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노동부가 오는 7월1일 노동시간 단축(주 최대 52시간제) 시행을 앞두고 11일 발표한 가이드라인은 관련법과 판례 등을 토대로 마련됐다.
그러나 제도 시행 20일 전에야 내놓은 가이드라인이 추상적인 데다 노사가 합의를 통해 알아서 결정할 부분이 많아 일선 산업 현장의 혼란이 불가피해 보인다.
노동부는 다양한 사업장에 일률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가이드라인을 내놓는 데는 한계가 있고 지나치게 구체적일 경우 오히려 역효과를 낼 수도 있다는 입장이다.
◇ 대기시간은 노동시간 인정
노동자가 특정 업무를 하지 않아도 사용자의 지휘·감독 아래 있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없는 '대기시간'은 노동시간으로 인정된다.
근로기준법도 제50조 제3항에서 "근로자가 사용자의 지휘·감독 아래에 있는 대기시간 등은 근로시간으로 본다"고 규정하고 있다.
작년 12월 대법원 판례는 경비원이 야간 휴게시간에 경비실 의자에 앉아 급한 일이 발생하면 즉각 반응할 수 있도록 하라는 지시를 받았다는 점 등을 토대로 이를 '긴급 상황에 대비하는 대기시간'으로 볼 수 있다고 판단했다.
고시원 총무가 자리에서 특별한 업무를 하지 않고 쉬거나 공부하며 보낸 시간도 대기시간에 해당한다는 판례도 있다.
◇ 접대는 사용자 지시 있어야 노동시간 인정 노동시간 단축을 앞두고 산업 현장에서 혼란이 일고 있는 활동 가운데 대표적인 게 접대다.
노동자가 업무 수행과 관련 있는 외부 인사를 일과가 끝난 저녁에 만나 식사를 같이하는 등 접대할 경우 이를 노동시간으로 볼 수 있느냐를 두고 논란이 벌어질 수 있다.
이에 대해 노동부는 "사용자의 지시 또는 최소한 승인이 있는 경우에 한해 근로시간으로 인정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노동부가 근거로 든 것은 지난 4월 서울중앙지법 판례다. 당시 재판부는 회사 부서장의 휴일 골프 라운딩에 대해 "사용자의 구체적인 지휘·감독하에 이뤄진 것으로 볼 수 없다"며 노동시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노동부 당국자는 "접대의 경우 소정근로시간 외에 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며 "사용자의 지시라든가 '누구를 만난다'는 보고 등 사실상의 승인이 있을 때 노동시간으로 인정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평일 저녁이나 휴일에 외부 인사를 접대할 때마다 일일이 사용자 승인을 받는 건 비현실적이라는 점에서 사용자 승인을 인정하는 기준을 두고 논란이 불가피해 보인다.
◇ 회식은 노동시간 인정 어려워 부서장이 주재하는 회식에 참석하는 것은 노동시간으로 보기 어렵다는 게 노동부 입장이다.
노동부는 "회식은 노동자의 기본 노무 제공과는 관련 없이 사업장 내 구성원의 사기 진작, 조직 결속 및 친목 등을 강화하기 위한 차원임을 고려할 때 근로시간으로 인정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또 "사용자가 참석을 강제하는 언행을 했다는 것만으로는 회식을 근로계약상 노무 제공으로 보기 어려울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회식의 목적을 친목 도모라고 좁은 의미로 해석한 대목은 논란의 여지가 있다. 부서 회의를 겸하는 회식 자리가 적지 않은 데다 대화의 상당 부분은 업무와 관련 얘기인 경우가 많다.
특히 한국 기업의 조직문화 상사가 주재하는 단체회식에 빠지는 건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는 점 때문에 '업무의 연장선'으로 봐야 한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 출장 노동시간은 노사 합의로 출장기간 중 얼마 만큼을 노동시간으로 볼 수 있는지도 논란거리지만, 노동부는 노사가 합의할 문제로 남겨뒀다.
출장의 경우 교통편 이용을 위한 준비와 대기, 이동 등에 걸리는 시간이 많아 어디까지가 노동시간인지 정하기가 쉽지 않다. 출장이 사업장 밖에서 이뤄지는 점 또한 노동시간을 측정하기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다.
근로기준법은 "근로자가 출장이나 그 밖의 사유로 근로시간의 전부 또는 일부를 사업장 밖에서 근로해 근로시간을 산정하기 어려운 경우에는 소정근로시간을 근로한 것으로 본다"고 규정한다.
소정근로시간은 사업장별로 취업규칙 등을 통해 정하는 업무 시간으로, 보통 8시간이다. 소정근로시간을 넘는 경우 그 업무 수행에 '통상 필요한 시간'을 노동시간으로 간주한다.
노동부는 "출장과 관련해서는 통상 필요한 시간을 (사업주가) 근로자대표와 서면 합의를 통해 정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출장과 같은 활동은 사업장별로 차이가 커 일률적인 가이드라인을 내놓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그러나 노동시간을 정하는 민감한 문제를 노사 합의에 맡기면 노조가 없거나 노조활동이 미약한 사업장에서는 노동자에게 불리하게 정해질 가능성이 크다.
◇ 워크숍은 노동시간…'친목활동 시간'은 제외 노동부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업무수행 능력 증진을 위해 사용자의 지휘·감독 아래 진행되는 워크숍과 세미나 등은 노동시간으로 간주된다.
토의 시간이 길어져 소정근로시간 범위를 넘어서면 연장근로 인정도 가능하다.
그러나 워크숍 프로그램 중 친목 도모 활동은 노동시간에 포함할 수 없다는 게 노동부 설명이다.
보통 친목 도모 활동을 겸하는 워크숍 특성상 어떤 프로그램을 노동시간에서 넣고 뺄지 결정하는 것 판단이 쉽지 않다.
노동자가 참가하는 교육 프로그램의 경우 사용자가 의무적으로 하게 돼 있는 교육일 때 노동시간에 포함된다.
'업무와 관련해 실시하는 직무교육'과 '근로시간 종료 후 또는 휴일에 의무적으로 소집해 실시하는 교육'은 노동시간에 포함된다는 행정해석 등이 근거다.
노동부는 "노동자 개인 차원의 법정 의무 이행에 따른 교육 또는 이수가 권고되는 수준의 교육을 받는 시간은 근로시간으로 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 노동부 "일률적 기준 자체가 위험" 노동부의 가이드라인 제시에도 여전히 불분명한 점이 많아 산업 현장의 혼란은 쉽게 수그러들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다양한 사업장에 똑같이 적용할 가이드라인을 내놓는 것은 불가능하다는점을 노동부는 강조한다.
노동부 관계자는 "노동시간을 어떻게 볼 것이냐는 문제는 굉장히 다양한 요소를 품고 있다"며 "구체적인 사례 별로 판단하지 않으면 잘못된 판단이 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개별 사업장의 다양성을 무시하고 지나치게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을 내놓을 경우 오히려 혼란을 키울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사업장에서 노동시간 관리를 위한 기준을 만들 때 가이드라인을 참고할 수 있을 것"이라며 "구체적 사례에 관한 판단이 필요할 경우 지방노동관서와 상담해달라"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