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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컷스토리] 대학교수 명함, 이게 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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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 파벌·거짓 대자보로 세상을 떠난 젊은 교수와 어머니의 이야기

■ Part 1. 아들

조형물 작업 중 검붉게 변한 자신의 종아리 사진과 함께 웃긴 해쉬태그를 입력한 고 손현욱 교수 (사진=페이스북 캡처)

 


난 성격 좋고, 웃기고, 사람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때는 정말 답이 없었다. 성추행 루머와 거짓 대자보, 그리고 교수들의 파벌싸움. 긴 터널인데 출구가 보이지 않았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잘못된 것인지 모르겠다.

진실 규명의 본질은 흐려지고 인신공격이 난무했다. 다들 얽히고설켜서 뭐가 뭔지 구분도 가지 않았다. 서로 믿고 의지했던 스승과 제자를 의심했다. 그 와중에 또 그사이를 또 파고들어 기회를 엿보는 강사들도 있었다.

내가 왜 이런 모함을 당해야 할까... 이건 진짜 내 삶이 아닌 것 같다. 대학교수, 이게 뭐라고...

고 손현욱 교수가 동료 조교수와 나눈 카카오톡 대화. 성추행 허위 대자보 사건 이후 손 교수는 주변 지인에게 억울함을 호소했다. (사진=고 손현욱 교수 카카오톡 캡처)

 


학교라는 좁은 공간에서 끊임없이 파벌 싸움을 하는 교수들에겐 어쩌면 성추행 루머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었던 것 같다. 자신이 원하는 사람을 원하는 자리에 앉히는 일이 중요했을지 모른다. 그러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것일 뿐.

조교, 대학원생, 시간강사, 강의전담과 같은 절대적인 을에 있는 사람들은 많았고 교수 자리는 부족했다. 열쇠를 쥔 이들은 약한자의 미래를 볼모로 갑질을 반복했다. 힘없는 사람은 그저 따를 수밖에 없었다. 물론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져 갑에게 자발적으로 동참하는 약자도 있었다.

나의 지도 교수도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나를 호출했다. 술자리는 늘 새벽 늦게까지 이어졌다. 그때마다 운전기사 노릇을 한 적도, 술값을 계산한 적도 많았다. 폭언도 듣고 뺨도 맞았다. 하지만 이 모든 게 나를 위한 길이라 생각하며 참았다.

성추행 루머가 발생하게 된 2016년 3월 31일~4월 2일 동아대학교 미술학과 경주 야외스케치 당시 고 손현욱 교수(우측 첫번째).

 


잘 해결될 수 있었다.

성추행도 없었고 당사자도 아니라고 했다. 하지만 누군가는 이것마저 자신들에게 유리한 쪽으로 이용했다. 익명 속에 거짓 대자보가 붙던 그 날 이후 루머는 진실로 바뀌어 있었다.

한 교수가 섣불리 주선한 당사자 학생과의 사과 자리는 마치 내가 성추행한 것을 인정하는 장면으로 각인돼 부메랑처럼 날아왔다. 글쓴이는 대자보에서 있지도 않은 증거사진을 들먹이며 실명을 공개하겠다고 협박했다.

모든 시선이 나를 향했다. 학교에서 쌓아 온 것이 한순간에 사라졌다. 수치심에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작가로서의 명예도 추락했다. 좁은 미술 바닥에서 소문은 삽시간에 퍼져나갔고 또 다른 거짓 루머로 내게 되돌아왔다. 땀과 시간으로 만든 모든 것이 한순간에 무너져 내렸다.

생각할수록 너무 화가 났다. 때린놈은 아니면 그뿐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고통과 지옥의 시간이 계속됐고 잠을 잘 수도 정상적인 생활도 어려웠다. 몸과 마음도 피폐해져만 갔다.

논란이 커지자 내가 성추행을 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는 목격자들이 그런 일은 없었다고 확실하게 증언해 주었다. 피해 당사자로 지목되는 학생도 내가 성추행 한 적이 없었다고 확인해 주었다. 학장을 맡은 교수에게도 같이 찾아가 보고도 했다.

지금까지 많이 힘들었지만 이제 잘 해결될 것으로 생각했다.

2016년 5월 19일 부산 동아대학교 미술학과 현관에 게시된 대자보. 익명 속 글쓴이는 문제가 되는 교수의 실명과 사진을 공개하겠다고 협박했다.

 


그런데 학교 측은 사건 진실 규명에 빠르게 대응하지 않았다. 증인까지 나타나 보고했지만 공식적으로 어떠한 해명도 하지 않았다. 학교의 대응은 부실했고 이해관계가 다른 교수들은 이것마저 이용하려 들었다.

나는 지도교수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지도교수는 이 파벌싸움의 한 축으로 지목되기도 했다. 지도교수는 '이건 교수들 간의 파벌싸움이니 버텨야 한다'고 했다. 짧게 끝날 일이 아니라 길게 갈 일로 보고 있었다. 교수들의 파벌 싸움 속에 나의 상태 중요하지 않았다. 교수들은 서로를 의심하고 음해했고 그 중심에는 내가 서 있었다.

처음부터 내 문제가 아니었고 그냥 재료가 필요한 것이었다. 35살 먹은 총각에서 있지도 않은 성추행 혐의를 덮어씌우는 것은 너무 잔인하고 가혹했다. 멘탈이 강하다고 생각했는데 이건 사람이 감당하기 힘든 수준이었다.

사람을 만나고 대화하는 게 두려웠다. 외롭고 슬펐다. 목적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교수로 있는 사람들이 무서워졌다.

나를 의심하고, 내가 의심했던 사람들과 아무렇지 않게 지낼 자신이 없었다. 나 아니더라도 이런 일은 앞으로 계속 일어날 것이다. 나 다음에도 또 다른 누군가를 찾을 것이다.

더는 학교에 있을 수 없었다. 대학 교수 명함, 이게 뭐라고... 그냥 작가 손현욱으로 살 때가 더 즐거웠다. 이제 다 조용히 끝내고 싶다.

모든 것을 결정하고 마지막 전화를 걸었다.

"엄마. 죄송해요. 사랑합니다! 죄송해요. 사랑합니다. 엄마. 죄송해요. 사랑합니다!"

고 손현욱 교수의 마지막 통화 기록. 손 교수는 어머니와 마지막 통화에서 사랑한다는 말을 남기고 전화를 끊었다. 이후 손 교수는 전화를 받지 않고 투신했다.

 


■ Part 2. 엄마

"피고인에게 징역 8개월 원심을 유지한다"

2018년 2월 23일 항소심 재판부가 허위 대자보를 쓴 A에게 징역 8개월의 원심을 그대로 확정하는 판결을 선고했다.

앞서 원심에서 검사는 징역 2년을 구형했다. 하지만 원심 재판부의 징역 8개월형을 선고했다. 항소심 재판부도 마찬가지였다. 재판부는 대학생이던 A가 퇴학을 당한 점을 인정을 했지만 피해자인 아들의 명예가 심각하게 훼손된 점을 들어 원심과 같은 징역 8개월을 확정했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대자보를 쓴 학생의 형사적 처벌은 여기까인가 보다.

2016년 5월 19일. 학과 정문에 문제의 대자보가 붙은 이후 아들은 하루도 편한 날이 없었다. 대자보는 현욱이를 성추행범으로 몰아세웠다.

대자보는 소문을 타고 학교 전체로 퍼졌고 아들의 명예는 바닥으로 떨어졌다. 누구보다 쾌활했던 아들도 모든 것을 포기했다.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던 아들은 불안에 떨었고 잠도 이루지 못했다. 결국 아들은 죽음으로 결백을 호소했다.

아들이 세상을 떠나자 경찰 조사가 시작됐다. 학생회장이던 A는 대자보는 자신이 쓴 것이 아니라며 혐의를 부인했다. 이후 A는 경찰의 거짓말 탐지기 조사가 진행된다는 것에 부담을 느꼈고 자신의 범행을 자백했다. 물론 성추행도 없었고 증거사진도 없었다. 범행을 인정한 뒤 A는 변호사를 선임했다.

A와 그의 엄마는 나를 미친년으로 지칭했다. A의 엄마는 싸워보자며 자식을 두둔했다. A는 엄마에게 '한 명 더 뒤져야 정신을 차리려냐'고 문자를 보내기도 했다. 뒤늦게 증거자료로 제출 된 문자를 확인할 수 있었던 나는 억장이 무너져 내렸다.

A 측은 나에게 합의금을 제시했다. 그들과 더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았고 검사님과 재판부의 결정을 따르기로 마음 먹었다.

A와 A의 어머니가 나눈 문자메시지 기록. A는 고 손현욱 교수 어머니를 '미친년'으로 지칭했다. (사진=탄원서 캡처)

 


2016년 6월 7일.

아들이 떠난 날 이후 나의 삶도 완전히 망가졌다. 건강도, 아들도 잃은 내게 남은 것은 아들의 명예회복과 관련자 처벌뿐이었다.

학생들, 강사들, 교수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으며 증거를 찾고 모았다. 몸은 망가졌지만 아들을 생각하며 버텼다. 정의가 존재한다면 반드시 합당한 처벌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견딘 하루가 모여 증인과 증거를 찾을 수 있었고 이 사건과 관련된
교수 한 명이 파면을 당했다.

아들을 죽음으로 몰고 간 대자보를 쓴 A도 명예훼손 혐의로 법정에 세울 수 있었다. 마침내 A의 형사 처벌이 최종적으로 결정됐다.

아직 끝난 것이 아니다.

대자보와 함께 아들을 죽음으로 몰아간 교수들에 대한 처벌이 남아있다. 학교 측은 파벌싸움으로 대자보 사건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했다. 그럴수록 아들의 심적 고통은 극도로 커져만 갔다. 아들이 세상을 떠나자 뒤늦게 진상조사에 착수했다.

학교 측은 대자보를 쓴 A를 퇴학시켰고 사건의 한 축에 있던 교수 한 명을 파면시켰다. 하지만 아들의 심적 고통을 가중시켰던 다른 교수들에 대한 조사는 흐지부지 끝나고 말았다. 이것을 끝으로 가해자들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고 학교 측도 더는 움직이지 않았다. 2018년 2월 힘들게 동아대학 총장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지만 대화가 전혀 통하지 않았다.

고 손현욱 교수가 사용하던 동아대학교 연구실(우측). 잠겨 있는 연구실 내부(아래)에는 아직 고인 책상과 작품들이 놓여 있다.

 


며칠 전 검찰에 아들이 쓰던 노트북과 휴대폰을 제출했다. 수많은 거래 기록이 담긴 통장번호도 알려줬다. 그 속에는 아들을 죽음으로 몰고 간 많은 것들이 담겨 있을 것이다.

"엄마. 죄송해요. 사랑합니다! 죄송해요. 사랑합니다. 엄마. 죄송해요. 사랑합니다!"

현욱이의 마지막 목소리가 들린다. 지금은 세상에 없지만 꼭 옆에 있는 것만 같다. 부산 다대포 해수욕장에 서 있는 아들의 작품에 조용히 말을 건냈다.

'아들, 엄마는 괜찮아. 네가 편히 쉴 수 있도록 네 몫까지 싸울게. 지켜봐줘'

부산 다대포 해수욕장 앞에 전시된 아들(손현욱)의 작품 앞에 서있는 고인의 어머니.

 


이 기사는 2016년 동아대학교 성추문 허위 대자보 사건으로 고인이 된 고 손현욱 교수 사건을 손 교수와 그의 어머니의 시각으로 재구성한 내러티브 기사임을 밝힙니다.

▶ 관련기사 : [노컷스토리] 누가 손 교수를 벼랑 끝으로 몰았나?
http://www.nocutnews.co.kr/news/4892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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