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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역배우 자매 母 "성폭력 가해자 12명, 떵떵대며 살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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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靑 청원' 단역배우 자매 사망 사건
- 2004년 성폭행 당한후 심신미약
- "성기 그려봐" 경찰 2차 가해까지
- 고소 취하로 법적처벌 어려워
- 1인시위 계속…"청원 참여해주세요"

■ 방송 :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FM 98.1 (07:30~09:00)
■ 진행 : 김현정 앵커
■ 대담 : 유족 장연록 씨

지난 2009년 드라마 기획사 관계자 12명으로부터 성폭행을 당한 단역배우. 스스로 목숨을 끊고 뒤이어 동생까지 목숨을 끊은 사건이 있었죠. 단역배우 자매 사망사건. 저희가 지난주에 탐정 손수호 코너에서 다루면서 많은 청취자들이 분노의 문자를 보내주셨습니다. 특히나 많은 분들이 이해할 수 없다고 했던 부분은 경찰이 어떻게 그렇게까지 부실한 수사를 했는가. 또 그 가해자들은 어떻게 드라마 현장에서 여전히 잘 지낼 수가 있는가, 이 부분이었습니다. 저희에게 이 사건을 좀 더 자세히 다뤄달라는 요청이 많아서요. 저희가 오늘 유족으로부터 그 사연을 직접 들어보려고 합니다. 사망한 자매의 어머니세요. 장연록 씨 연결을 해 보죠. 어머님, 나와계세요.

◆ 어머니> 안녕하세요.

◇ 김현정> 10년이 흘렀네요, 벌써.

◆ 어머니> 네.

◇ 김현정> 10년이 흐른 뒤에서야 이 사건이 이제 알려지기 시작했는데 어떻게 지내셨어요, 그동안은.

◆ 어머니> 엄마니까요. 원수 갚고 20년 후에 만나자라는 우리 딸들의 유언을 되새기며 살았습니다.

◇ 김현정> 유서가 있었어요?

◆ 어머니> '죽는 길만이 사는 길이다.' 라고. 또 욕을 표현한 것이 많습니다. 8월 28일 18층, 18시 18분 18초. 지갑 속에도 돈이 8000원이 있었습니다.

◇ 김현정> '죽는 길만이 사는 길이다' 라는 말이 결국은 살 방법이 아무 것도 안 보인다는 의미로도 들리네요. 그 당시를 떠올리시는 일이 쉬운 일은 아니겠습니다마는 그래도 우리가 청취자들을 위해서 기억을 거슬러올라가 보겠습니다. 2004년 7월까지 갑니다. 대학원을 다니던 큰 딸이 동생 추천으로 드라마 엑스트라 아르바이트를 하게 된 거죠.

(사진=자료사진)

 

◆ 어머니> 네.

◇ 김현정> 그래서 엑스트라 아르바이트를 하나 보다, 단역배우 아르바이트를 하나 보다 하고 있었는데 왠지 이상한 행동을 하기 시작했다고요.

◆ 어머니> 네, 제정신이 아니었어요. 말 그대로 미쳤더라고요. 온 집 안을 왔다 갔다 하면서 누군가를 죽여야 된다고 가해자 한 사람의 이름을 되뇌이면서, 온 집 안을 부수고.

◇ 김현정> 그전까지는 이상 행동을 전혀 안 하던 딸, 정상적인 딸이었습니까?

◆ 어머니> 그 전까지는 조용하고 말 그대로 조신하고 얌전했습니다. 집, 학교, 성당 이렇게. 아주 착한 언니, 착한 큰딸이었어요, 효녀고.

◇ 김현정> 성폭행을 당한 이후부터 완전 180도 다른 딸이 된 거예요?

◆ 어머니> 네.

◇ 김현정> 잡고 좀 물어보시죠. '너 갑자기 왜 이러니?' 라고. 그런데 말 안 하던가요?

◆ 어머니> 물어볼 수 없고 엄마한테도 욕하고 동생도 죽인다고 해서 무서워서 물어볼 수가 없었습니다.

◇ 김현정> 그 정도 상황. 그래서 병원 가서 상담을 받고 치료받는 과정에서 털어놓은 거예요?

◆ 어머니> 네.

◇ 김현정> 그러고 나서 이제 알게 됐습니다. 단역배우들을 관리하는 기획사의 반장, 보조반장 이런 사람 12명이 3개월 동안 성폭행, 성추행을 했다는 걸 알게 되신 거죠.

◆ 어머니> 네. "엄마, 나 성폭행 당한 것 같아요." 라고. 처음 성폭행 가해자가 서울 가서 만나자고 하니까 얘는 조직생활이라 생각하고 나갔대요. 나가서 한 모금 마신 술에 너무 빙빙 돌아서 정신을 잃다시피 한 건데 급습을 한 거죠.

◇ 김현정> 그런데 그 후로도 12명에게 지금 성폭행과 성추행을 당한 게 이해가 안 가요,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는지.

◆ 어머니> 바로 반항을 하니 라이터불을 켜면서 칼을 들이밀면서.

◇ 김현정> 그래서 첫날 그렇게 성폭행을 당하고도 신고를 못 하고. 그런데 그 후로도 이 사람이 자기가 성폭행을 하고 또 다른 사람들한테 우리 딸을 소개해 줬다는 거잖아요.

◆ 어머니> 가해자들이 전부 다 우리 집을 압니다. 전부 다 집 앞에 와서 전화하면 순식간에 나가버려요. 제가 말릴 수도 없고, 순식간에 나가서 3일이고 4일이고 안 들어올 적이 있고. 연락이 안 되는 이유가 나중에 보니까 핸드폰을 일단 뺏었기 때문에 집에 연락을 할 수 없었다고 얘기합니다.

◇ 김현정> 아니, 그걸 왜 거절하지 못하고 다 나갔을까?

◆ 어머니> 거절 못합니다. 일단은 동생을 팔아넘긴다, 불지른다, 엄마를 죽인다, 이런 식으로(협박을 하니까).

◇ 김현정> 그렇게 해서 이런 일들이 여러 번 있고 나서 어머님이 정신과로 보낸 거고 거기서 이 사건들이 다 드러난 거고 경찰의 수사가 이루어진 건데 그러면 이제 경찰 수사까지 갔으니까 모든 전모가 밝혀지고 죗값 받고 이렇게 될 줄 알았는데.

◆ 어머니> 네. 도움받을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고소를 했기 때문에 죄인은 엄마입니다. 고소를 안 했으면 제 딸들이 죽지 않았고요.

◇ 김현정>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 어머니> 고소를 했기 때문에 다 죽었습니다. 성폭행 가해자들이 12명이지만 죽게 만든 거는 경찰입니다.

◇ 김현정> 왜요?

◆ 어머니> 조사 과정에서 칸막이가 첫째로 없었어요. 그다음에 (한 경찰이) 가해자 성기를 색깔, 둘레, 사이즈까지 정확하게 그려오라고 A4 용지하고 자를 줬어요.

◇ 김현정> 그걸 그림으로 그려라? 거기 앉아서.

◆ 어머니> 네.

◇ 김현정> 그게 무슨, 왜 필요하다고 합니까, 그게?

◆ 어머니> 저는 지금 훗날 생각해 보니 처음에 맡은 형사가 "이건 사건이 안 되는데 어머니가 너무 여러 번 진정서를 넣어서 하니 기계적으로라도 하겠다." 라고 말했어요. 진상을 파헤치려고 단 한마디도 해 본 적이 없습니다.

◇ 김현정> 딸이 경찰 조사 받던 기간 너무 힘든 나머지 아예 경찰 수사 차도로 뛰어들고 이런 행동도 했었다고요?

◆ 어머니> 그날이 강간범 보고 (성폭행 당하던 상황을) 자세하게 묘사하라고 하면서 둘이 서로 웃는 나머지 제가 중단을 하고 데리고 나왔는데 그날 8차선 도로로 뛰어들어서.

◇ 김현정> 성행위를 묘사하라 하면서 킥킥대니까 어머님이 이건 안 되겠다 싶어서 데리고 나오셨어요. 그랬더니 경찰서 차도로 뛰어든 거예요, 따님이?

◆ 어머니> 이미 우리 애가 울고 웃고 제정신이 아니었어요.

◇ 김현정> 결국 그런 조사 과정을 견디지 못하고 2년 만에 2006년에 고소를 취하하죠. 그런데 그게 또 끝이 아니었어요. 딸이 2009년에 스스로 목숨을 끊습니다. 그 3년 동안은 어떻게 지낸 거예요?

◆ 어머니> 고소를 취하하고는 참 편안해하더군요. 그래서 다 나았나 보다 하고 우리 삼모녀는 아주 편안하게 살았습니다. 정말 또 얼마 동안은 옛날처럼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 김현정> 그런데?

◆ 어머니> 그런데 어떻게 살겠습니까. 생각하면 할수록 분하겠죠. 어떻게 살겠습니까? 너무 억울하고 너무 상처받는 얘기들을 경찰들이 많이 했기 때문에. 그래서 분해서 간 것 같아요.

◇ 김현정> 그러고 나서 6일 만에 언니를 따라서 동생도 목숨을 끊었어요.

◆ 어머니> 네, 가더라고요.

◇ 김현정> 아니, 동생마저 왜요?

◆ 어머니> 너무 괴로우니까.

◇ 김현정> 자기가 소개를 해 줬다는 것 때문에?

◆ 어머니> 네. 그리고 너무 똑똑한 언니가 이 세상의 전부니까. 전부잖아요. 엄마보다 더 가까운 전부예요.

◇ 김현정> 그 정도 사이.

◆ 어머니> 엄마보다 절대적인 존재였다고 생각했어요. (언니를) 따라가더라고요. 엄마, 엄마니까 원수 갚고 20년 후에 우리 만나자고. 따라가더라고요.

◇ 김현정> 일주일 사이에 두 딸이 다 그렇게 세상을 떠나고 남편도 지병인 뇌출혈이 심해지면서 두 달 만에 세상 떠나시고. 그러니까 불과 몇 달 만에 가족 3명이 다 하늘나라로 간 거네요.

◆ 어머니> 네 사람이 있다가 세 사람이 죽었습니다.

◇ 김현정> 어떻게 지내셨어요, 어머니?

◆ 어머니> 울면서 지내다가 자살 유가족 모임 찾아서 헤매다가. 자살 시도를 했는데 살았습니다.

◇ 김현정> 어머님도 그러셨어요?

◆ 어머니> 네, 지금은 거의 실명 위기입니다. 너무 울어서. 그래도 눈물이 마르지를 않네요.

◇ 김현정> 마음이 참 아픈데 형사고소를 취하를 한 것이 있기 때문에 재고소를 할 수는 없답니다, 법적으로. 남은 길은 가해자 12명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 그러니까 민사소송이 있지만 이것도 공소시효가 만료됐기 때문에 결국은 무죄 판결이 났고요. 할 수 없이 1인 시위하는 방법을 택하셨던 거죠?

◆ 어머니> 네.

◇ 김현정> 피켓 들고 유인물 나눠주고. 그런데 지금 그 가해자 12명은 잘 살고 있다, 이게 무슨 말입니까?

◆ 어머니> 아주 여의도 업계에서 수장 노릇하면서 떵떵거리면서 삽니다.

◇ 김현정> 단역 배우들 관리하는 그 역할을 똑같은 역할을 그대로 하면서?

◆ 어머니> 네. 몇몇 기획사에서 일하고. 아예 한 사람은 기획사 대표입니다.

◇ 김현정> 그들이 법적으로는 고소가 취하되는 바람에 아무런 죗값을 안 치렀지만 개인적으로는 도의적으로 미안하다라든지 사과하고 반성하고 이런 거 전혀 없었어요?

◆ 어머니> 없습니다.

◇ 김현정> 전혀?

◆ 어머니> 인면수심입니다. 없습니다.

 


◇ 김현정> 그렇군요. 지금 이 사건이 재조명되면서 많은 분들이 청와대에 국민청원까지 하고 있습니다. 아침에 보니까 9만 명이 넘게 서명을 하셨던데. 법적으로는 아무리 국민청원이 올라가고 어떻게 하든 간에 다시 처리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고 그래요. 그건 어머니, 알고 계세요?

◆ 어머니> 없어도 좋습니다. 없어도 좋은 이유가 이렇게 사람들이 국민 여러분들이 이 억울한 죽음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만으로도 저는 감사합니다.

◇ 김현정> 세상이 좀 알아라도 달라 해서 지금도 1인 시위 매일같이 그렇게 나가서 피켓 들고 하시는 거예요. 세상이 뭘 좀 알았으면 좋겠습니까? 무슨 말씀하고 싶으신 거예요?

◆ 어머니> 청원은 20만 명 일단 될 때까지 좀 도와달라고요. 그리고 우리 애들은 경찰이 죽였습니다. 경찰이 아니었으면 지금 제 옆에 두 딸들이 살고 있습니다, 여러분. 이렇게 외치고 싶습니다. 그리고 꼭 이 성폭행 가해자들을 꼭 써야지만, 일을 줘야지만 드라마가 완성이 된답니까? 제발 이 사람들을 여의도 업계에서 내쳐주십시오. 이렇게 외치고 싶습니다.

◇ 김현정> 지금 마음이 너무 아픈데 일단 진정을 하시고. 딸들, 예쁜 딸들 모습이 아직도 눈 감으면 아른아른하시겠어요.

◆ 어머니> 아니요. 눈 떠도 보입니다. 옆에 있는 것만 같고 어제 일 같습니다.

◇ 김현정> 눈을 떠도 생각나고 눈을 감아도 생각나고 계속 딸들 생각만.

◆ 어머니> 사람들은 '잊어라, 멀리 왔다, 10년 전 일이다' 이렇게 얘기하는데 저는 아닙니다. 엄마이기 때문에 날마다 후벼파는 가슴을 쥐어뜯으며 그리워하고 있습니다. 너무 그립습니다. 1초만 봤으면 소원이 없겠습니다. 무슨 10년이요. 절대 아닙니다. 잊을 수가 없습니다. 너무 그립습니다. 10년이 무슨 상관이에요. 죽기 1초 전까지 저는 그리울 것 같아요. 세월하고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 김현정> 어머니, 조금 진정하시고 어머니가 힘내셔야겠어요. 제가 볼 때는 어머님도 지금 상황이 아주 위태위태하신 것 같습니다. 아주 어려우신 상황인 것 같은데 힘내시고 이 사건 세상에 알리기 위해서 지금까지 버티신 거잖아요.

◆ 어머니> 네.

◇ 김현정> 정말 세상이 다 알 때까지 지치지 마시고요. 꿋꿋하게 살아가시기를 기원드리겠습니다. 고맙습니다.

◆ 어머니> 고맙습니다.

◇ 김현정> 단역배우 자매 사망사건. 저희가 탐정 시간에 다루면서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갖고 계시는데요. 그 어머님, 남아 있는 유일한 유가족 장연록 씨를 만나봤습니다.
(속기:한국스마트속기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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