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송 :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FM 98.1 (07:30~09:00)
■ 진행 : 김현정 앵커
■ 대담 : 손수호 (변호사, 법무법인 현재 강남사무소)
탐정의 눈으로 사건을 들여다봅니다. 탐정 손수호. 우리 사회 관심을 모으고 있는 사건을 보다 자세히 들여다보는 시간이죠. 탐정 손수호. 오늘도 손수호 변호사 나오셨습니다. 어서 오십시오.
◆ 손수호> 네, 안녕하세요.
◇ 김현정> 공휴일이잖아요, 오늘. 공휴일에는 뭐 하세요? 사무실은 쉬는 날이실 테고.
◆ 손수호> 오늘도 일합니다. 저뿐만 아니라 저희 팀이 다 일하죠.
◇ 김현정> 평생이 일이에요, 손수호 변호사는.
◆ 손수호> 3.1절에는 더 여유롭게 일할 수 있죠.
◇ 김현정> 어쨌든 일.
◆ 손수호> 일 많이 할 때예요, 지금.
◇ 김현정> 저녁이 있는 삶을 좀 누리시기를, 언젠가는 손수호 변호사도.
◆ 손수호> 저녁도 여유 있게 먹습니다, 회사 근처에서.
◇ 김현정> 회사. (웃음) 굉장히 만족하는 삶을 사시네요, 긍정적인 삶.
◆ 손수호> 일거리 많은 걸 감사히 생각해야죠.
◇ 김현정> 정말 부지런한 손 탐정과 함께 합니다. 오늘 3.1절에도 함께하는 탐정 손수호. 오늘 주제를 3.1절과 관련된 걸 가져오셨나 모르겠어요.
◆ 손수호> 네, 그렇습니다. 작년 광복절을 앞두고 문재인 대통령이 이런 약속을 했어요. "독립운동을 하면 삼대가 망하고, 친일을 하면 삼대가 흥한다"는 말이 있는데, 이 말을 사라지도록 하겠다.
◇ 김현정> 저도 기억납니다, 이 말.
◆ 손수호> 대통령이 이런 약속을 해야 할 정도인데. 실제 친일파와 그 후손들이 얼마나 잘 먹고 잘 살았는지 궁금하지 않나요?
◇ 김현정> 궁금합니다.
◆ 손수호> 오늘 대표적인 친일파와 그 후손들의 삶을 살펴보고 지금 개선할 부분이 혹시 있는지 생각해보려 합니다.
◇ 김현정> 사실은요. 친일파들이 떵떵거리고 잘 산다. 이거 뭔가 문제 있다. 독립운동가의 후손들은 다 어렵게 살고 병을 앓고 제대로 교육도 못 받고 이런 얘기를 많이 들어왔지만 한 사람, 한 사람 정말 어떻게 사는지는 그러고 보니까 잘 몰랐던 것 같아요.
◆ 손수호> 네, 그렇습니다.
◇ 김현정> 손 탐정과 함께 들어가 보겠습니다. 먼저 소개할 인물 누구입니까?
◆ 손수호> 첫 번째. "매국노 중에서도 최고 매국노. 이완용"
◇ 김현정> 이완용. 이완용 빼고는 매국노 설명이 안 되죠.
◆ 손수호> 그렇습니다. 대표적인 매국노죠. 그런데 상당히 흥미로운 부분도 있어요. 독립운동가 서재필 선생 아시죠?
◇ 김현정> 독립신문.
◆ 손수호> 네, 독립신문을 발행한 서재필 선생. 1897년 11월 11일자 독립신문에 이런 내용이 실렸습니다.
◇ 김현정> 어떤 거요?
◆ 손수호> "이완용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우리나라를 위해서, 이권을 외국에 넘겨주는 것에 반대했다. 이완용은 대한의 몇째 아니 가는 재상이다." 독립신문이 이완용의 애국심을 칭찬한 겁니다.
◇ 김현정> 독립신문이 '이완용은 우리 이권을 외국에 넘겨주는 거 반대했다'고 썼어요?
◆ 손수호> 그렇습니다. 그리고 또 이완용은 조선의 4대 명필로 불릴 정도로 재주가 뛰어났고 독립문을 세우는 데 가장 많은 돈을 기부했다고 하는데요. 지금도 독립문 현판의 글씨가 이완용 글씨라는 설이 있을 정도죠.
◇ 김현정> 독립신문이 가짜 뉴스를 썼을리는 없고.
◆ 손수호> 그렇죠.
◇ 김현정> 한때는 존경받는 애국자가 맞았다는 얘기네요.
◆ 손수호> 명망 있는 지식인이었던 건 맞아요. 하지만 그건 아주 잠시뿐이었습니다. 지금의 외무부장관인 외무대신으로 일하면서 외국에 이권을 넘겼습니다. 그 대가로 막대한 재산을 축적하는데요. 그러다 결국 독립협회에서도 제명됐어요. 그 후 러일전쟁에서 러시아가 일본에 참패하는 걸 보고나서 본격적인 친일 행보를 시작합니다. 1905년 을사늑약, 1910년 한일 병탄을 주도하면서 나라 팔아먹은 대가로 일제로부터 아주 많은 돈을 받았죠.
◇ 김현정> 그러니까 돈과 명예 다 챙긴 거예요.
이완용 (사진=한국민족문화대백과)
◆ 손수호> 네. 일제로부터 받은 돈으로 땅을 사서 되팔았습니다. 부동산 투기죠.
◇ 김현정> 그러네요.
◆ 손수호> 그래서 경성 최고의 현금 부자가 되었는데. 이게 어느 정도였다면요. 한때 여의도 면적의 8배 가까운 땅을 소유했고요.
◇ 김현정> 개인이?
◆ 손수호> 네. 전국에 이완용 땅 없는 곳이 없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파악된 현금 자산만 200만 원이었는데, 이게 지금 가치로는 600억 원을 넘는 수준이라고 합니다.
◇ 김현정> 현금으로 손에 들고 있는 거만 600억 원. 땅은 여의도 면적의 8배. 이완용 땅을 밟지 않고는 전국을 다닐 수 없다고 할 정도.
◆ 손수호> 네, 그렇습니다.
◇ 김현정> 정말 나라 팔아서 자신은 떵떵거리고 산 거네요.
◆ 손수호> 권력과 부를 다 손에 쥐고 누리다가 69세의 나이로 사망했는데요. 해방 전에 죽었습니다.
◇ 김현정> 그러니까 69세면 지금, '69세면 빨리 사망한 거 아니야?' 하실지 모르지만 그 당시로 69세면 장수 누린 거잖아요.
◆ 손수호> 천수를 누린 거죠.
◇ 김현정> 게다가 해방되기 전에 죽었습니다. 그러면 이완용이 죽고 그 많은 재산들은 어떻게 됐어요?
◆ 손수호> 소유하고 있던 부동산의 98%를 해방 전에 팔아치웠습니다.
◇ 김현정> 이것도 또. 돈에 뭔가, 이재가 밝았네요.
◆ 손수호> 그래요. 일단 이렇게 현금화가 됐기 때문에 그 후 어디로 재산이 흘러갔는지 파악하기 참 어려워졌습니다.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닙니다. 이완용 후손들은 1992년 서울 북아현동에 있는 땅이 자기들 땅이라면서 국가를 상대로 소 제기 했는데요, 이완용 후손들이 소송에서 이겼습니다. 그리고는 그 땅을 바로 30억 원에 팔아버리고 캐나다로 이민 갔어요.
◇ 김현정> 그러니까. 친일파의 재산을 해방 후에 환수하기는커녕 친일파 후손한테 땅을 되찾아준 셈이 된 거네요.
◆ 손수호> 그렇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국민들이 당연히 분노했죠. 이완용 재산 몰수하자는 서명운동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사건을 계기로 친일파 재산을 환수하기 위한 노력이 시작됩니다. 하지만 국가가 환수한 이완용 일가의 땅은 19,000 제곱미터 그러니까 약 3,300평에 불과했는데요.
◇ 김현정> 이 정도면 어느 정도예요, 이완용 재산의 땅에서?
◆ 손수호> 이게 이완용이 가지고 있던 전체 땅의 0.05%. 극히 일부인 거죠.
◇ 김현정> 0.05%? 0.5도 아니고?
◆ 손수호> 네 0.05%. 나머지 친일 재산은 아직도 어딘가에서 안전하게 후손들에게 넘어가고 있는 상황입니다.
◇ 김현정> 그 친일 행위로 만든 재산이 버젓이 대물림이 되고, 심지어는 더 얻겠다고 재산 내놓으라고 소송까지 벌인다니 기막힌 일입니다.
◆ 손수호> 네. 그렇죠.
◇ 김현정> 이완용. 다음 인물은 누구입니까?
◆ 손수호> 두 번째. "탐관오리의 대명사. 민영휘"
◇ 김현정> 민영휘. 많이 들어보셨을 거예요. 여러분 기억 떠올려보세요. 어떤 인물입니까?
◆ 손수호> 1852년 서울생이고요. 당시 민씨 일족이 실권을 잡고 아주 기세등등했습니다. 또 민영휘의 아버지는 민두호라는 사람인데요. 민두호 역시 민씨 세도를 이용해서 물불 가리지 않고 돈을 긁어모은 걸로 유명했습니다. 그래서 붙은 별명이 당시에 '민 쇠갈고리', 민씨 성을 가진 쇠갈고리라는 뜻이죠.
◇ 김현정> (웃음) 굉장히 직접적인 별명이네요.
◆ 손수호> 사실 우리나라 전직 대통령 중에서도 떠오르는 사람이 있습니다.
◇ 김현정> 누구라고 말씀은 안 드리겠습니다. 여러분이 생각하시는 그 사람.
◆ 손수호>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라고. 민영휘 역시 민초들을 착취해서 재산을 모았는데요. 1930년대에는 조선 최고 갑부 소리를 듣기도 했고요. 명성황후의 눈에 들어서 주요 관직에 올랐습니다. 그런데 1893년 갑오농민전쟁이 벌어지자 청나라에 진압군 파견을 요청한 '친청파'였다가, 경술국치 직후에는 또 일제에 빌붙기 시작하거든요.
◇ 김현정> 친일파가 되려고. 이랬다 저랬다.
◆ 손수호> 전형적인 기회주의자죠.
◇ 김현정> 기회주의자.
◆ 손수호> 또 민영휘는 아부에도 탁월했습니다. 평안도 관찰사 시절에 말로만 듣던 금송아지를 만들어서 고종에게 선물했죠. 그후 민영휘가 광성의숙이라는 학교를 세우자 고종이 휘문의숙이라는 이름을 지어서 내려줄 정도였습니다.
◇ 김현정> 이 휘문의숙이 지금 휘문고등학교예요?
◆ 손수호> 그렇죠,.
◇ 김현정> 그렇게 되는 거군요.
◆ 손수호> 그리고 이 휘문의숙 교정에 자기가 스스로, 죽기도 전에 자기 동상을 세웠는데요, 이게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 동상이라고 합니다.
◇ 김현정> 최초의 동상이 민영휘 동상. 근대에.
◆ 손수호> 그리고 당시 다른 동상들은 전쟁물자로 다 공출되고 파괴됐지만, 이 민영휘 동상만은 건드리지 않았는데요. 민영휘의 권세가 얼마나 대단했는지 확인할 수 있는 거죠.
◇ 김현정> 민영휘. 이 사람도 누릴 거 다 누리다가 해방 전에 죽었다면서요.
◆ 손수호> 아쉽지만 그렇습니다. 해방 10년 전인 1935년에 사망했는데요. 이렇게 위세를 떨치던 민영휘가 죽었는데도 막대한 재산을 물려받은 아들이 장례를 초라하게 치러서 세간의 비난을 받았다고도 합니다.
◇ 김현정> 후손들 어떻게 지내요? 민영휘 후손들.
◆ 손수호> 민영휘가 친일로 얻은 권세와 재산은 3대도 아니고 4대까지 문제없이 내려갔는데요. 앞에서 말씀드린 휘문중학교, 휘문고등학교.
◇ 김현정> 지금 휘문중고등학교는요. 서울 대치동. 정말 금싸라기 땅에 있어요.
◆ 손수호> 풍문여고도 세웠고요. 자손들 상당수가 미국에 거주하면서 우리나라를 오가고 있는데. 글쎄요. 우리나라에 세금은 제대로 내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또 후손들이 종로 한복판 노른자위 부동산을 놓고 법정 싸움을 벌이기도 했죠.
◇ 김현정> 그러니까 2007년에 친일 반민족 행위자 재산조사위가 이 민영휘로부터 대물림된 재산. 그러니까 친일 재산을 국고로 환수하기로 결정을 했었잖아요. 그런데 그때 후손들이 재산을 다 개인 명의에서 법인 명의로 바꿨다면서요.
◆ 손수호> 그렇습니다. 재산 환수작업을 회피하기 위한 게 아니었을까 의심되죠.
◇ 김현정> 환수 못 했어요, 결국?
◆ 손수호> 회수 작업이 매우 어려운 상황에 처했죠.
◇ 김현정> 그 친일 재산인 걸 뻔히 아는데 이게 어디서부터 어떻게 내려온 건지를 알면서도 환수할 길은 없는 상황. 국민들 들으면서 화가 나실 수밖에 없는 상황인데요. 이완용, 민영휘 거쳤습니다. 다음은 누구입니까?
삼일절 (자료사진)
◆ 손수호> 세 번째. "자발적 창씨개명 1호. 노다 대감"
◇ 김현정> 노다 대감이라는 이름은 저는 생소하네요. 누구예요?
◆ 손수호> 이완용과 쌍벽을 이루는 민족 반역자. 바로 송병준입니다.
◇ 김현정> 송병준. 송병준 이름이 노다, 노다 대감이었어요?
◆ 손수호> '노다 헤이치로'라는 일본 이름으로 스스로 개명 한 건데요. 송병준은 조선 말기 무관이자 정치인이고 '정미칠적' 중 한 명으로 꼽힙니다. 조선총독부 중추원 고문도 지냈고, 일제로부터 백작 작위까지 받습니다. 특히 송병준은 직접 일본 총리와 이토 히로부미를 찾아가서 제안을 합니다.
◇ 김현정> 뭐라고요?
◆ 손수호> 직접 가서요. "1억 5,000만 엔을 주면 조선을 팔아넘기겠다. 그 돈으로 이렇게 넓은 조선 땅과 2,000만 명이 넘는 조선인을 일본 손에 넣고 세금 받을 수 있지 않냐. 이건 절대로 비싼 게 아니다."라고 했습니다. 믿기 어렵죠?
◇ 김현정> 이게 그러니까 그냥 야사가 아니고 진짜 기록으로 남아 있어요?
◆ 손수호> 정식 기록에 남아 있는 내용입니다.
◇ 김현정> 진짜 매국노네. 매국노 중의 매국노네요, 송병준도.
◆ 손수호> 그렇습니다. 송병준은 민영환 집안에 식객으로 있다 무과에 합격했는데, 강화도 조약이 체결되자 일본 무역회사와 합작해서 부산에 상점을 차립니다. 1호 친일 합작기업으로 볼 수 있겠죠. 분노한 군중이 이 상점을 때려 부수기도 했어요. 송병준은 그 후에 일제 지시에 따라 일진회를 만들어서 조선인들이 일본의 지배를 원한다는 내용으로 여론 조작까지 합니다.
◇ 김현정> 조선인들이 원해서 이렇게 일본이 지배해 주는 거다?
◆ 손수호> 그렇죠. 최근의 댓글 공작처럼 여론을 조작한 거죠. 또 매국의 대가로 백작 작위는 물론 거액의 은사금을 받아 챙기는데요. 고종 양위를 요구하면서 대신들을 협박하고, 국채보상운동 방해 공작까지 합니다. 또 민영환이 자신을 돌봐줬는데요. 국권 피탈로 상심하고 자결했죠. 가족도 남고 재산도 남았는데 남은 가족들을 협박해서 그 재산을 모두 빼앗아가요. 은인이든 친구든 가릴 것 없이 주변 사람들의 재산과 토지를 빼앗아서 엄청난 부를 축적했는데, 지금도 송병준 일가 명의로 되어 있는 것이 전국에 수천만 평에 달한다고 합니다.
◇ 김현정> 여기도 그렇군요. 이 후손들은 지금 어떻게 삽니까?
◆ 손수호> 재산을 상속받은 아들이 송종헌이에요. 당시 전국적인 세도가로 행세했습니다. 그런데 광복 후 용인의 대저택과 전답을 급히 처분하고 서울로 피신했다가 반민특위에 체포돼서 조사 받다 사망했어요.
◇ 김현정> 그러니까 송병준의 아들 송종헌은 반민특위 조사 중 사망.
◆ 손수호> 네, 송종헌. 그런데 여기서 끝난 게 아니고요. 송병준의 손자인 송돈호가 등장합니다. 건설회사를 만들어서 운영했는데, 1990년대부터 할아버지 송병준의 토지를 찾는 절차를 진행합니다.
◇ 김현정> 아버지가 그렇게 옥중에서 사망을 하니까 뭔가 토지가 어딘가 막 있기는 있는데 뭔가 부정확하게 넘어갔을 수도 있겠네요, 자손한테.
◆ 손수호> 그렇습니다.
◇ 김현정> 그러자 그거를 되찾는 소송을 했군요.
◆ 손수호> 그런데 그 과정에서 사기꾼들이 많이 관여했고 실제로 사기극이 벌어지기도 했는데요. 당시에 문제됐던 땅이 서울 상암동 60만 평, 인청 부평 30만 평 또 강원도에도 200만 평 등등. 굉장히 많았어요. 송병준 명의로 되어 있던 땅이죠. 그런데 이걸 송돈호 손자가 곧 바로 찾아가겠다고 하면 문제가 생길 수 있으니까, 중간에 한 단계 거쳐 가려 합니다.
◇ 김현정> 어떻게 거쳐요?
◆ 손수호> 후손들과 브로커가 짜고 이 토지를 어떤 단체에 기증한다는 서류를 만들고요. 기부를 받은 단체가 "내가 이 땅의 주인이다"라고 주장해서 소유권을 취득합니다. 그리고 이 단체가 땅을 찾은 다음 송돈호와 브로커가 반반씩 나누는 건데요. 짜고 치는 고스톱이죠.
◇ 김현정> 굉장히 복잡하죠, 여러분? 쉽게 말하면 어떤 단체 A라는 어떤 자선단체에다가 기증하는 식으로 해서 명의를 바꿔놓고 기증단체가 국가가 그거 내놔 하니까 아니, 나 지금 이거 기증받은 건데 내가 왜 내놔야 됩니까 이렇게 한 다음에 뒤로 반반씩 나눠가졌다는 거군요.
◆ 손수호> 실무에서는 이걸 이제 '원쿠션'이라고도 하죠.
◇ 김현정> 이런 방법이 또 있군요. 참 기가 막힙니다.
◆ 손수호> 이게 언론 취재로 들통났어요. 그러자 손자 송돈호는 국가에 땅을 헌납하겠다고 선언합니다.
◇ 김현정> "그러면 헌납하겠습니다" 이렇게 했어요.
◆ 손수호> 그런데 이것도 거짓이었고요. 송돈호의 배다른 형 송준호가 국회를 찾아가서 국가 헌납 동의서를 작성했어요, 1997년에. 하지만 송돈호는 몰래 숨어서 땅 찾기 소송을 계속합니다. 2002년에 인천 부평에 있는 미군기지가 국가에 반환되었어요. 그런데 이 땅을 포함한 일대가 모두 송병준의 소유라고 하면서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는데요. 그 과정에서 '친일 반민족 행위자 재산의 국가 귀속에 관한 특별법'이 위헌이라며.
◇ 김현정> 그러니까 국가가 친일파 재산 빼앗아가는 그 법은 위헌이라면서 헌법소원 냈었죠.
◆ 손수호> 참 뻔뻔한 거죠.
◇ 김현정> 저 이거 기억해요. 헌법소원 냈던 거 여러분도 기억하실 겁니다. 참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이런 일 벌이는 친일파 후손들. 저는 그 사람들도 그 사람들이지만 이게 가능했다는 게 더 이상해요. 우리 사회가 이걸 허용했다는 게 더 이상해요.
◆ 손수호> 바로 그 부분을 오늘 꼭 말씀드리고 싶은데요. 1990년에 이완용의 증손자가 서울 마포구에 있는 땅을 되찾아서 바로 팔아치웠습니다. 그 때부터 친일파 후손의 땅 찾기 소송이 주목을 받았죠. 그런데. 친일파 후손이 16건의 소송 중 8건에서 승소합니다.
◇ 김현정> 친일파 후손이?
◆ 손수호> 당시에는 특별한 법령도 없었고요. 또 국민 정서나 법 감정과 별개로 법원은 제출된 증거에 의해 법리로만 판단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그런 결과가 나온 건데요.
◇ 김현정> 그래서 그런 것에 반발하면서 나온 법이 바로 이 친일파의 재산을 우리가 환수하자라는 특별법이었던 거잖아요.
◆ 손수호> 네, 2005년이었죠. '친일 반민족 행위자 재산의 국가 귀속에 관한 특별법'이 만들어졌습니다. 그런데도 여전히 친일 후손들의 땅 찾기는 계속되고 있고요. 심지어 2011년에요. 또 다른 매국노 민영은의 후손들이 청주시를 상대로 토지 반환 소송을 제기해서 1심에서 승소 했습니다. 다행히 상소심에서 뒤집혔지만, 특별법에도 허점이 있었습니다.
◇ 김현정> 어떤 거요?
◆ 손수호> '친일 재산 귀속법'에 따르면 국권 침탈이 시작된 시점을 '러일전쟁 개전 시'라고 봐요. 즉 러일전쟁이 벌어진 날. 시작된 날. 그때부터 1945년 8월 15일 광복 시점까지 일제에 협력한 대가로 취득하거나 이걸 상속받은 재산을 그 대상으로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러일전쟁 전부터 가지고 있었다라고 하면 이 법에서 정한 환수 대상이 아닌 거죠.
◇ 김현정> 그나마 이 환수 대상에서 빠지는군요.
◆ 손수호> 그렇습니다. 위헌성을 제거하기 위한 노력이긴 하지만, 아쉬운 점도 있죠.
◇ 김현정> 그러니까 '친일 재산 귀속법', 이 특별법이라는 게 있는데도 다 막을 수 없다는 게 저는 좀 희한하네요.
◆ 손수호> 그렇습니다. 또 잊어서는 안 되는 부분이 있죠. 바로 친일파 후손과 함께 이권을 챙기는 사람들입니다. 우선 토지 브로커들.
◇ 김현정> 아까 짜고 치는 사람들.
◆ 손수호> 또 브로커들에게 도움을 주는 현직 공무원들, 지역 건달들. 실제로 송병준의 손자 송돈호가 경찰관계자, 거물급 조폭과 연결됐던 것으로 드러나기도 했습니다. 또 변호사들. 이런 소송하면서 거액의 성공 보수를 받기도 하는데, 이들 모두 제2, 제3의 친일파라고 할 수 있겠죠. 아무리 돈이 좋아도 그렇게 살지 않길 바랍니다.
◇ 김현정> 따끔한 한마디시네요. 아무리 돈이 좋아도 그렇게 살지는 말아라. 자손들한테 부끄러운 일은 하지 말아라. 오늘 3.1절에 참 맞는 주제입니다마는 소개하면서도 내내 씁쓸해요. 손 탐정의 한마디.
◆ 손수호> 외국 사례를 잊지 말자.
◇ 김현정> 외국, 외국은 어땠습니까?
◆ 손수호> 우선 프랑스. 4년 동안 독일의 지배를 받았죠. 그런데 해방 직후에만 부역자 1만 명을 처형합니다.
◇ 김현정> 4년 점령당했는데, 4년 동안 식민지였는데도 1만 명을 처형했어요.
◆ 손수호> 그게 끝이 아니고요. 그 후 4년에 걸쳐서 7,000명에게 사형 선고를 하는데 징역형과 시민권 박탈 처분은 10만 명에게 내립니다. 그리고 1990년대까지도 과거사 청산 작업을 지속하는데, 이게 프랑스뿐만이 아니에요. 네덜란드는 나치 협력자들을 엄하게 처벌하기 위해서 1870년에 폐지했던 사형 제도를 특별히 부활시킵니다. 그러면서 150명 이상에게 사형 선고를 했습니다. 그런데 무려 35년 동안이나 일제의 지배를 받던 우리는 반민특위가 약 700명을 조사해서 겨우 300명을 기소합니다. 그런데. 사형 1명, 무기징역 1명, 징역형 13명, 공민권 정리 18명.
◇ 김현정> 공민권 정리 18명.
◆ 손수호> 나머지는 처벌받지 않았습니다. 이러니 친일 세력이 아직까지 남아 있을 수밖에 없죠.
◇ 김현정> 부끄러워요, 저는 지금 들으면서 부끄러워요.
◆ 손수호> 독립운동을 하면 3대가 덕을 보게 하겠다고 대통령이 약속했지 않습니까? 꼭 그렇게 되면 좋겠습니다.
◇ 김현정> 오늘 탐정 손수호. 지금까지의 손수호 탐정 내용 중에 오늘이 가장 저는 착잡한 것 같습니다.
◆ 손수호> 가슴이 아프죠.
◇ 김현정> 그러게 말입니다. 손 변호사님 고생하셨고요. 또 얼른 가서 일하세요.
◆ 손수호> 네, 감사합니다.
◇ 김현정> 탐정 손수호였습니다.
(속기:한국스마트속기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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