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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아는 영화감독, 성폭력도 '연애였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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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계 성폭력 실태조사, 女 61.5% 피해 경험…"동료 아닌 성적 대상"

12일 오후 서울 태평로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한국영화성평등센터 든든 개소식 및 성폭력 실태조사 토론회' 참석자들이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황진환 기자)

 

"모든 건 권력관계에서 발생하는 문제라고 생각해요. (…) 소위 너무나 유명한, 누구나 다 아는 감독님들이 현장에도 있고 학교에서 교육도 하고 있다면 더더욱 권력의 우위에 설 수 있는 위치에서 그런 것(성폭력)을 범하고 그런 것들이 문제가 됐을 때 '난 연애였다'고 쉽게 될 수 있는 구조…."

지난해 하반기에 이뤄진 영화계 성폭력·성희롱 실태조사 심층면접에 참여한, 성폭력 피해를 겪은 한 여성 스태프의 증언이다.

이 실태조사 분석을 주도한 중앙대 사회학과 이나영 교수는 12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영화계 성평등 환경 조성을 위한 성폭력·성희롱 실태조사 결과발표 토론회'에서 아래와 같이 분석했다.

"여성 스태프는 동료가 아닌 성적으로 대상화한 존재이자 연애 대상으로 인식되기 때문에 '연애'라는 이름으로 성폭력을 많이 경험하며, 이후 악의적인 소문에 시달리기도 한다."

배우들은 성폭력 피해에 특히 취약했다. 남성들이 비즈니스 명목으로 갖는 술자리에 동석을 요구 받는 식이다. 연기를 빌미로 촬영 전 합의되지 않은 노출신을 요구받거나 직접적인 성추행은 물론 계약을 빌미로 사적 만남을 요구받는 일도 잦았다.

이나영 교수는 "배우는 대중에게 알려진 직업군이라는 특수성으로 인해, 피해자가 피해 사실을 공론화했을 때 오히려 2차 피해에 가혹하게 시달린다"며 "자신에게 쏟아지는 온갖 비난으로 피해자는 더욱 침묵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이 자리에서는 지난해 벌인 설문조사를 통해 얻은 영화인 749명(여성 62.3%, 남성 35.6%)의 답변을 분석한 결과도 공유됐다.

해당 설문조사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의 46.1%가 성폭력·성희롱 피해를 경험했다. 여성의 피해 비율은 61.5%로 남성(17.2%)보다 무려 44.3%포인트 높았다. 특히 직군별로는 작가(65.4%)와 배우(61%), 고용형태별로는 비정규직(50.6%)의 피해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았다.

이 교수는 "피해 경험은 20, 30대 여성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영화계 성폭력 피해 수치(46.1%)는 전국 단위보다 훨씬 높은 수치"라며 "설문조사가 이뤄진 시기에 문화예술계 성폭력 해시태그 운동이 있었고, 앞서 2015년 강남역 살인사건 이후 (성폭력) 문제를 인식하고 자기 경험을 돌아보는 계기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조심스럽게 추론한다"고 말했다.

◇ "미투 운동 두고 '공작설'? 잡스러운 이론이 세력 얻는 데 큰 우려"

12일 오후 서울 태평로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한국영화성평등센터 든든 개소식 및 성폭력 실태조사 토론회'에 참석한 임순례(오른쪽), 심재명 센터장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황진환 기자)

 

성폭력 피해 유형은 '외모에 대한 성적 비유나 평가·음담패설'(28.2%), '술을 따르거나 옆에 앉도록 강요·원치 않는 술자리 강요'(23.4%), '특정 신체 부위를 쳐다봄'(20.7%), '사적 만남이나 데이트 강요'(18.8%), '원하지 않는 신체 접촉을 하거나 신체 접촉을 하도록 강요'(15.8%) 순이었다.

특히 전체 응답자의 80.9%(여성 84.8%, 남성 73.8%)는 다른 사람이 겪은 피해를 보거나 들은 경험이 있었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응답자의 53.4%가 피해를 '목격'한 경험이 있었는데, 작가(84.6%), 연출(70.7%) 분야에서 그 비율이 높았다. 또한 응답자의 78.4%는 피해를 '들은' 경험이 있었는데, 여성(82.4%), 50대(91.3%), 제작(86.3%), 연출(86.2%), 작가(84.6%), 비정규직(81%)은 그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게 나타났다.

이 교수는 "여성은 남성보다 피해를 감내하거나 공론화하지 않은 채 참고 넘어간다. 공식적인 대응 비율은 남성이 앞도적으로 높다"며 "여성 피해자들은 피해 이후 굉장히 큰 트라우마와 자기 스스로에 대한 혐오와 자책감을 갖고 있었다"고 전했다.

이날 실태조사 결과 발표에 앞서 여성영화인모임, 영화진흥위원회 등이 함께 꾸린 한국 영화산업 내 성평등 환경 조성을 위해 마련된 성평등센터 '든든' 개소식이 열렸다. '든든'은 국내외 성평등 영화정책 연구·정책 제안을 비롯해 영화인의 성폭력 상담·피해자 지원 등을 맡는다.

'든든' 공동센터장을 맡은 명필름 심재명 대표는 "성희롱·성폭력 예방뿐 아니라 교육·홍보활동, 피해자 보호와 지원, 나아가 성평등 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정책을 입안하고 제안할 것을 목표로 한다"며 "궁극적으로 성평등한 한국영화계, 한국 사회가 되기를 희망한다"고 전했다.

공동센터장 임순례 감독은 "그간 지속적이고 끔찍한 성폭력 환경에 노출돼 아무런 말도 없이 영화계를 떠났던 동료 영화인, 피해자분들이 상처를 치유하고 다시 편안한 마음으로 현장에 돌아올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특히 "미투 운동을 두고 일부 거대한 다른 것을 덮기 위한 공작설, 진보 진영을 분열시키려는 것이라는 잡스러운 이론이 세력을 얻어가는 데 대단한 우려를 표한다"며 "이(미투) 물길이 성평등한 사회, 한국 사람 모두가 꿈꾸는 민주 사회로 가는 가장 바람직한 길"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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