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힘없는 노동자일수록 민주주의가 절실히 필요하다'
- 폭동으로 평가절하돼 온 사북항쟁…위상 격상의 움직임
- 2007년, 과거사 정리위원회, '국가가 사북항쟁 관련자들에게 사과하고 정당한 보상과 예우를 해야 한다'고 권고.
- 38주년 주년 기념식, 그동안 억울한 것 바로 잡아주고 정당한 역사적 평가되는 계기 되길.
■ 방송 : 강원CBS<시사포커스 박윤경입니다>(최원순PD 13:30~14:00)
■ 진행 : 박윤경 ANN
■ 정리 : 홍수경 작가
■ 대담 : 사북항쟁동지회 이원갑 회장
사북민주항쟁 38주년 기념 간담회(사진제공=3.3기념사업회)
1980년 4월(21일부터 24일까지), 국내 최대의 민영탄광인 정선군 사북읍의 동원탄좌 사북광업소에서 발생한 탄광 노동자들의 시위를 기억하시나요.
회사 측의 착취와 어용노조에 반발해 발생한 총파업 사건으로 불과 한 달 후 광주에서 벌어질 참극의 전주곡이라고도 불리는 사북항쟁에 대한 얘긴데요. 그동안 평가절하됐던 이 항쟁의 위상을 격상시켜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최근 강원도에서도 이를 국가기념일 제정하기 위한 활동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는데요..
당시 사북항쟁의 현장에 있었던 사북항쟁동지회 이원갑 회장과 함께 관련 내용 살펴보겠습니다.
◇박윤경>회장님, 안녕하세요?
◆이원갑>예, 안녕하세요?
◇박윤경>사북항쟁이 발생한지 어느덧 38년의 세월이 흘렀네요. 38년전 오늘까지 나흘간 있었던 사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시죠?
◆이원갑>네, 그렇습니다. 사북민주항쟁 당시 태어난 아기들은 올해 서른 아홉의 청장년이 됐어요. 많은 세월이 흐르는 동안 사북의 아픈 역사가 혹시 묻혀버릴까 안타까웠습니다. 지금에 와서 사북항쟁의 위상이 재조명 되는데 대해 늦었지만 우리 소원이 이뤄지는 것 같아 기쁩니다.
◇박윤경>정부의 노동3권 탄압 등으로 인한 기본권 제약, 저임금과 어용노조에 대한 누적된 불만이 마침내 폭발했던 사건이었는데요. 실제 사북광업소의 노동환경, 얼마나 열악했나요?
◆이원갑>우선 광부의 구성에 대해 말씀드릴 필요가 있는데, 광부가 된 사람은 배운 것이 없고 가진 것이 없고 의지할 것이 없는 사람이 광부가 됐어요. 그래서 광부가 된 걸 숙명으로 알고 살아왔죠. 가정의 가장으로 가정에 충실하고 또 직장에서 열심히 탄을 캐면 자식들에게는 우리들이 겪은 광부를 되물려주지 않고 잘 살 줄 알았어요.
그러나 그건 허망한 꿈이었을 뿐입니다. 70년대 유류파동으로 석탄이 에너지의 주 자원이 됐고요. 그러다보니 탄광기업주는 석탄을 많이 캐기 위해서 혈안이 돼 있었어요. 국가에서는 석탄 증산 보국이라는 미명아래 독재정권과 기업주가 정경유착이 돼서 광부들의 인권을 유린시키고 혹사시켰어요. 탄광노동일터에서는 노동현장에서 계엄법, 국가보안법, 특별조치법 등 악법으로 노동 3권을 몰수해버리고 임금을 착취하는 등 광부를 노예처럼 취급했던 게 그 당시입니다.
탄을 캐다가 광부가 죽는 것은 당연하게 생각했고, 복지 후생 시설도 전혀 투자하지 않아서 방음도 되지 않은 사택 판자촌에서 거지같은 생활을 하면서 3대가 같이 사는 집도 많았어요. 수도가 없어서 공동 우물가에서 추운 겨울에도 양동이로 줄을 서서 물을 받아 사용하는 처참한 현실이었어요. 일은 시키는대로 하고 돈은 주는 대로 받고 그렇게 해야만 광부로 연명할 수 있는 처절한 질곡의 삶을 살았습니다.
1980년 사북항쟁 당시 투쟁 현장(사진제공=3.3기념사업회)
◇박윤경>그렇게 광부들이 광업소를 점거하고, 정부당국과의 극적인 타결을 이뤄내기까지, 나흘간 어떤 일이 있었는지 간략히 설명해 주신다면?
◆이원갑>광부들이 이러한 참상을 견디다 못해 '광부도 사람이다. 인간답게 살아보자'고 외치면서 80년 4월21일, 지부장 선거와 부당한 임금인상 파기, 처우개선 등을 외치면서 투쟁을 시작했습니다. 우리 뜻이 관철될 때까지 투쟁하기로 작전을 가지고 시작했는데요. 경찰이 개입했고 여기에 항의하는 광부들을 경찰 지프차가 치고 달아나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사건이, 자유로운 투쟁이 폭력화되기 시작했어요.
4월21일 그러한 상황을 관리할 수 있는 사람을 개헌당국에서 강제연금한, 무슨 말이냐면 저하고 신경씨 등 항쟁 지도부 사람들을 4월21일 아침에 강원도지사와 경찰국장이 고한지서에 와서 올라오라고 해서 가니까 저와 두 사람을 연금을 시켰단 말입니다. 그러니까 흥분한 광부들이 무력으로 진압하려니까 여기에 맞서다 경찰들이 물러나고 광부들과 사북일대를 장악한 상태에서 경찰과 대치했고 사흘간 대치 끝에 협상 타결해 사태가 종결이 났습니다.
◇박윤경>그렇게 마무리가 되는 줄 알았던 항쟁은, 4.24 합의를 깨고 이를 광부난동사건으로 규정한 신군부의 끔찍한 수사로 이어졌습니다. 아직도 그 후유증으로 고통 받는 분들이 많죠?
◆이원갑>신군부에서는 사북 사건을 광부들의 이유없는 폭동과 난동으로 매도해 처분을 하지 않겠다던 합의사항이 온데간데 없어졌어요. 사건 이후에 140여명의 광부와 부녀자들은 고문 기술자들이 있는 합동수사본부 보안대에서 고문과 무자비한 폭행으로 인간이기를 거부당하는 아비규환의 생지옥으로 보내졌어요. 38년이 지난 지금도 병원신세를 져야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박윤경>그렇게 많은 분들이 고통을 받았지만 오랫동안 폭동으로 평가절하됐던 사북항쟁. 그러나 이제는 그 위상을 격상시켜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습니다. 서슬 퍼런 군부독재 속에서 벌어진 민주항쟁, 특히 이 일이 있고난 후 다음 달인 5월에는 5.18민주화운동이 일어나기도 한만큼, 1980년 민주화 운동의 기폭제가 된 사건이라는 평가도 나오고 있는데, 회장님은 어떻게 평가받아야 한다고 보세요?
◆이원갑>우리 사건 당시 서울의 봄이 본격화되지 않았고 정치권과 학생들도 전두환 정권의 움직임을 관망할 때입니다. 그 때 사북항쟁이 도화선이 돼 노동자들이 들고 있어나고 여기에 고무된 학생들이 교문 밖으로 나와서 유신을 철폐하고 완전한 민주주의를 쟁취하기 위해서 싸우기 시작했다는 건 다 아는 사실입니다.
5월에 서울과 전국각지에서 벌어진 민주화 운동이 광주에서 신군부의 처참한 살육전과 비극으로 희생을 치렀죠. 비록 저희가 못 배우고 가난한 광부들이지만 힘없는 노동자일수록 민주주의가 절실히 필요하다는 걸 알린 것이 사북민주항쟁입니다. 그 시발점이 바로 이곳 사북입니다. 저희는 사북항쟁을 까닭없이 격상시키고 띄워달라고 바라지는 않습니다. 그냥 그동안 억울한 걸 바로잡아주고 정당한 역사적 평가를 해달라는 것이지 따로 특별한 대접을 해달라는 건 아닙니다.
사북항쟁 38주년 기념식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는 사북항쟁동지회 이원갑 회장(사진제공=3.3기념사업회)
◇박윤경>관련해서 지난 토요일, 사북항쟁 38주년 기념식이 열리기도 했는데요. 이 자리에서 사북항쟁의 위상을 격상시킬 수 있는 방안들도 제시됐죠?
◆이원갑>우선은 38년만에 최문순 강원도지사께서 참석하셨어요.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격상을 바라진 않습니다. 이미 지난 2007년, 국가가 만든 과거사 정리위원회가 '국가가 사북항쟁 관련자들에게 사과를 하고 정당한 보상과 예우를 해야 한다'고 권고한 사항이 있어요. 이대로만 이행해주면 되는 거예요. 그리고 사북 민주항쟁의 역사적 의의와 위상정립을 위한 TF팀이 구성되면 기념일 제정 추진, 피해자 진상조사 지원 등 구체적 방안이 이뤄질 것으로 봅니다.
◇박윤경>하루빨리 철저한 조사가 이뤄져 사북항쟁과 관련자들에 대한 역사적인 재평가가 이뤄지길 기대합니다. 말씀 고맙습니다.
◆이원갑>고맙습니다.
◇박윤경>지금까지 사북항쟁동지회 이원갑 회장이었습니다.시사포커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