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립 일반고인 서울미술고의 학생 1인당 평균학비부담금은 1100만원으로 특목고나 자사고보다 많은 1위를 기록했다 (2016년 기준)
성(城)이다. 중세시대 영주들은 성을 쌓고 그 안에서 전권을 휘둘렀다. 적지 않은 학교의 장들은 말그대로 '영주'였다. 학교구성원들은 안중에 없었다. 오직 자신과 족벌로 일컬어지는 몇몇만이 존재했다. CBS 노컷뉴스는 대한민국의 교육을 황폐화시키는 사학비리의 '민낯'을 연속 보도한다.[편집자주]
[글 싣는 순서]
①
'파면까지 속수무책'…공익제보 교사의 눈물 ②
학생지도가 성추행 둔갑, 사립학교 치졸한 보복
③
사립 일반고 수업료가 472만원! 서울시교육청은 "…"④
교육부, '비리 사립고 등록금 장사' 길 터줘⑤ 연간 학비 1100만원 일반 사립고, 운동장이 없다
계속
고등학교 연간 학비가 1100만원인 학교에 운동장이 없다. 일반 사립고인 서울미술고는 연간 학비로 따지면 특목고나 자사고보다 많다. 1100만원 중 방과후수업료가 포함되어 있다. 이 학교 2018년 고지서에 입학금 90만원, 연간 수업료 472만원이다.
학교 시설을 살펴보기 위해 지난 25일 서울 관악구 봉천동에 위치한 이곳을 찾았다. 이전에 취재요청을 했지만 응해주지 않아, 제지당할 것을 우려해 한 학부모와 동행해 학교를 둘러보았다.
서울미술고 전경. 학교운동장이 없고 농구장만 있다. 특목고 신청을 했지만 시설부족으로 거부되었다. (사진=김영태 기자)
건물 2개 동에 농구코트가 설치된 마당이 전부였다. 운동장이라 할 수 없고, 그야말로 농구장보다 약간 넓은 공간이었다. 재학생은 한 학년에 5개반 200명, 전체 600명이다. 4~5층 건물에 1개 층마다 수세식 변기 3개를 갖춘 화장실이 있는데, 쉬는 시간에 학생들이 제대로 용변을 볼 수 있을까 의문이 들었다. 졸업생에게 물어보니 1층에 변기 6개가 있는 큰 화장실을 주로 이용한다고 했다.
운동장이 없는 것은 서울미술고가 특목고 지정신청을 했을 때 주요 결격 사유였다. 2006년 특목고 지정신청을 했다가 거부되자 지정처분취소송을 제기했으나 학교시설 부족 등의 이유로 패소했다.
그 후 2010년 자율고등학교(자사고 포함) 규정이 신설되었지만, 서울미술고는 자사고 지정신청도 하지 못했다.
일반고인 서울미술고는 2002년 자율학교에 지정된 이래, 2018년 현재까지 등록금을 일반고보다 세 배나 비싸게 17년 이상 받아왔다.
그러나 CBS 취재 결과 이 학교는 특목고가 아니기 때문에 일반고 수준의 등록금을 받아야 함에도, 불법으로 등록금 부당 징수를 해온 것이다.
교육부는 특목고가 아닌 서울미술고를 특목고인 예술계열고와 함께 자율학교로 지정했고, 서울미술고의 등록금 자율징수권을 위법하게 부여했다. 서울시교육청은 서울미술고가 특목고가 아닌 사실을 알면서도, 17년 동안 이 학교의 등록금 부당 징수를 묵인했다.
서울미술고는 1999년부터 최근까지 각종 비리를 반복해 저질러 왔다.
1999년 실기 지도비 누락과 강사료 부풀리기 수법으로 16억원의 불법 자금을 조성해 12억원을 유용한 혐의로 검찰에 고발됐다.
2014년 자율학교 운영평가에서는 서울미술고가 운동장을 갖추지 못해 특목고 지정을 지 못한 상태임을 재확인하면서, '방과후학교 수강료 책정 및 운영방법에 대한 전면 개선'이 필요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2017년 서울시교육청 감사에서 방과후강사료 4천2백만원 부당 편취 등 학교 예산 10억8천만원을 부당하게 집행해 회수 조치를 받았다.
교육부와 서울시교육청은 1999년 자율학교 시범운영 학교 지정 이래 3~5년 단위로 서울미술고에 대해 4번에 걸쳐 자율학교 재지정을 하게 되는데, 중대한 하자가 있음에도 이를 통과시켜준 것이다.
자율학교 관리 지침에는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경우 지정을 해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서울미술고 학부모들은 지난해 감사 때 거액의 교비 횡령 비리가 드러나자 부당이득금 반환 소송을 진행 중이다.
지난해 11월 15일 소장을 제출했고, 학부모 226명이 참여했다. 첫 재판은 4월 6일 열린다.
부당이득금반환 소송을 맡은 법무법인 자연의 배영근 변호사는 "서울미술고가 일반고이면서 특목나 자사고 수준으로 징수하는 것은 법적 근거가 없어 반환 소송을 추진하게 되었다"고 밝혔다.
학부모들은 학비가 비싼 것에 비해 수업의 질이 떨어진 데 화가 났고, 방과후수업료를 반환 받고서 더욱 분노했다.
졸업생 학부모 A씨는 "작년 말 통장에 실기지도비 2014, 2015년이라고 찍혀 30만원 가량이 반환되었다. 많이 돌려받은 학부모는 3년간 140만원에 이른다"며 "공돈이 생겨 기분이 좋다기보다는 학교에서 이렇게 장난을 쳤구나 생각이 들어 너무 화가 났다"고 말했다.
A씨는 이어 "나 한 사람이 이럴진대 매년 수백명의 학생들에게, 20년 넘게 학교에서 학비를 착복했다면 엄청난 규모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학생들을 가르치는 학교에서 이런 일을 저지른다는 걸 묵과할 수 없어 소송에 나섰다"고 했다.
조소실의 플라스틱 의자들. 공간이 비좁아 자리를 적게 차지하는 플라스틱 의자를 사용하고 있다.학생들은 장시간 작업으로 허리 통증을 호소하고 있다.(사진=김영태 기자)
학부모 B씨는 "조소실 의자가 포장마차용 플라스틱 의자이다. 몇 시간동안 작업하려면 나무의자나 등받이 의자여야 하는데, 공간이 좁다보니 플라스틱 의자를 쓴다. 아이들이 엉덩이와 허리가 아프다고 했다. 공간이 좁아 여름에 인근 교직원 주차장에서 조소작업을 하는 것도 봤다. 한여름에도 찰흙이 마른다며 에어컨도 사용하지 않는다. 먼지가 날리는데 환기도 되지 않았다"고 한탄했다.
학부모 C씨는 "요즘 이젤은 높이 조절이 가능하고 가벼운데, 조절 구멍 1~2개만 있는 구식 이젤을 쓴다. 요즘 실기실 작업용 테이블은 높낮이 조절이나 경사도 조절이 가능한데, 12인용 나무테이블을 20년 넘게 쓰고 있다"고 했다.
학부모 D씨는 "특목고 아니라 일반고라는 사실을 대입 원서를 쓰면서 알게 되었다"며 "아이 담임선생님이 1년 만에 그만두고 선생님들이 너무 자주 바뀌었다. 등록금은 너무 비싼 것에 비해 교육의 질은 오히려 학원보다 못했다"고 말했다.
또 "실기실이 부족해 아이가 2학년 때 3학년 언니들과 실기 수업을 섞어놔 중간에 커튼을 치고 수업이 진행되었다"고 증언했다.
2017년 서울미술고 감사에서 학교비리를 공익제보한 정미현 교사는 "특성화고인 예일디자인고는 학비가 무료인데, 서울미술고와 교과과정이 똑같다는 것을 확인했다"며 "사립 일반고인 서울미술고가 일반고보다 세 배나 비싼 수업료를 받는 건 말이 안 된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해 서울시교육청은 "서울미술고의 신입생 입학전형 요강 승인시 수업료와 입학금 자율 결정권을 승인하고 있다"며 "다만 등록금 자율결정학교에 대해서 재정결함보조금을 지원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서울시교육청은 정부 예산 아끼려다 비리사학의 배만 불려준 꼴이 되고 말았다. 결국 피해는 학생과 학부모에게 돌아갔다.
사립학교에 대한 비리를 적발해 감사 처분 요구를 이행하지 않아도 처분권이 없기 때문에 제재수단이 없다는 게 그간 교육청의 하소연이었다.
그러나 서울미술고에 대한 자율학교 지정을 해제하면 깔끔하게 해결될 문제이다. 하지만, 서울시교육청은 정작 기회가 왔을 때 뒷짐만 지고 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기가 막힙니다. 비리 저지른 이사장과 교장은 건재하고, 내부고발자는 파면당하고"라는 제목의 '서울미술고 학교 인가 취소'를 요구하는 청원에 3월 초부터 560명이 동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