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3 지방선거를 70여일 앞두고 자유한국당이 잇단 악재에 몸살을 앓고 있다. 서울시장 후보 영입에 연이어 고배를 마시는 등 인재난에 시달리는 가운데 사천(私薦) 논란과 각종 설화(舌禍)로 인해 선거 채비를 갖추기도 전에 당이 흔들리는 모습이다.
특히 홍준표 대표가 자신에 대한 ‘재신임’까지 걸 정도로 자신감을 내비쳤던 PK(부산·경남)지역에서조차 측근들이 불출마 선언을 하거나 비리 혐의로 경찰 수사 선상에 놓이면서 당내 분위기가 심상치 않게 흘러가고 있다.
◇洪 측근, 윤한홍 불출마·조진래 경찰수사
(왼쪽부터) 윤한홍 의원, 조진래 전 경남도 정무부지사. 자료사진
홍 대표의 측근인 윤 의원은 30일 경남지사 선거에 불출마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홍 대표의 또 다른 측근인 조진래 전 경남도 정무부지사는 이날 창원시장 후보로 확정됐지만, 경찰로부터 채용비리 혐의로 소환통보를 받았다.
윤 의원은 별도 입장문에서 “한국당과 경남의 미래를 위한 길을 깊이 고민했다”며 “경남지사 출마 의사를 접고 훌륭한 후보를 뒤에서 돕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한국당은 윤 의원의 출마 고사로 인해 서울시장에 이어 경남지사까지 ‘인재난’에 처한 모양새다.
앞서 한국당은 이날 당사에서 비공개 최고위원회를 열고 창원시장 후보로 홍 대표의 측근 조 전 부지사를 낙점했다. 이에 홍 대표와 앙숙 관계인 안상수 현 창원시장이 강력 반발하면서 사당(私黨)화 논란이 일었다.
조 전 부지사에 대한 전략공천 소식이 알려지자, 안 시장은 전날 창원시청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공천결과에 승복할 수 없다"며 "시민과 당원의 지지도가 극히 낮은 꼴찌 수준의 당 대표 측근을 공천하는 것은 사천(私薦)이자 부정공천"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홍 대표는 자신의 SNS(페이스북)을 통해 "공천에 반발이 없다면 그것은 죽은 정당"이라며 "야당 공천은 여당 때와 달리 당근도 채찍도 없어 힘들지만 당헌·당규 절차대로 진행할 것"이라고 반박했다.
한국당 창원 지역 권리당원들은 홍 대표의 이같은 반응에 "우리는 당원의 권리인 '정당 공직자 추천'을 위해 '경선'을 요구했다"며 "책임당원(의 목소리가) 잡음인가"라고 항의하는 등 공방을 벌였다.
한국당은 조 전 부시장의 공천 발표와 동시에 경찰의 소환 통보를 두고 김기현 울산시장에 이은 ‘정치탄압’이라고 반발했다.
홍 대표는 이날 최고위 직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조 전 부시장이)전국적으로 스타가 됐다”며 “김 시장에 이어서 공천이 확정되는 날 우리당 후보를 또 그렇게(수사) 하면 전국적으로 스타가 될 것”이라고 답했다.
김성태 원내대표도 의원총회에서 "지난번 김 시장의 공천이 발표된 날 울산시청을 압수수색한 울산경찰의 모습을 보고 아연실색했다"며 "오늘 창원시장 후보 공천을 발표한 당일, 우리 시장 후보를 경찰이 소환조사하는 것은 기획수사"라고 경찰을 맹비난했다.
그러나 경찰 측도 별도 입장문을 통해 “조 전 부시장 수사건은 경남도에서 이미 지난 1월 10일 수사를 의뢰했다”며 “지난 20일 조 전 부시장 측 변호인과 사전협의된 사안”이라고 기획수사 의혹을 정면 반박했다.
◇인재난과 사당(私黨)화로 인한 중진반발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 윤창원 기자/자료사진
일각에서는 한국당이 지방선거를 코 앞에 두고 이같은 혼란을 겪는 근본적인 원인이 결국 인재난에서 비롯됐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당 인재영입위원장을 맡고 있는 홍 대표가 '지방선거의 꽃'이라 불리는 서울시장 후보 영입에 연이어 실패하자, 당내 반홍(反洪·반홍준표)계 중진의원들이 반발에 힘이 실리는 게 아니냐는 분석이다.
앞서 홍 대표는 서울시장 후보 영입을 위해 홍정욱 헤럴드 회장과 오세훈 전 서울시장, 이석연 전 법제처장, 김병준 전 국민대 교수 등과 접촉했지만 무산된 바 있다. 그나마 남은 한국당 강세 지역마저도 홍 대표의 측근을 배치시키는 등 사당(私黨)화 논란이 거세지자 반홍계 중진의원 4명은 급기야 지방선거 '조기 선거대책위원회' 구성을 촉구했다.
지난 22일 첫 회동을 했던 이주영·나경원·유기준·정우택 의원 등 중진의원 4명은 지난 29일 의원회관에서 회동을 열고 홍 대표에게 조기선대위 구성과 투명한 공천 등을 요구했다.
김 원내대표는 조 전 부시장에 대한 전략공천을 계기로 당내 불만이 커지자 이날 비공개 의총에서 해명에 나선 것으로 전해졌다. 회의에 참석한 의원들에 따르면 다수의 의원들이 홍 대표의 공천 방식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 셈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중진의원은 “생각보다 의원들 사이에서 사당화에 대한 불만 기류가 강하다는 느낌을 받았다”며 “이런 식으로 과연 선거를 제대로 치를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앞서 열린 비공개 최고위에서 조 전 부시장에 대한 공천 의결에 참석했던 김태흠 최고위원은 ‘만장일치로 의결됐다’는 당의 주장에 이의를 제기하기도 했다. 김 최고위원은 CBS노컷뉴스와 통화에서 “오늘 열린 비공개 최고위에서 만장일치로 공천을 의결했다고 발표했는데 사실이 아니다”라며 “나는 절차적 과정을 문제 삼아 반대했다”고 말했다.
장제원 수석대변인은 비공개 최고위 직후 브리핑에서 “(최고위에서)과정을 면밀히 공개했다면 더 투명한 공천이 될 수 있을거라는 (일부 최고위원들의)의견은 있었지만, 만장일치로 조 전 부지사의 공천을 의결했다”고 말했다. 당 대변인의 발표와 김 최고위원의 주장이 엇갈리는 대목이다.
◇대변인발(發) 논평 참사, ‘취소’ 및 ‘사과’ 오락가락 혼선
자유한국당 장제원 수석대변인. 자료사진
당 대변인들의 공식논평도 연일 구설수에 오르는 것도 당의 위기를 가속화시키고 있다. 장제원 수석대변인은 울산시청에 대한 경찰 수사를 두고 지난 22일 논평에서 '미친개'라는 원색적 표현으로 비난, 일선 경찰의 강한 반발에 부딪혀 결국 사과했다.
지난 28일 홍지만 대변인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세월호 7시간' 관련 검찰수사 발표에 대해 논평에서 "세월호 7시간 의혹에 실체가 없다고 발표한 것으로, 7시간을 두고 난무했던 주장들 가운데 사실로 드러난 것은 아무것도 없다"며 박 전 대통령을 옹호했다.
비난 여론이 거세지자 김 원내대표는 지난 29일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박 전 대통령이 불행한 사고가 났을 때 집무실에 있지 않고 침실에 있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국민들은 납득하고 이해하지 못한다"라고 사과 후 공식논평을 취소했다.
이후 한국당은 "(박 전 대통령은) 어떤 이유로도 활기차게 일해야 할 시간에 침실에 있었단 사실 하나만으로 할 말이 없다"고 새 논평을 냈다.
혼선에 혼선을 거듭하면서 이같은 수습에도 불구하고 한국당은 이날 재차 ‘세월호’ 관련 설화(舌禍)에 휘말렸다.
정유섭 원내부대표는 이날 원내대책회의에 참석해 “(세월호 참사 당시)박 전 대통령이 불성실하게 근무한 것은 잘못한 것이지만, 박 전 대통령 때문에 세월호가 빠지고, 구할 수 있는 사람을 못 구한 게 아니다”라며 “대통령 지시가 도달하기 전에 모든 대응이 끝났고 현장대응이 형편없어 소중한 생명이 속절없이 사라진 것”이라고 박 전 대통령을 감쌌다.
이 같은 발언은 박 전 대통령이 당시 신속하게 구조지시를 내렸다고 하더라도, 구조 결과가 변하지 않았을 것이란 의미로 앞서 논란이 된 홍 대변인의 논평과 궤를 같이 한다.
이에 대해 김 원내대표는 곧바로 이어진 비공개에서 정 원내부대표의 발언이 잘못됐다고 강하게 질책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내 한 고위관계자는 “비판을 하더라도 넘어선 안되는 선이 있다”며 “품격 있는 방식으로도 충분히 강한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는데 대변인들의 자질이 부족해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선거 출마자들에게 도움을 줘도 모자랄 판에 당이 이런 식으로 사고를 치고 있어 어떻게 선거를 치를지 걱정”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