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영동대교 아래에는 수십년간 공동체 생활을 해오던 빈민들이 있었다. 헌옷을 주워 팔며 자활을 꿈꾸던 이들은 지난 2012년 강남구청의 강제철거 이후 거리로 내몰릴 수밖에 없었다. CBS노컷뉴스는 당시 쫓겨났던 빈민들을 추적해 대책 없는 철거정책이 지난 5년간 이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조명하는 3부작 연속기획을 마련했다. [편집자 주]글 싣는 순서 |
① 강남이 쫓아낸 빈민들, 그후 5년…"지금은 혼밥, 왁자지껄 다리밑 그리워" (계속 이어집니다) |
노숙인 쉼터를 전전하다 지난 2월 서울 용산구 동자동 쪽방으로 거처를 옮긴 이재영(57)씨(사진=고상현 기자)
경쟁에서 밀려난 도시 빈민들은 다리 밑에서 서로의 어깨에 기대어 자활을 꿈꾸고 있었다. 그러나 철거 이후 흩어진 이들은 빈곤도, 죽음도 오롯이 홀로 짊어질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 보호시설, 지하창고 전전했던 5년가족보다 더 끈끈했다던 넝마공동체가 불법 주거지라는 이유로 서울 강남구청에 의해 철거된 건 지난 2012년 11월. 이곳에서 30년을 살았던 김차균(70)씨는 노숙인 쉼터에 머물던 것도 잠시, 지금은 서울 노원구 한 쪽방에서 홀로 버티고 있다.
김씨는 지난달 26일 CBS노컷뉴스 취재진과 만나 "그땐 일하고 돌아오면 '참 고생했다'며 끌어 안아주고, 공동체로 더불어 살아서 얼마나 좋았는지 모른다"면서 "지금은 리어카를 끌든 경운기를 끌든 각자 혼자 살 뿐"이라고 아쉬워했다.
지난 14일 서울 강남구 영동5교 아래. 이곳에는 2012년 11월까지 넝마공동체가 들어서 있었다. (사진=고상현 기자)
남편을 일찍 떠나보낸 뒤 방황하다 결국 넝마공동체에 터전을 잡았던 한모(72)씨도 지난 5년을 오롯이 혼자서 감당해야 했다. 한씨는 넝마공동체 철거 이후 시민단체에서 마련해준 보호시설이나 지하창고를 전전하다 최근에야 서울 송파구 잠실동 한 쪽방을 잡았다.
그는 "넝마공동체에 있을 때 비록 사는 환경은 열악했지만 식구들이랑 밥도 해 먹고 웃고 떠들면서 지냈다"며 "혼자인 지금, 언니들과 함께 요리해서 나눠 먹었던 따뜻한 밥이 그립다"고 했다.
이재영씨(사진=고상현 기자)
◇ "따뜻한 된장국 한그릇이 그리워"노숙인 쉼터를 거쳐 지난 2월 서울 용산구 동자동 쪽방촌으로 거처를 옮긴 이재영(57)씨도 공동체가 그리운 건 마찬가지다. 혼자 쓸쓸히 찬밥을 뜰 때면 공동체 식구들과 밥상을 마주하고 왁자지껄 떠들던 그때가 사무치게 그립다고 한다.
이씨는 "지금 생각해보면 공동체 식구가 해줬던 따뜻한 된장국 한 그릇이 참 애틋하게 느껴진다. 이제는 누가 봐주는 사람도 없고, 나중에 죽기라도 하면 아무도 안 챙겨줄 것"이라며 아쉬워했다.
공동체를 이루고 함께 생활했던 넝마공동체 구성원들의 지난 2000년 모습(사진=넝마공동체 송경상 전 이사 제공)
실제로 지난 2016년 1월 故 이종호씨가 서울 시내 한 찜질방 수면실에서 숨을 거뒀을 때 그의 곁에는 아무도 없었다. 이씨는 30년 전 아내와 이혼한 뒤 넝마공동체에 살다 철거 이후 찜질방을 전전했었다.
당시 빈소를 다녀왔었던 넝마공동체 주민 김금자씨는 "가족도 없이 넝마공동체에 와서 주민들과 함께 잘 어울리며 지냈는데 공동체 철거 이후 혼자 지내다 그런 변을 당해 너무 안타깝다"며 혀를 찼다.
이처럼 넝마공동체 식구들은 지난 2012년 대책 없이 거리로 내몰려 뿔뿔이 흩어졌다. 5년이 지났지만 마음에 뻥 뚫린 구멍은 외려 더 커져가고 있다.
참여연대 안진걸 협동사무처장은 "넝마공동체는 정부나 지자체가 포기했던 도시 빈민들이 인간답게 살고자 공동체를 이루고 살던 곳"이라며 "방치된 땅이 있다면 지금이라도 서울시가 나서서 이들을 살게 한다면 돈 한 푼 안 들이고 복지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