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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 강동원 타이거…'2016' 최순실 프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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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항쟁과 촛불혁명…신발 한 짝에 관한 전혀 다른 두 이야기
영화 '1987' 장준환 감독 "몹시 아이러니하고 상징적인 순간"
정치학자 이나미 교수 "민주투사 흔적 VS 부정부패 연결고리"

1987년 6월 9일 연세대학교 정문 앞에서 이한열 열사가 머리에 최루탄을 맞고 피를 흘리며 다른 학생 품에 안겨 있다. (왼쪽 사진=이한열기념사업회·당시 로이터통신 정태원 기자 촬영). 2016년 10월 31일 당시 박근혜 대통령 비선실세로 지목된 최순실씨가 서울 서초동 중앙지검에 피의자 신분으로 출석하고 있다. (사진=박종민 기자/노컷뉴스)

 

이제부터 전하려는 이야기는 30년 차이를 두고 벌어진, 시대의 물줄기를 바꾼 역사적 현장을 떠올리게 만드는 각기 다른 신발 한 짝에 관한 진단이다.

1987년 6월항쟁을 그린 영화 '1987'에서는 배우 강동원이 연기한 이한열(1966~1987) 열사가 쓰러질 때 신고 있던 '타이거' 브랜드 운동화를 공들여 조명한다.

'1987'을 연출한 장준환 감독은 최근 CBS노컷뉴스와 가진 전화통화에서 "사실 이 영화를 할지 말지 고민할 때 이한열 열사 기념관을 찾은 적이 있다"며 말을 이었다.

"(영화 '1987'을) '하고 싶다' '해야만 한다'는 마음이 굉장히 컸지만, 당시 (박근혜 정권) 상황에서는 (영화가) 제대로 만들어질 수 있을지 고민이었다. 영화가 만들어지지 못한다면 함께하는 사람들에게 엄청나게 미안한 일이 되니까…. 그렇게 고민하고 있을 때 이한열 열사 기념관에 갔는데, 그곳에서 유독 그 신발 한 짝이 굉장히 인상깊게 다가왔다. 그래서 시나리오에도 그 운동화 한 짝을 의미 있는 요소로 넣은 것이다."

서울 신촌로터리에 있는 이한열기념관에서는 이한열 열사의 옷과 함께 오른쪽 신발 한 짝을 복원해 전시하고 있다. 고인이 1987년 6월 9일 연세대 앞 시위 도중 경찰의 최루탄에 머리를 맞고 쓰러질 당시 신고 있던 운동화다.

장 감독은 "스무살 밖에 안 된 젊은이가 자신의 청춘이 지닌 가능성·미래 모든 것을 국가 권력과 폭력에 빼앗긴 데 대한, 여러 가지 말로 다 풀어낼 수 없는 상징성을 그 잃어버린 신발 한 짝이 품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이한열 열사가 신발 한 짝을 남긴 채 세상을 떠나고 30년이 흐른 2016년, 우리는 전혀 다른 상징성을 지닌 또 다른 신발 한 짝과 마주하게 된다.

바로 박근혜 정권 비선실세로 지목된 최순실씨가 그해 10월 31일 검찰에 출석하면서 포토라인 근처에 남기고 간 구두 한 짝이다. 그 신발 안에는 명품 브랜드로 널리 알려진 '프라다'(PRADA) 로고가 선명하게 박혀 있었다.

장 감독은 이를 두고 "똑 부러지게 정리할 수는 없지만, 굉장히 아이러니하면서도 상징적인 순간이었다고 생각한다"며 "(영화 '1987') 시나리오 작업을 할 때 그 일이 벌어졌기 때문에, 우리로서는 '시나리오 속에 있는 그(이한열 열사 운동화) 장면과 정반대되는 느낌의 일이 현실에서 일어날 수 있는가'라는 점에 굉장히 놀라웠다"고 전했다.

그는 "이한열 열사 운동화의 경우 안타까운 마음이 크다면, 최순실씨 명품 신발은 우리가 이제는 걷지 말아야 할 길을 대변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해 본다"고 부연했다.

◇ "최순실이 남긴 신발 한 짝…'평등' 가치 무너진 데 들어선 속물근성"

1987년 6월 9일 연세대학교 정문 앞에서 이한열 열사가 머리에 최루탄을 맞고 쓰러질 때 신고 있던 타이거 운동화 한 짝(위)과 2016년 10월 31일 최순실씨가 서울 서초동 중앙지검에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되는 와중에 벗겨진 최씨의 프라다 구두 한 짝. (사진=자료사진/노컷뉴스)

 

이한열 열사가 남긴 운동화 한 짝은 1987년 6월항쟁으로, 그로부터 30년 뒤 최순실씨가 벗어 놓고 간 명품 신발 한 짝은 2016년 촛불혁명으로 타올랐다.

정치학자 이나미(한서대 동양고전연구소) 연구교수는 "각각의 신발 한 짝에서는 혼란스러운 시대 상황을 감지한 대중의 분노가 읽힌다"고 운을 뗐다.

"각기 다른 상황에서 벗겨진 두 개의 신발 한 짝, 하나는 운동화이고 나머지는 명품 구두다. 이한열 열사가 민주화운동에 앞장섰던 투사의 흔적으로서 운동화를 남겼다면, 최순실씨의 경우 그간 자신이 누려 왔던 지위와 부정부패의 연결고리를 그 명품 신발로 아주 적나라하게 드러낸 셈이다."

이 교수는 "이한열 열사가 살았던 1980년대는 그나마 청렴을 자랑으로 여기던 분위기가 존재하던 시절이었다"며 "대학 배지를 달고 다니는 것을 유치하다고 여기던 그때와 달리, 지금은 대학 이름을 새긴 점퍼 등을 우월함의 상징으로 걸치고 다니는, 타인에게 위화감을 주는 것이 일상이 된 시대"라고 진단했다.

"이는 정치적 민주화와 더불어 불어닥친 신자유주의가 낳은 사회적 속물화다. 최순실씨가 남긴 신발 한 짝은 평등의 가치가 완전히 무너진, 일상화된 한국 사회의 속물 근성을 단적으로 보여 준 한 장면으로 여겨진다."

그는 "물질적으로 많이 가졌다고 당당하게 드러내는 것을 미덕으로 여기는 시대가 온 것은 유감"이라며 "타인에게 위화감을 주는 이러한 행태는 우리 모두가 느끼고 성찰해야 할 지점"이라고 지적했다.

"양극화 등으로 인해 사회 전반에서 정의가 사라진 곳에 들어선, 우리네 암울한 미래를 단적으로 드러낸 것이 '최순실 사건'이다. 비선실세와 그 딸은 승승장구하는데, 대통령 박근혜는 이 상황에 대한 타계 의지도, 능력도 없는 상황에 대한 분노였던 것이다."

6월항쟁은 미완의 시민혁명으로 평가받는다. 대통령 직선제를 쟁취했음에도 불구하고 민주진영을 대표하던 정치인 김대중, 김영삼의 분열에 따른 노태우 당선 등으로 시민들의 열망이 법과 제도로서 제대로 자리잡지 못했던 탓이다.

장준환 감독은 "(6월항쟁은) 미완, 혹은 반은 실패한 혁명이라는 말을 듣잖나. 그래서 사실 영화 '1987' 마지막에 '그해 12월 군사정권을 승계한 노태우가 대통령으로 당선됐다'는 자막을 넣을까 굉장히 고민했다"며 "이 역사를 조금 더 크게, 온전하게 현재까지 이어지도록 볼 수 없을까라는 생각에서였다"고 전했다.

"영화에서는 1987년에 우리가 이뤄낸 아름다운 모습을 더욱 강조했다. 우리가 6월항쟁을 아무리 좋은 추억으로 기억한다 하더라도, 그 다음에는 씁쓸함이 따라올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요즘 관객들과 많이 만나고 있는데, 나 역시 1987년이 우리에게 남긴 것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려 애쓰고 있다. 추억팔이나 무용담이 아니라, 6월항쟁 이후 우리가 그렇게 부르짖었던 '그날'을 향해 가고 있는지를 말이다."

◇ 6월항쟁 이후, 우린 '그날'을 향해 가고 있었나…촛불혁명은 현재진행형

지난해 2월 25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민중총궐기 17차 범국민행동의 날 집회에 운집한 시민들이 레드카드와 촛불을 들고 당시 대통령 박근혜의 퇴진을 촉구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1987년 6월항쟁 이후 30년 동안 한국 사회는 극심한 양극화, 탈출구 없는 청년세대, 소수자·약자를 향한 무차별 혐오 등 갖가지 문제를 양산해 왔다.

그렇게 쌓이고 쌓여 온 사회 모순에 대한 민심의 분노는 2016년 겨울 촛불혁명으로 폭발했다. 이후 지금까지도 일상의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대의 목소리는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이나미 교수는 "은유적으로 표현하자면, 한 세대를 가리키는 30여 년 간격을 두고 '4·19혁명의 자식이 넥타이부대(6월항쟁)가 되고, 넥타이부대의 자식이 촛불이 됐다"며 "이른바 (6월항쟁 주역인) 386세대가 486 내지 586세대가 됐는데, '지금 40대, 50대가 과연 무엇을 했느냐'라고 묻는다면 격려나 지지보다는 비판이 더 많은 현실"이라고 진단했다.

"1987년 당시 전체 인구의 30% 수준이던 대학생들과 이른바 지식인이라고 불리우는 소수 엘리트들이 6월항쟁을 주도했는데, 이들 가운데 그 시대의 순수했던 젊은이들 이름에 먹칠하는 이들이 있다고 본다. 당대 주류적 입장을 대변했던 운동권에도 여러 입장이 섞여 있었기 때문에, 그 입장들 가운데 일부에게는 '진정으로 민주화를 원했는가'라는 의문이 든다."

다시 말해 "그 시대에는 민주화 물결이 주류였기에, 그러한 시대 상황이 아니었다면 지속성을 갖고 동참하지 않았을 인물들이 다수 6월항쟁에 참여했다고 보여진다. 그 동기는 권력욕 등 여러 형태였을 것"이라는 이야기다.

"오히려 지금의 촛불혁명 이후 국면은 그러한 순수하지 못했던 동기들이 검증되는 시기라고 본다. 현재 권력을 잡은 입장에서 사회 변화를 바라지 않는 사람들이 그 경우다. 여전히 변화를 지지하는 권력자라면 그때(6월항쟁)나 지금이나 진정성을 지닌 셈이다."

장준환 감독 역시 같은 맥락에서 "지금 아파트 값은 '386'이 아닌 다른 세대가 올린 것인가? 아이들 교육 등 공동체로서 사람답게 같이 살자는 그 가치가 얼마나 지켜지고 있는가?"라고 반문하며 "지금 시대상을 1987년에 빗대어 성찰하면 해결의 실마리를 찾는 데 보탬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역설했다.

결국, 촛불혁명으로 분명한 한계를 드러낸 1987년 체제를 극복하는 데는 당대 6월항쟁을 주도했던 586세대가 다음 세대에 대해 보다 전향적인 자세를 취해야 한다는 데로 의견이 모아진다.

민주화운동에 힘을 보태 온 586세대이기도 한 이나미 교수는 "사실 우리 세대는 나름 '배운 세대'라는 점에서 더욱 위험하다"며 설명을 이어갔다.

"전쟁을 겪은 우리네 부모 세대는 이른바 '못 배운 세대'였기에 고집을 부리더라도 논리적이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것에 반발해 온 우리 세대가 심적 고통에서 나름 자유로웠던 까닭도 여기에 있다. 그러나 우리 세대가 자식 세대에게 주는, 권위에 기반한 공포는 다르다고 본다. 우리 세대가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를 절대 강요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그는 "무엇보다 청년 세대 목소리를 경청하고 우리 스스로를 성찰하려는 자세가 절실하다"며 "모두가 다름을 인정하는 가운데 서로 화합하는 '화이부동'(和而不同)의 자세를 어느 때보다 되새겨야 할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장 감독은 "우리는 커다란 억압과 폭력 앞에서도 공동체로서 무엇을 추구해야 하는지를 6월항쟁에 이어 촛불혁명으로 재차 확인했다"며 "그러나 그것을 완성해 나가는 길은 결코 그냥 얻어질 수 없다"고 진단했다.

"더 많이 먹고 누리는 것 같지만 우리네 마음속은 또 한편으로 굉장히 황폐해지고 날카로워지고 서로에게 예민해진 것 같다. 우리가 이것을 단번에 해결하겠다고 조급해 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많이 이야기 나누고 서로 이해하면서 그에 맞는 법과 제도로서 보완해 나가는 일이 민주주의의 핵심과도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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