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의 취임 후 1년 간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제대로 존재감을 나타내지 못하고 있다. 연일 고공행진 중인 대통령과 다른 독자적인 목소리를 내기가 쉽지 않다는 현실론도 있지만 지나치게 청와대의 그늘 안에 안주하려 한다는 비판도 나온다.
◇ "대통령안이 곧 민주당안" 정부만 바라보는 여당?참여정부 시절 노무현 대통령과 여당 간 혼선과 잡음이라는 트라우마가 있는 민주당으로서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말자는 의지가 강할 수밖에 없다. 이러다 보니 주요 현안 대부분에서 청와대와 입을 맞추는 형국이다.
민주당은 최근 6월 지방선거와의 동시 투표가 무산된 개헌과 관련해 독자적인 개헌안을 내놓으라는 야당의 요구에 "대통령 개헌안이 곧 민주당안"이라는 답을 내놨다. 당초 청와대와 야당 간 이견차를 좁히기 위해 중재자 역할에 나섰지만 청와대가 국회의 총리 선출·추전제를 수용할 수 없다고 강경하게 나서자 함께 입장을 선회했다.
지난해 5월 선출돼 문재인 정부 첫 1년간 당을 이끈 민주당 우원식 원내대표의 "대통령 개헌안은 대통령과 민주당의 공통개헌안이다. 한국당은 청와대 눈치만 보는 해바라기 여당이었을지 모르지만 우리는 그런 당이 아니다"라는 발언이 설득력있게 들리지 않는 이유다.
외유성 출장에 대한 비난 여론으로 14일만에 전격 사퇴한 김기식 전 금융감독원장을 두둔한 것도 청와대와의 무리한 발맞추기였다는 평가다. 전직 동료의원이었고 청와대가 검증 후 임명했다는 생각에 "그럴 수 있는 일"이라며 감싸기에 나섰지만 높아진 국민 눈높이를 제대로 읽지 못했다는 지적이 크게 일었다.
정권 초기인 만큼 청와대에 부담을 주는 일을 최대한 줄이는 것이 여당의 임무라며 비판을 최대한 자제하자는 분위기는 당내 전반의 기류다.
한 서울 중진의원은 "다른 목소리를 내면 개혁의 추진력을 얻기 힘들고 정부에 대해 여당으로서 힘을 실어주는 것이 당연한 일"이라면서도 "민주당의 전통은 토론과 다양성이었는데 지금은 그런 정체성이 많이 사라진 상태"라고 말했다. 다른 의원은 "당 내에 이렇게 다른 목소리가 없던 적이 없었다"고 표현했다.
남북회담 성공 등으로 80%대에 육박한 문 대통령의 지지율에 편승해 50%대의 고공비행 중인 당 지지율도 적지 않은 부담이다. 자칫 쓴 소리를 할 경우 당내 주류인 친문(친문재인) 진영의 눈 밖에 나거나, 이른바 '문빠'로 불리는 대통령 지지층으로부터 비난 여론이 쇄도할 수 있다.
◇ 일방적인 청와대…소통이 관건
문재인 대통령.
문 대통령이 여당이 활동할 여지를 주지 않고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는 불만은 당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이런 부분을 해소하기 위해 만들어놓은 것이 당정협의인데 형식적으로 열린 탓에 제 역할을 못한다는 지적이다.
8·2부동산대책과 후속대책과 관련한 당정협의 후에는 국토교통위원회 상임위원들이 일방통보식 보고라며 불만을 제기했고, 김상곤 교육부 장관과 박춘란 차관 간 대입정책 엇박자 행보 후에는 비공개 당정을 통해 당과의 소통을 강화하라는 주문도 나왔다.
하지만 이에 앞서 여당이 먼저 적극적으로 나서서 정부 정책에 개입했어야 한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한 수도권 중진의원은 "여전히 높은 실업률, 최저임금 인상이나 근로시간 단축과 관련한 현장의 부작용 등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여당이 적극적으로 당정청 간 협력을 유도해 정책의 속도를 냈어야 한다"며 "집권하면 국회와 멀어질 수밖에 없는 대통령의 입장을 감안했을 때 당대표나 원내대표가 더 리더십을 발휘해 당청·당정·대야 관계를 주도적으로 이끌었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때문에 오는 11일과 8월에 각각 선출되는 원내대표와 당대표 등 새 지도부를 향해서는 이런 소통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주문도 나온다.
박상철 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 교수는 CBS노컷뉴스와의 전화 통화에서 "여야 간 정책협상이 전혀 진도가 나가고 있지 않는 것은 문 대통령이 국회를 배제한 채 혼자서 정책을 추진한다는 의미"라며 "여당이 개혁의 지속 못지않게 중요한 소통에 집중해 당청은 물론 대화를 하지 않고 있는 청와대와 야당 사이의 가교 역할 또한 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