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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유공자 후손들 "자부심보단 가난이 부끄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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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학금 받아도 비밀로 해달라…유공자 후손 70%가 극빈층이거나 차상위계층

- 독립운동가 후손 정보공개 청구에 실태 파악 안 돼 있다는 보훈처
- "독립운동하고 고국 오니 집도 땅도 없이 피난민 신세"
- 만주, 연해주 등 조명 안된 지역과 독립 운동가들에 대한 기록 필요
- 100년이 걸려도 독립운동가들을 발굴하겠다는 의지 중요
- 안진걸 "대학가에 있는 친일파 동상부터 철거해서 역사 정의 세워야"



CBS 라디오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
 
■ 방 송 : FM 98.1 (18:30~19:55)
■ 방송일 : 2018년 2월 28일 (수) 오후
■ 진 행 : 정관용 (한림국제대학원대학교 교수)
■ 출 연 : 안진걸 사무처장(참여연대), 이춘재 상임공동대표(흥사단 독립유공자후손돕기본부)
 
◇ 정관용> 어렵게 살아가는 우리 이웃들을 돌아보는 안진걸의 이웃사람입니다. 오늘은 어렵게 살아가시면 안 되는 분들인데 어렵게 살고 계신 분들 생각합니다. 내일이 3. 1절이죠. 그런데 독립운동하면 3대가 망한다 이런 말 여러분 기억하시죠? 독립유공자 후손들, 어렵게 살아가고 있는 그 현실을 짚어보겠습니다. 참여연대 안진걸 사무처장 어서 오십시오.
 
◆ 안진걸> 안녕하십니까?
 
◇ 정관용> 진짜 3대가 망하죠?
 
◆ 안진걸> 네, 그런 이야기가 많이 있었는데 주변에도 어렵게 사는 게 독립유공자라든지 민주화 투쟁 관련자들 자녀들이 있지 않습니까? 실제로 예전에 한국일보에서 광복 70주년을 맞아서 광복회원 6830명 전원을 대상으로 조사를 했는데요.
 
◇ 정관용> 그분 그러니까 광복회 회원이라는 건 유공자 후손…
 
◆ 안진걸> 독립유공자 후손들 또는 아직 생존해 계신 우리 독립투사분들이신데 응답자의 75. 2%가 월소득 200만 원 이하인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 정관용> 75. 2, 4분의 3?
 
◆ 안진걸> 맞습니다. 거의 대부분인 거죠, 그러니까. 200만 원이라는 거는 겨우 최저임금 조금 더 받는 선에서 허덕이고 살아가는 분들인데 이게 대비돼서 친일하면 3대가 흥하다, 이런 말도 있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그분들이 친일하고 또 친미하고 군사독재 또 빌붙고 주도하면서 잘 살고 떵떵거리고 오히려 독립투사하고 민주화운동 했던 분들은 죽거나 다치거나 이렇게 가난하게 3대, 4대까지. 이제 그게 또 법에도 문제가 있었더라고요.
 
◇ 정관용> 정부가 지금 지원을 하고는 있죠? 그런데 너무 부족한 거죠.
 
◆ 안진걸> 독립유공자에 대한 법률이 있어서 보상금이나 생활지원금이 나가기는 했는데 그전에는 원래 우선순위 1인만 지원을 해 준 거예요.
 
◇ 정관용> 후손 가운데 1명? 지금으로 보면 대부분 돌아가셨을 거고 자녀보다도 손자녀가 더 많을 텐데. 손자녀라고 하면…
 
◆ 안진걸> 자녀들이나 배우자분만 받았던 거예요. 손자녀까지 못 받았던 거예요. 
 
◇ 정관용> 전혀? 
 
◆ 안진걸> 그런데 문재인 대통령이 여러 번 이야기했잖아요. 독립운동하면 3대가 망한다는 이 속설을 깨겠다. 제대로 나라를 위해서 헌신한 분들을 제대로 챙기고 기리겠다 하면서 작년에 제도가 바뀌어서 자녀나 손자녀까지 다 지원금을 받을 수 있게 돼 있습니다.
 
◇ 정관용> 전원이요?
 
◆ 안진걸> 전원은 아니고 기준 중위소득이 50% 이하인 손자녀들은 월 46만 8000원, 중위소득 70% 이하인 경우는 33만 5000원까지 생활지원금을 지원하는데.
 
◇ 정관용> 중위소득이라고 하는 건 우리나라 전체 평균의 딱 중간소득이잖아요. 거기의 절반도 안 되는 분한테 한 달에 46만 원? 이것도 너무 적죠. 아니 그런데, 우선 정부가 실태 파악을 제대로 하고 있어요?
 
◆ 안진걸> 이게 조금 이따가 우리가 연결도 하겠지만 우리 도산 안창호 선생이 만드신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NGO죠. 흥사단이 그런 일을 많이 하고 좋은 일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흥사단에서 정부에 정보공개청구를 해 봤습니다. 그동안 이런 독립유공으로 훈장을 받으신 분들, 포상을 받으신 분들이 한 1만 5000명 가까이 되는데 그들의 직계비속, 거주지 그다음에 연령대, 학력, 경제 수준을 한번 정보공개 청구했는데 이거에 대한 자료가 없는 겁니다. 우리 정부에도. 안타깝습니다.
 
◇ 정관용> 실태 조사가 안 돼 있다?
 
◆ 안진걸> 다만 독립유공자법 예우법에 관해서 아까 전에 1순위로 지원을 받는 분들이 있다고 했잖아요, 한 분씩. 그분들이 한 7509명 되나 봅니다. 그러니까 거기에 이제 조사를 해 보니까 생존해 계신 독립유공자들이 한 59명 계시고요. 그다음에 이제 선순위 지원을 받는 분들 연령이 76세라는 것… 이런 부분들이 확인이 됐습니다.
 
◇ 정관용> 법을 바꿔야죠, 이거는.
 
◆ 안진걸> 그렇죠. 이분들이 허덕이게 살지 않도록 빠짐없이 예산 같은 것들이 지원될 수 있도록. 그다음에 국가가 최소한 독립유공자와 그 자제분들에 대한 실태파악을 철저히 해놓는 것으로 법과 제도도 보완되어야 되겠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독립유공자를 청와대에 초청해 오찬행사를 개최하였다 (사진=청와대 제공)

 

◇ 정관용> 방금 언급하셨던 흥사단이 정부가 제대로 이렇게 일을 못하는 사이에 독립유공자 후손들을 여러 방면에서 지원해 왔거든요.
 
◆ 안진걸> 맞습니다.
 

◇ 정관용> 유공자들 손자녀들 장학금도 주고 자부심 갖게 하기 위해서 독립유적지 탐방도 다니고 했는데 거기 독립유공자 후손돕기 흥사단의 본부 상임공동대표 한 분 연결합니다. 이분도 독립유공자 후손이세요. 이춘재 대표, 대표님, 안녕하세요?
 
◆ 이춘재> 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 정관용> 독립유공자 후손이시라고요?
 
◆ 이춘재> 그렇습니다. 저희 외할아버지가 독립운동 하셨고요. 저는 손주입니다.
 
◇ 정관용> 어떤 독립운동을 하셨어요?
 
◆ 이춘재> 외할아버님이 평안북도 선천분이신데요. 거기서 대한청년단을 조직해서 독립운동을 하시다가 선천에서 친일파 관료들을 처단하시고 그다음에 군자금을 그 당시에 2000원을 모아서 임시정부로 가셨어요. 상해임시정부에서 김구 선생님하고 같이 정의단이라는 걸 만들어서 독립운동을 상해에서 쭉 하시다가 그다음에 이제 일본 밀정에 의해서 잡히셔서 한국에 압송돼서 한국에서 평양에서 재판을 받으셨죠. 그래서 옥살이를 한 7년형을 받으셨는데 5년 정도 살다가 이제 병으로 나오셨고요. 특이점은 평양고법에서 재판 받으실 때 16번을 받으셨는데 가인 김병노 선생님 계시잖아요.
 
◇ 정관용> 네, 우리나라 법조인의 정말 태두 격이신 분이죠.
 
◆ 이춘재> 그분이 이제 외할아버지 변론을 자청하셔서 해 주시고 그랬습니다.
 
◇ 정관용> 외할아버지라고 했으니까 어머님은 어린 시절 외할아버지 기억을 하시던가요?
 
◆ 이춘재> 어머니 10살 때 돌아가셨는데요. 사실은 어머니가 아버지가 계속 감옥에 오래 계셨고 해서 돌아가실 때 정도 추억을 얘기하시는데.. 사실 외할머니가 너무 힘드게 사셨고요. 남편이 일찍 돌아가시고 자손들은 다 상해에 나와 있었으니까요. 그다음에 어머니도 나라, 학교가 없으니까요. 그래서 처음에는 상해임시정부에서 운영하는 학교가 있었거든요. 거기를 다니시다가 일본군이 점령하니까 이제 다 쫓겨나고 그래서 이제 중국학교로 갔다가 또 일본 학교 갔다가 학교를 수도 없이 옮겨다니시고 밀정들은 계속 쫓아다니고 그때는 할아버지가 안 잡혔을 때니까. 하여튼 굉장히 힘든 세월을 보내셨죠. 
 
◇ 정관용> 그러니까 어머님 어린 시절 외할아버지는 돌아가셨고 외할머니는 그 어린 자녀들을 데리고 생계를 책임지셔야 했고 학교도 변변치 않으니까 제대로 공부도 못 하셨을 거고. 그렇게 되니까 그 자손들이 다 힘들어지는 것 아니겠습니까? 
 
◆ 이춘재> 그래서 이제 해방이 돼서 평안북도로 돌아오셨는데 집도 없고 생활 터전이 없으니까요. 다 힘드시다가 6. 25전쟁 나니까 또 부산으로 피난 내려오시고 그랬죠. 일생의 삶이 대단히 고단하셨죠. 
 
◇ 정관용> 지금 흥사단에서 유사한 분들 여럿 만나고 계시잖아요. 
 
◆ 이춘재> 네, 그렇습니다. 
 
◇ 정관용> 다들 비슷한 그런 역사적인 삶을 이야기하시는 거죠? 
 
◆ 이춘재> 그럼요. 어려운 분들이 너무 많고요. 사실 너무 가슴 아픈 게 지금 독립운동 후손의 한 70%가 극빈층이거나 차상위계층이에요. 
 
◇ 정관용> 그렇다고요. 
 
◆ 이춘재> 그런데 그분들에 대한 처우도 너무 열약하고 사실 저는 제일 이 일을 하면서 가슴 아팠던 게 그 흥사단에서 장학금을 주지 않습니까, 후손들을 찾아서. 그럼 그 애들이 학교에다가 선생님한테 이걸 비밀로 해 달라고 하는 아이들이 있어요.
 
◇ 정관용> 왜요?
 
◆ 이춘재> 독립운동 후손이라고 하면 자랑스러워야 하는데 자기가 독립운동 후손이기는 하지만 가난하기 때문에 돈을 받는다는 것에 대한 부끄러움이 있더라고요, 아이들이. 그러는 이게 너무 안타까운 게 국가를 위해서 싸운 조상들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분위기가 되어야 하는데 심지어 그런 정도의 아이들이 있다는 건 너무 가슴 아픈 일이죠, 사실. 숫자가 많고 적고를 떠나서.
 
◇ 정관용> 충격적입니다, 그 말씀.
 
◆ 이춘재> 실화입니다, 이것들이.
 
◇ 정관용> 그리고 해방 직후에 우리가 이분들을 제대로 챙기지 못해서 독립유공자라고 하는 거를 다 입증받아서 정식 등록되고 지원을 받기 시작하고 이렇게 된 것도 사실 그리 오래전 일이 아니지 않습니까?
 
◆ 이춘재> 그렇죠. 오랜 세월 되지 않았죠.
 
◇ 정관용> 그러다 보니까 수십 년의 공백 기간 동안 이분들이 뭔가 생활 터전에 기반을 잡을 만한 그런 기회를 다 놓치신 거죠?
 
◆ 이춘재> 다 놓친 거죠. 그러니까 그분들이 그야말로 요즘으로 얘기하면 신분 상승의 기회가 없는 거죠. 왜냐하면 독립운동 후손의 70%가 고졸이거든요. 그러니까 뭐 대학도 못 가고. 그러니까 이 사회에서 변변한 직업을 갖기도 대단히 힘들고. 이건 정말 국가가 정말 이렇게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너무 안타깝습니다.
 
◇ 정관용> 어떻게 해야 합니까, 정부. 국가는?
 
◆ 이춘재> 저는 제일 문제는 독립운동 하신 분들이 15만 명 정도 된다고 하거든요. 그런데 지금 우리가 논의하고 있는 국가에서 도움을 받는 사람은 10%밖에 안 돼요. 1만 5000명. 그러면 나머지 13만 5000명은 아무 국가가 인정도 안 해 주고 금전적인 지원은 말할 것도 없고요. 그런 사람들은 정말 너무 힘들게 살다가 돌아가셨는데 저는 그분들에 대해서도 조속히 명예를 회복해 드려야 한다고 생각하고요. 또 한 가지는 독립운동 유공이 저희 할아버지도 상해에 계셨지만 너무 상해 쪽으로 지금 집중돼 있고 실제로 투쟁을 많이 한 만주에서 항일투쟁을 했던 분들은 굉장히 적거든요.
 
◇ 정관용> 연구도 안 돼 있죠, 제대로.
 
◆ 이춘재> 연구도 안 돼 있고. 그런 부분들이 좀 더 활발한 연구가 돼야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도 하고요, 그렇습니다.
 
◇ 정관용> 알겠습니다. 먼저 이춘재 대표님께 제가 죄송합니다부터 말씀드려야 될 것 같아요.
 
◆ 이춘재> 아닙니다. 관심 가져주셔서 감사드립니다.
 
◇ 정관용> 오늘 고맙습니다.
 
◆ 이춘재> 고맙습니다.
 
(사진=흥사단)

 

◇ 정관용> 흥사단의 독립유공자후손돕기본부 상임공동대표 이춘재 대표셨고요. 안진걸 처장도 죄송하죠?
 
◆ 안진걸> 막 마음이 굉장히 무겁고 국회의원들하고 시민단체들이 법 개정과 예산 확대에 더 나서야겠다. 지금 마지막 말씀 중에 두 가지가 가장 슬프잖아요. 자녀들이 그거를 숨기고 있다. 너무너무 비참하고 가난하게 살고 있는 것을. 그러지 않도록 오히려 자랑이 되고 긍지가 될 수 있도록 또 생활하기가 어렵지 않도록 직간접적인 여러 지원을 해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고 두 번째로는 너무나 많은 독립유공자들과 희생자들이 있었는데 거기에 대한 기록이 전혀 안 돼 있고 발굴도 안 돼 있고 아까 상해 말고 또 만주라든지 연해주 그쪽에서는 또 직접 항일무장투쟁하신 계열도 많이 있거든요. 사회주의 계열도 많이 있었고. 그분들은 상대적으로 조명이 안 된 분들도 많이 있는데 철저한 기록과 발굴. 이런 부분을 국가와 정부와 시민사회가 계속 이어나가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정관용> 이분들에 대한 지원, 지금보다 훨씬 대폭 상향할 수 있어야죠. 
 
◆ 안진걸> 그리고 기록, 발굴 역사적 의미부여. 저는 그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분들에게 우리가 재정적 지원이라든지 이런 거를 최대한 늘리는 것과 동시에 사실 진짜 바라는 게 무엇이었을까. 이분들이 정말 꿈꿨던 자유와 인권과 평등과 평화가 넘치는 대한민국, 통일된 조국 이런 걸 바라시는 게 아닐까. 거기에 대한 다짐도 많이 해 보게 되네요.
 
◇ 정관용> 사실 해방 직후에 우리가 했어야 할 일을 안 했기 때문에, 수십 년 동안 안 했기 때문에 이렇게 된거거든요. 지금부터 시작한다고 해서 이 15만 명을 완벽하게 다 발굴하고 그 후손들을 전부 찾아서 기록으로 남기고 그분들한테 지금보다 대폭 상향된 지원금을 드릴 수 있는 것, 저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 안진걸> 이미 늦어버렸고.
 
◇ 정관용> 불가능하지만 조금씩 조금씩이라도 우리 정부는 하고 있습니다. 이게 중요한 거죠.
 
◆ 안진걸> 이미 늦어버렸고 많은 기록이 소실됐을 수도 있는데 그래도 지금부터라도 끝까지 하겠다라는 저는 각오와 다짐이 굉장히 중요한 것 같고 예를 들면 해방 후에 반민특위가 강제로 해산되는 그런 아픔도 있었고 아직도 친일 잔재가 많이 남아 있고 대학가라든지 이런 공적 공간에 친일반민족행위자의 동상이 버젓이 있는 나라입니다. 저는 이것부터 철거를 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아니면 100번을 양보해서 자기들 선산으로 가져가서 설치하면 되잖아요.
 
왜 국민들이, 후손들이 보고 있는 공적 공간이나 대학이라는 중요한 공간에 학교라는 공간에 친일파의 동상이 여전히 멀쩡히 있는 것인지 이런 부분부터 전체적으로 좀 우리 사회의 역사 정의와 민족 정의를 바로잡는 작업. 그래서 독립유공자 자손은 3대뿐만 아니라 4대, 5대도 긍지와 보람 속에서 떳떳하게 살아간다, 이것을 우리가 반드시 회복해야 할 것 같습니다.
 
◇ 정관용> 안진걸의 이웃사람 코너 하면서 오늘처럼 좀 마음이 무겁고 참 죄스러운 경우가 처음이네요.
 
◆ 안진걸> 그러게요. 내년이 또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거든요.
 
◇ 정관용> 3. 1절 100주년이고.
 
◆ 안진걸> 정말 중요한 올해, 내년인 것 같거든요.
 
◇ 정관용> 1년에 단 몇 명씩이라도 찾아서 하겠다. 이건 100년, 200년이라고 해나가겠다. 이런 의지라도 좀 밝혔으면 좋겠네요. 수고하셨습니다.
 
◆ 안진걸> 고맙습니다.
 
◇ 정관용> 참여연대 안진걸 사무처장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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