결을 번복하는 방법과 관련 노동법률을 개정하는 방법밖에 없다"며 "대법원 재심은 언제 나올지 알 수 없어 현재 정부의 입장은 관련 법령 개정을 통해 이 문제를 처리한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한 노동부 관계자는 "김 장관이 '정부가 법외노조 통보를 취소하겠다'고 약속한 바는 없다"며 "청와대와 노동부의 입장은 다르지 않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김 대변인의 브리핑에는 수상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우선 김 대변인의 브리핑은 사실상 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을 전면 파기한다는 중요한 내용을 담고 있다.

문 대통령은 대선을 앞둔 지난해 4월 정책질의 답변에서 “임기 초반에 전교조 법외노조 철회 조치를 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는데, 김 대변인은 '현재 정부의 입장'은 이를 검토조차 하지 않겠다며 문 대통령의 공약을 전면 파기한 셈이다.

또 대법원 판결이 나와있는 상황이므로 재심을 통해 기존 판결을 번복해야 한다는 김 대변인의 주장은 아예 사실 관계조차 어긋난다.

전교조에 대한 법외노조 통보는 2013년 이명박 정부 시절 전교조가 해고된 조합원 9명은 부당해고됐다며 이들의 조합원 자격을 유지했다는 이유로 강행됐다.

이에 대해 전교조가 통보처분을 취소해달라고 행정소송을 냈지만 1심과 2심 모두 정부 조처가 적법하다는 취지로 판결이 내려졌고, 이후 대법원에 전교조가 항고해 2년 5개월 동안 판결이 내려지지 않고 있다.

더구나 앞서 내려진 1심과 2심 판결에 대해서도 최근 양승태 전 전 대법원장의 재판거래 의혹 문건이 폭로되면서 사법거래를 통해 부당한 판결이 내려졌다는 의혹이 일고 있다.

2014년 9월 19일 서울고등법원이 전교조가 제기한 집행정지 신청을 인용하자 정부가 대법원에 재항고했는데, 당시 법원행정처는 청와대가 전교조 법외노조 사안을 '사법 관련 최대 현안'으로 취급하고 있다며 정부 측의 재항고를 인용하는 것이 사법부에 유리하다고 분석한 바 있다.

자칫 김 대변인의 브리핑이 단순히 전교조 법외노조 문제 뿐 아니라 최근 불거진 사법거래 의혹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대목이다.

이에 대해 한 전교조 관계자는 "대법원 판결이나 법 개정을 거론하지 않고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을 검토하겠다는 김 장관의 발언은 예상보다 진전된 발언이었다"면서도 "앞서 복수의 청와대 수석급 고위관계자들이 전교조 문제 해결을 약속했기 때문에 정부 내부의 방침이 정리된 것으로 이해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김 대변인의 브리핑은 기본적인 사실 관계조차 틀렸고, 김 장관의 발언에 대한 해명도 없이 엉뚱한 주장만 반복했다"며 "정부 내부에도 의견이 엇갈리면서 김 대변인의 브리핑이 급조된 것 아닌가 의심돼 문 대통령이 귀국한 뒤의 상황을 지켜봐야 할 것 같다"고 전망했다.

김영주 고용노동부 장관

 

◇노동시간 단축·최저임금 인상 급격한 우회전…참여정부 실수 반복할까

김 대변인의 브리핑이 있던 20일, 이러한 정부의 말 바꾸기는 한 번 더 벌어졌다.

이날 고용노동부는 노동시간 단축을 불과 열흘 남겨두고 연말까지 행정제재를 유예하겠다고 밝혔다.

그동안 정부는 노동시간 단축을 유예 없이 원안대로 진행하겠다고 수차례 밝혀왔지만, 지난 18일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가 "6개월의 계도 기간을 갖고 단속과 처벌을 유예해달라"고 요구하자 이틀 만에 전광석화처럼 입장을 바꾼 것이다.

이에 대해 노동부 김왕 근로기준정책관은 "업종별 간담회 등을 통해 많은 건의를 받았다"며 "그 과정에서 공감대를 가진 연장선 상에서 행정제재를 유예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경총이 처벌 유예를 요구한 18일 김 장관은 노동시간 단축 기업인들과 간담회를 가진 자리에서 "(노동시간 단축 적용 기업) 상당수는 노동시간 단축에 대비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며 관련 지원방안을 약속할 뿐 제도 유예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더구나 애초 노동시간 단축을 논의할 때부터 그동안 노동부의 잘못된 법 해석 탓에 주 최대 68시간까지 일했을 뿐, 애초 법 조항 자체가 주 최대 52시간까지만 일할 수 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이 때문에 노동계는 정부의 잘못된 행정지침을 취소하라고 요구했지만, 기업의 혼란 등 부작용을 우려해 국회가 나서서 관련 법을 개정하면서 사업장 규모에 따라 단계적으로 시행하도록 조치했는데, 더 나아가 처벌까지 유예한 것이다.

 

이러한 정부의 입장 변화는 최저임금 인상 논란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 바 있다.

문 대통령은 대선 기간 2020년까지 최저임금 1만원 인상을 약속했고, 이는 '소득주도 성장'과 노동자 간에 드러나는 양극화 현상을 해결하기 위한 핵심 정책으로 다뤄졌다.

하지만 최근 여야는 노동계 반발에도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를 강행해 사실상 인상폭을 줄였다.

또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시간당 최저임금 1만원은 경제 흐름을 봐가면서 추진해나갈 수밖에 없는데 노동계가 전혀 그런 이해없이 무조건 올리라고만 하니 답답하다"며 '속도조절론'도 주장하고 있다.

이처럼 정부 내 엇박자를 보이면서까지 노동정책이 잇따라 보수화되는 데 대해 전문가들은 촛불혁명으로 침묵했던 보수 성향의 정부 관료·여당 내 정치인들이 반격을 시도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부경대학교 황선웅 경제학과 교수는 "정부 안에서도 노동 정책에 대한 비전과 의지가 공유되지 않고 있다"며 "최저임금이나 노동시간 단축, 전교조 문제 모두 반드시 달성할 목표와 보완책을 나누어 입체적으로 접근해야 하는데, 이런 구분 없이 우왕좌왕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개혁 정책을 실제로 추진하면서 반발에 부딪히면 당연히 수정할 수도 있다"며 "문제는 당사자들을 설득하면서 가야 하는데, 노동계와 상의 없이 추진하는 것이 문제"라고 강조했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 김종진 연구위원도 "최저임금은 시행된 지 반년도 채 되지 않았고, 노동시간 단축은 아직 시작되지도 않았다"며 "그럼에도 고용·일자리 지표가 좋지 않다는 이유로 노동정책이 우선순위에서 밀리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그 이유는 정부·여당의 개혁그룹들이 보수적 세력이나 기재부 등 경제 관료에 끌려가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청와대 일자리 수석을 기재부 관료가 맡거나, 김동연 부총리가 노사정 사회적 파트너와 절차 없이 노동정책을 거론하는 것은 굉장히 심각한 문제"라고 비판했다.

더 나아가 '좌회전 깜빡이를 켜고 우회전했다'는 비판을 받으며 좌우 모두에 협공을 받았던 참여정부의 실수를 되풀이할 수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김 위원은 "경제성장이나 기업의 사정을 핑계로 정부의 말 바꾸기가 반복되면 이른바 '심리적 계약·동맹의 파괴'가 일어날 수 있다"며 "양대노총으로서도 조합원 앞에 정부와 협력할 명분을 얻지 못하고, 촛불정부에 대한 지지층 이탈을 피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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