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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지 돌아갈 곳 없는 사람”…예멘 난민 품은 제주도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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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필품 나눠주고 주거지도 제공..."어려운 사람 돕는 건 사람의 도리"

19일 비영리시민단체인 글로벌이너피스는 제주출입국·외국인청사 앞마당에서 예멘 난민들에게 후원 물품을 제공하고 있다. <사진=고상현 기자="">

 


제주로 들어온 예멘 난민이 500명에 이르자 무슬림 혐오를 바탕으로 예멘 난민들을 추방하자는 의견이 거센 호응을 얻고 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는 ‘이슬람국가(IS) 테러범이 속해 있다’ ‘성폭행 등 잠재적 범죄자다’ 등의 근거 없는 소문들이 나돌고 있고, 급기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까지 추방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상황이다.

CBS노컷뉴스 취재진은 이러한 혐오 분위기 속에서도 내전으로 돌아갈 곳 없는 예멘 난민들을 가까운 자리에서 묵묵히 도와주는 도민들을 직접 만나 예멘 난민에 대한 그들의 생각을 들어봤다.

◇“예멘 난민이 백인이어도 두려워할까?”

19일 오전 제주시 용담동의 제주출입국‧외국인청사 앞마당에는 대학생인 이모(22‧여)씨와 고모(21)씨가 난민들에게 치약, 칫솔, 샴푸 등의 생필품이 담긴 봉지를 나눠주고 있었다.

수십 명의 난민들은 비영리시민단체인 ‘글로벌이너피스’에서 마련한 후원 물품과 식량을 받고는 자원봉사 중인 두 학생에게 고마움을 표한 뒤 숙소로 돌아갔다.

이씨와 고씨 모두 최근 SNS를 통해 예멘 난민들이 제주에 들어온 이후 생활비가 없어 생계 곤란을 겪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는 이곳에 한걸음에 달려왔다고 취재진에게 말했다.

이씨는 “최근 난민들이 잠재적 범죄자이고, 일자리를 뺏으러 온 사람이라는 오해나 편견이 있는데, 직접 만나서 대화를 나눠보면 다들 그냥 도움이 필요한 외국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강조했다.

옆에서 이야기를 듣고 있던 고씨는 “예멘 난민들이 만약에 백인이었다면 오히려 환영해서 받아줬을 텐데 피부가 까맣다는 이유로 사람들이 막연한 공포감을 갖고 적대시 하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고은경 글로벌이너피스 대표도 “당장 거처가 없는 난민 6명에게 사무실을 빌려주고 함께 지내봤지만, 무거운 짐을 들 일이 있으면 서로 먼저 도와주겠다고 하는 등 다들 평범한 사람”이라며 “우리가 사실 잘 모르기 때문에 두려운 것”이라고 말했다.

◇“내전 속 꿋꿋한 그들 보며 오히려 큰 용기 얻어”

무용가인 A(38‧여)씨는 지난 10일 SNS에서 ‘살 곳이 없는 예멘 난민들이 길거리에서 자고 있어 도움이 필요하다’는 글을 보고 곧바로 이 글을 쓴 사람에게 연락을 취했다.

다음날부터 A씨는 예멘 난민 15명을 제주시내 자신의 연습실에 아무런 조건 없이 먹고 자게끔 했다. 최대 20명까지 살기도 했지만, 최근 정부가 난민들에게 양식장 등의 일자리를 마련해주면서 19일 현재 9명으로 줄었다.

이날 오후 취재진이 찾은 자리에서도 어선주가 찾아와 난민 3명을 데리고 갔다. A씨는 이들에게 “몸 건강히 잘 지내라”고 하며 아쉬움의 인사를 전했다.

A씨는 “어려움에 처한 이들을 우연히 보고 도움을 준 것이지 나 역시 이들과 함께 지내지 않았다면 이슬람 문화에 대한 지식이 없었기 때문에 무서워하며 피해 다녔을 것 같다”고 취재진에게 말했다.

이어 “요즘 예멘 난민 관련 뉴스 댓글을 보면 이들을 테러리스트라고 하는 등 공격적인 댓글이 많이 달리는데 함께 지내보면 그냥 농담 좋아하고, 상대방에게 예의 바른 평범한 사람”이라고 강조했다.

A씨는 “특히 이들이 내전으로 가족을 잃는 등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어떻게든 살려고 발버둥치는 모습을 보면서 내가 그동안 괴로워하던 문제들이 별 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오히려 배운 게 많다”고 말했다.
19일 예멘 난민들이 한 시민의 배려로 개인연습실에서 머물고 있다. <사진=고상현 기자="">

 


◇“인간으로서 도와준 것인데 왜 눈치 봐야하나”

제주시 한림읍에 거주하는 B(41)씨 부부도 지난 11일부터 딸 다섯을 둔 예멘 난민 가정과 함께 살고 있다.

B씨 부부는 대가족과 함께 지내고 있지만, 불편한 점은 “화장실 쓸 때뿐”이라고 말했다.

예멘인 가족들이 빨래나 청소 등 집안일을 도와주기도 하고, 일상적으로 타인을 배려하는 습관이 있기 때문이다.

B씨는 “이슬람 문화 특성상 하루 다섯 번 기도하고, 할랄 푸드를 먹는 점을 빼면 한국 사람과 다를 게 없다”고 했다.

그러나 최근 마을 주민들이 B씨 부부가 없을 때 집에 찾아와 예멘 난민 가족을 사진으로 촬영하거나, 마을 공공시설을 이용하지 못하게 하는 등 배척하는 분위기에 마음이 쓰이고 있다.

B씨는 “인간으로서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도와준 것뿐인데 난민뿐만 아니라 이를 도와주는 사람까지 싸잡아 비난하는 분위기가 있다”고 토로했다.

이어 “근거 없이 난민들을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하는 사람들이 우려하는 것처럼 예멘 난민들이 위험하다면 제주에 오기 전 말레이시아에서 머물 때부터 범죄 등의 문제가 있어야 하는데 그런 뉴스는 들어본 적이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어려움에 처한 이들을 내쫓으면 우리가 행복하고 편안한 삶을 살 수 있는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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