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숨진 A(47)씨 장례식장 찾은 한국GM 군산공장 근로자들. (사진=김민성 기자)
26일 오전 전북 군산시 한 장례식장. 때아닌 안개에 미세먼지까지 엉켜 한치 앞이 보이지 않았다.
이따금씩 차들이 안개를 뚫고 주차장 안으로 들어섰다. 스파크, 임팔라 등 GM차량에서 내리는 이들은 어김 없이 한국GM 군산공장 근로자들이었다.
혼탁한 시야에도 '생존권 사수'. '고용안정 쟁취', '군산공장 폐쇄 철회' 등 투쟁 조끼 등판에 새겨진 문구만큼은 선명했다.
한국GM 생산직 근로자 A(47)씨는 지난 24일 오후 4시 55분쯤 군산시 미룡동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아내는 2년 전 긴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났고, 슬하엔 유학중인 외동딸이 있었다.
그는 군산공장 근로자 1500여 명 중 희망퇴직을 신청한 1100여 명 중 한 명이었다.
침통한 분위기 속에 조문을 마친 동료들은 삼삼오오 모여 담배를 뻑뻑 피웠다. 질문을 던져봐도 손을 홰홰 저을 뿐 약속이나 한 듯 대부분 말이 없었다.
어렵게 말문을 연 동료 근로자 B(47)씨는 "나 또한 희망퇴직자에, 고인과 동갑내기인 한 가정의 가장이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B씨는 "회사 생활이 안 좋은 상황에서 고인이 그 같은 결정을 했기 때문에 회사도 (A씨의 죽음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어 "가족들과 서로 위로를 나누며 버티고 있다"며 "자녀가 '아빠도 그렇게 하면 안 돼'라고 하지만 한편으론 고인이 돌아가신 게 이해가 간다"고 털어놨다.
한국GM 군산공장 정문. (사진=김민성 기자)
벌써 두 번째 죽음이다.
앞서 지난 7일 한국GM 부평공장 근로자 C(55)씨가 인천의 한 공원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C씨도 희망퇴직 신청자였다. 부인과 두 아들을 남기고 세상을 떠난 그는 숨지기 전 미래에 대한 고민을 주변에 털어놓은 것으로 전해졌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조심스럽게 '쌍용차 사태'를 떠올리는 한국GM 근로자들도 있었다. 지난 2009년 쌍용차 구조조정 과정에서는 희망퇴직자와 해직자, 가족 등 29명이 자살과 질병 등의 이유로 잇따라 세상을 떠났다.
또 다른 한국GM 군산공장 근로자 오모(52)씨는 "두 번째 부고 문자를 받자마자 쌍용차 생각이 절로 났다"며 "희망퇴직이라지만 막상 나와보니 희망도 없고, 나도 당장 뭘 해야 할지 몰라 답답하다"고 토로했다.
노조도 일련의 사태를 예의 주시하고 있다.
한국금속노조 한국GM지부 한 관계자는 "투쟁 대오를 이뤄 싸우는 사람들은 아무래도 괜찮지만 희망퇴직 후 집에 홀로 있는 사람들은 연락이 잘 닿지 않아 관리가 쉽지 않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동료들이 혼자서 술을 마시다가 욱하는 심정으로 극단적인 선택을 할까 봐 우려스럽다"며 "소식지를 내거나 노조 대의원들이 수시로 전화를 돌리는 등 여러 방법을 동원해 외로운 죽음이 더는 생기지 않도록 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