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싹 튼 '미투', 고단했던 뿌리 내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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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투'의 선구자들과 그 조력자들에 관한 이야기

3월 8일 오후 서울 중구 명동 YWCA회관 앞에서 한국YWCA연합회원들이 '3.8 여성의 날 기념 미투운동 지지와 성폭력 근절을 위한 손 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이한형 기자)

 


대한민국 전 분야에서 미투 운동(#MeToo)이 이어지고 있다.

피해자들은 더 이상 숨지 않고 가해자를 향해 과거 성범죄의 만행을 밝히고 있다.

사실 성범죄가 지위와 권위로 묵인했던 한국 사회에서 미투 운동은 쉽지 않았다. 미투를 외친 사람들은 2차 피해, 가해자와 소송 문제 등으로 힘들어 하고 있다. 하지만 피해자들은 먼저 미투를 고백한 사람들의 용기과 대중의 지지에 힘입어 계속 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리고 지금보다 앞서 선구자처럼 미투를 외치고, 이들을 도왔던 이들이 있었다.

◇ 미투의 시작 '권양'

1986년 7월 17일 경향신문 7면에 보도된 권인숙 양 성고문 사건. (사진=경향신문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캡처)

 


1986년 5월 3일 인천 민주항쟁에 참여했던 권인숙(당시 22살)씨는 위장 취업 혐의로 갑자기 입건됐다. 당시 부천경찰서 소속 문귀동 경장은 권씨를 조사·고문하면서 성고문을 했고 권씨는 이 사건을 폭로하고 문 경장을 고소했다.

하지만 문 경장은 무혐의로 풀려나고 권 씨는 공문서위조 혐의로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이에 조영래, 박원순 등 약 200명의 변호인단은 공동대책위원회를 구성해 법원에 재정신청 했고 반대 집회를 개최해 사건을 세상에 알렸다.

이 고발은 군사정부 시절 성범죄 문제를 감추고만 있던 한국사회에서 공개적으로 문제를 제기한 사건으로 기록 됐다. 이후 권양 사건은 한국여성단체연합을 결성하는 계기가 된다.

변호인단의 노력으로 법원은 1988년 2월 재정신청을 받아들였고 문 경장은 사건 발생 3년여 만에 징역 5년을 선고받았다. 당시 도움을 받았던 권인숙은 현재 법무부 성범죄 대책위원회 위원장이 되어 성폭력 피해자들의 조력자로서 도움에 앞장서고 있다.

◇ 직장 내 성희롱 고발 '우 조교'

서울대 우 조교 사건 당시 보도된 신문 기사 목록. (사진=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캡처)

 


1992년 5월부터 서울대학교 화학과 실험실에서 1년간 유급계약직으로 근무하던 우 모 조교는 관리책임자인 신 모 교수에게 지속적해서 괴롭힘을 당했다. 신 교수는 우 조교에게 업무상 불필요한 신체접촉을 했고 성희롱 발언을 계속했다.

마음고생 끝에 우 조교가 거부 의사를 밝히자 신 교수는 비우호적인 태도를 보였고 재임용 추천마저 되지 않았다. 우 조교는 1993년 8월 대자보를 통해 성희롱을 폭로하여 공론화를 시켰지만 오히려 신 교수에게 명예훼손 명목으로 고소를 당했다.

그러자 서울대 총학생회, 여성문제 동아리협회, 대학원자치협의회 등이 진상조사위원회를 구성했고 그해 9월 신 교수를 고소했다. 이후 한국성폭력상담소 최영애 소장을 대표로 한국여성민우회, 한국여성의전화, 대학원자치협의회 등이 참여한 '서울대 조교 성희롱 사건 공동대책위원회'가 구성돼 소송에 참여했다.

우 조교 변호인단에는 박원순, 이종걸, 최은순 변호사가 합류했고 6년간의 법정 투쟁 끝에 신 교수에게 500만 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이 내려졌다.

판결이 나오자 당시 대책위는 "이번 판결은 우리 사회에 숨겨져 있던 성희롱을 사회적으로 부각하는데 기폭제가 됐을 뿐만 아니라 성희롱을 불법 행위로 인정해 법적인 규제가 가능하게 했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우 조교 사건은 우리 사회에 성희롱의 개념을 세우고, 사회적 관심과 공감을 끌어내는 데 큰 역할을 해냈다.

◇ 담임 선생님의 지독한 투쟁 '은지 사건'

2009년 9월 30일 포털사이트 다음 아고라에 올라와 있는 글. (사진=다음 아고라 캡처)

 


은지 사건은 '제2의 나영이 사건'이라고도 불렸던 장애아동 성폭행 사건이다. 은지 사건은 경북 포항시의 한 시골에 사는 지적장애 2급인 은지(가명ㆍ당시 11세)양이 동네 어른과 청소년에게 2006년부터 2년간 성폭행을 당한 사건이다.

2008년에 사건 소식을 접한 초등학교 담임 김태선 교사는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경찰서, 각종 성문제 상담소, 전교조, 장애인 부모 연대 등에 도움을 청했고 방송에도 출연해 사건을 알리려 노력했다. 당시 인터넷 포털 사이트 다음 아고라 게시판에도 수만 명이 서명하며 제대로 된 수사를 요구했다. 하지만 은지 사건의 가해자 중 모녀를 동시에 성폭행한 단 한 명만이 구속되며 수사는 종결됐다.

김 교사는 제대로 된 조치를 하지 않는 교육계에 대항했다. 문제교사라는 낙인 속에서도 청와대에 민원을 올리고, 국회 찾아가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법률이 미흡함 토로했다. 김 교사는 은지 문제가 끝날 때까지 사회적 약자의 환경개선을 위해 활동했다.

최근 노컷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김 교사는 "당시 성폭력 피해자를 위한 시스템이 마련되어 있다는 기관 어느 한 곳도 제대로 된 조치를 취하지 않았었다"며 불합리했던 상황을 회상했다.

김 교사는 "은지 사건 때 문제 교사라는 낙인을 받으면서까지 도움을 주기 위해 노력했지만 이후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다"고 말을 했다. 이어 그녀는 "다시 피해자들이 어렵게 용기를 낸 최근의 미투 운동마저 제대로 조사가 진행되고 올바른 사과와 관련자 처벌이 이루어질지 의문스럽다"며 여전히 피해자 입장에서 걱정하고 있었다.

◇ 전 국민을 분노하게 만든 '도가니 사건'

2007년 10월 25일 열린 장애학생 서폭력 엄중 처벌 촛불문화제 (사진=인화학교 성폭력 대책위 카페 캡처)

 


도가니 사건은 2000년부터 2004년까지 특수학교인 광주인화학교에서 교장 등의 교직원이 학생에게 성폭력을 행사한 사건이다. 광주인화학교 성범죄 사건은 2011년 9월 '도가니'라는 제목의 영화로 개봉돼 '도가니 사건'으로 불린다.

도가니 사건은 2005년 교내 교직원 최사문 씨가 장애인 성폭력 상담소에 고발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이후 시민단체들은 성폭력 대책위원회를 구성하여 피해 학생들을 보조하였고 11월 PD 수첩에 '은폐된 진실, 특수학교 성폭력 사건 고발'의 제목으로 방영되었다. 방송 이후 고발된 교직원 두 명은 성폭행 혐의로 구속됐다.

시민 단체들은 재단 임원 해임을 촉구하는 천막농성과 함께 학생들은 등교 거부와 교육청 앞 천막 수업 등으로 징계를 요구했다. 뒤늦게 국가인권위원회까지 나서 조사해 가해자 6명을 추가로 고발했다. 하지만 교직원 대부분은 가벼운 처벌로 수사가 끝났다.

당시 신문 귀퉁이에 조그맣게 광주인화학교 가해자의 석방 순간을 스케치한 기사가 보도되었고 그 기사를 본 공지영 작가는 2009년 이를 소재로 소설 '도가니'를 출간한다. 그 후 소설을 읽은 배우 공유는 이를 영화로 만들 것을 제안했고 마침내 2011년 도가니로 개봉됐다.

 


실화를 소재로 한 도가니는 약 466만여 명 관객 동원을 기록하며 큰 공감을 만들었고 시민들이 나서서 광주인화학교의 추가 및 재수사를 요구하게 된다. 그 결과 '도가니법'이라 불리는 '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개정안'이 통과돼 큰 의미를 남겼다.

사건을 처음 폭로한 최 교사도 우여곡절을 겪었다. 최 교사는 학교 내에서 진실규명작업을 계속 벌이다 학교 측으로부터 업무 방해, 품위 유지 위반 등으로 2007년 9월 파면 됐다. 이후 최 교사는 소청 심사와 행정소송을 거쳐 2008년 6월 복직했다. 최 교사는 2011년 한 언론 인터뷰에서 "청각장애 학생들을 지켜내지 못한 교사로서 정말 사죄드린다"고 말하며 여전히 아이들 편에 서 있었다.

그 외에도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우리가 모르고 있었던 곳에서는 끊임없이 미투 운동이 일어나고 있었고 마침내 2018년 서지현 검사가 방송을 통해 미투를 외쳤다.

그러자 현직 여검사의 용기에 고통 속에 숨어서만 지내던 피해자들도 용기를 내기 시작했고 대한민국 사회가 점점 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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