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지방검찰청 정문. (사진=자료사진)
올해 초 전북 전주시 덕진구의 한 노후 아파트에서 노부부와 손자 등 3명이 질식해 숨진 사건은 우리 사회에 만연한 안전불감증이 부른 인재(人災)인 것으로 나타났다.
사건은 지난 2월 8일 전주시 덕진구 배모(78)씨의 아파트에서 벌어졌다. 1980년에 지은 이 아파트는 건립 당시 연탄보일러와 공동배기구를 사용했지만 최근 배씨를 비롯한 입주민들이 가스보일러로 교체한 상태였다.
이날 뇌경색으로 병원 신세를 져왔던 배씨의 부인 윤모(71)씨가 퇴원하면서 간호를 하던 배씨와 함께 이 아파트로 돌아왔고, 다른 지역에 살던 손자(24)도 조부모를 보러 아파트에 찾아왔다.
◇ 연이은 3번의 안전불감증…한 번이라도 신중했더라면
2016년 9월 2일. 노부부는 그간 사용하던 연탄보일러를 가스보일러로 교체했다. 대부분 가정은 가스보일러용으로 새로운 배기구를 뚫어 사용했지만, 노부부는 기존 공동배기구에 가스보일러 배기관을 연결했다. 그리고 비극의 서막이 올랐다.
2017년 10월 무렵 이 아파트 운영위원장 A(60)씨는 공동배기구 폐쇄 공사를 의뢰했다. 공동배기구를 통해 칼바람이 들이친다는 민원이 이어지자 공동배기구를 폐쇄하기로 한 것이다. 검찰 조사에서 A씨는 "당시에는 공동배기구가 무슨 용도로 설치돼 있는지 전혀 몰랐다"고 진술했다. 이러다보니 공동배기구 폐쇄에 대한 주민 대상 공고도 없었다.
폐쇄공사를 한 공사업자 B(57)씨 역시 무심하고 무지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공사업자로서 공동배기구의 기능을 알아야 했지만, 그저 A씨의 의뢰대로 폐쇄공사만 진행했다. 공동배기구 폐쇄에 따른 주의사항 설명 등은 따로 없었다.
사고 당일인 2월 8일 오후 3시 50분쯤 노부부는 메케한 냄새가 난다며 C(40)씨의 보일러 설치업체에 전화했다. C씨는 보일러 기사 D(39)를 노부부의 집에 보냈다. D씨는 가스 누출을 점검하러 왔지만 계측기 등 검출장비 없이 누출 여부를 살폈다. D씨는 가스누출 점검 경험이 2차례 밖에 없는 10개월 된 초임자에 보일러 설치 자격이 없었으며 정확한 교육도 받지 않은 상태였다. D씨는 검찰에서 "20분쯤 둘러본 뒤 이상이 없다고 말한 뒤 돌아갔다"고 말했다.
D씨가 돌아간 뒤 노부부와 손자는 컵라면으로 허기를 채우다 쓰러졌다. 3명의 마지막 기척은 이날 오후 5시 13분쯤 손자가 어머니에게 보낸 '(할아버지가) 손발이 차갑고 계속 어지럽다 하시고'라는 SNS 메시지였다. 5시 22분 '엄마가 집으로 갈까'라고 보낸 메시지에는 답을 하지 못했다.
이날 오후 6시 38분쯤 '사람은 있는 것 같은데 아파트 문을 안 열어준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한 구급대원은 거실에서 배씨와 손자, 화장실에서 윤씨의 시신을 발견했다. 사인은 일산화탄소 중독이었다.
노부부와 아파트 같은 라인 중 폐쇄된 공동배기구에 가스보일러 배기관을 연결한 곳은 한 가구가 더 있었다. 돈을 아끼기 위해 보일러 대신 전기장판만 사용한 이 집은 다행히 화를 면할 수 있었다.
◇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로 이어진 안전불감증사건을 수사한 검찰은 연이은 안전불감증이 소중한 인명을 앗아갔다고 보고 사건과 관련된 4명을 모두 재판에 넘겼다.
전주지검은 7일 아파트 운영위원장 A씨, 공사업자 B씨, 보일러 설치업체 업주 C씨와 보일러 기사 D씨를 업무상과실치사의 공동정범으로 불구속 기소했다고 밝혔다.
검찰은 행위자에 대한 처벌이 필요하다는 것 뿐 아니라 안전불감증 행위에 대한 사회적 경종도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전주지검 관계자는 "공동배기구 폐쇄를 의뢰한 사람부터 공사를 한 사람, 피해자들이 위험신호를 인지하고 신고했지만 점검하러 온 사람까지 안전에 대한 의식이나 경각심이 너무 부족했다"며 "비극이 됐지만 이 사건이 안전과 관련된 업무에 종사하는 이들이 본인 업무의 중요성을 더 깊이 깨닫고 경각심을 가지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편 검찰은 이 사건을 계기로 비슷한 사고를 막기 위해 제도적 개선책 마련과 전수조사를 요청했다.
검찰은 전북지역 노후 아파트에의 경우 같은 사고가 발생할 위험성이 있다고 보고 전라북도에 노후 공동주택 공동배기구 점검을 요청했다.
또 보일러 기사가 맨몸이 아닌 간이 계측기라도 있었다면 사고를 예방할 수 있었다고 보고 국토교통부에 개선책 마련 의견을 제시했다.
보일러 설치업체의 일산화탄소 측정 장비 구비 의무화 또는 업체가 대체로 영세한 점에 비춰 가스안전공사나 도시가스 공급업체가 보유한 측정 장비를 업체에 대여하는 방안 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