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 세종병원 화재현장서 구조된 이영호씨. (사진=이상록 기자)
경남 밀양 세종병원 화재 현장에서 살아남은 이영호(85·여)씨는 급박했던 당시 상황을 떠올리며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26일 오전 7시 30분쯤 아침을 먹고 침대에 앉았던 이씨는 옆 병상에 있던 30대 여성 환자의 "119 불러"라는 소리에 화들짝 놀라 병원 복도로 뛰어나갔다.
2층 202호에 입원 중이던 이씨는 무조건 밖으로 나가야 한다는 생각에 비상계단으로 향했다.
그러나 이미 비상계단은 검은 연기로 가득 찬 상황.
다시 복도로 발길을 돌렸을 때는 병원은 아수라장으로 변해 있었다.
복도에는 연기가 가득 찼고, 두려움에 휩싸인 환자들이 뛰어다니며 "살려달라"고 소리쳤다.
이씨는 연기부터 피해야 한다는 생각에 201호 병실로 뛰어들었다.
문을 닫았지만 연기는 병실 안으로 스멀스멀 들어왔고, 죽음의 공포도 커졌다.
병실 안에 있던 환자들은 가슴 높이에 있는 너비 40cm 남짓한 창문을 통해 끊임없이 구조요청을 보냈다.
그때 소방대원이 창문 밖으로 모습을 드러냈고, 사다리차를 통해 환자들은 구사일생 구조됐다.
이씨는 "입원해 있던 202호 병실에 6명의 환자가 있었는데 생사조차 알지 못한다. 감기로 입원해 12일 동안 병원에 있다가 오늘 퇴원하기로 했는데 화재 당시 조금만 잘못된 선택을 했다면 목숨을 잃었을 것이다"고 말했다.
세종병원에 입원해 있던 가족이 구조됐다는 소식을 듣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던 생존자 가족들도 대형 인명피해에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세종병원 생존자 일부가 이송된 윤병원에서 만난 임모(45)씨.
그는 화재 소식을 접했을 때를 떠올리면 여전히 아찔하다.
몸이 좋지 않은 누나가 요양 차 두달 동안 세종병원에 입원해 있었기 때문이다.
화재 현장으로 한달음에 달려갔지만 병원은 이미 불길에 휩싸여 들어가지 못하는 상황.
다행히 인명 피해가 적었던 5층에 입원 중이던 누나는 소방대원에 의해 무사히 구조됐고, 뒤늦게 이 사실을 안 임씨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사망자가 41명에 달한다는 사실을 전해들은 임씨는 안타까움에 말끝을 흐렸다.
임씨는 "누나가 사망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너무도 두려웠다. 누나가 구조돼 다른 병원으로 이송됐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렇지만 너무도 많은 분들이 목숨을 잃어 마냥 기뻐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