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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사 집념에 하늘도 도와…영화같았던 '부부 살인방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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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사람]④제주지방경찰청 고기철 차장 "범인은 사명감 없으면 놓친다"

하루에도 수많은 사건사고가 쏟아진다. 현장엔 사건에 얽힌 자와 진실을 찾는 사람, 언론이 뒤섞인다. 제주CBS 노컷뉴스는 [사건&사람]을 통해 제주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사건사고와 이슈를 심층 취재하고 현장에 있는 사람들을 인터뷰해 소개한다.

(사진=자료사진)

 

2016년 8월 1일. 경기도 안성의 한 전원 주택에서 화재가 발생한다. 동네에서 비싸기로 소문난 곳이었다.

현장에선 집 주인 A씨(64)씨와 부인 B씨(57)가 숨진 채 발견됐다. 사망원인은 화재가 아닌 흉기에 의한 타살.

부부의 몸 곳곳에 난 상처가 범행의 잔인함을 증명했다. 화재는 증거를 없애기 위한 범인의 방책이었다.

당시 수사를 책임졌던 고기철 경기남부지방경찰청 형사과장(현 제주지방경찰청 차장)은 “현장에 타살 흔적이 곳곳에 있었지만 범인을 특정할 증거는 없었다”고 당시 기억을 회상했다.

“사건 보고를 받고 이튿날 아침 곧바로 현장에 갔다. 범인은 증거를 없애기 위해 불을 질렀다. 범인을 특정할 명확한 증거는 보이지 않았다. 원한에 의한 살인인가, 면식범인가, 치정인가. 수사의 방향성을 잡는 게 급선무였다.”

마땅한 증거가 나오지 않자 프로파일러가 투입되고 2차 감식이 이뤄졌다.

감식에서 범인이 혈흔을 묻힌 채 장롱을 뒤진 흔적이 발견됐다. 금품 목적일 수 있다는 판단이 섰다.

“피해 장소와 150m 가량 떨어진 주택에서 이전에 절도사건이 발생해 안산경찰서에서 수사 중이었다. 족적과 침임 방법 등을 비교했을 때 동일범일 수 있다고 판단했다.”

(사진=자료사진)

 

경찰은 마을에 있는 CCTV를 샅샅이 뒤졌다. 사전답사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이전 영상까지 백업해 분석했다. 초기 40여명의 수사 인력은 80명까지 확대됐다.

동네 진입 도로, 산과 연결된 통로와 그 길목에 설치된 CCTV까지 모조리 봤지만 소득은 없었다. 동네 사람들을 대상으로 탐문까지 벌였지만 범인의 뒤꽁무니조차 잡히지 않았다. 용의선상에 몇몇이 올라왔지만 모두 허탕이었다.

“사건이 일주일정도 지나면 초조함이 밀려온다. 광범위한 작업에도 소득이 없어 두려웠다. 그래도 처음부터 놓치지 않았던 게 하나있다. 바로 범인이 사용한 흉기와 장갑. 이것이 분명 어딘가에 버려져 있을 거라 생각했다.”

고 차장은 관할 행정에서 실시하는 제초작업자들에게 협조를 요청했다. 마을 어딘가에 범행 도구가 버려졌을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의경과 경찰관 중대 수백명을 동원해 도주로 구획을 나눠 대대적인 수색도 벌였다.

고 차장 본인도 날마다 회의를 마치고 현장에 직접 나가 낫을 들고 풀을 벴다. 그해 여름은 고 차장에게 여느 때보다 무더웠다.

제주지방경찰청 고기철 차장 (사진=제주지방경찰청)

 


“사건 발생 8일째 꿈을 꿨다. 동료들과 범행 현장 인근에서 모여 회의를 하던 원두막이 있었는데, 그곳에 한 여성이 술상을 들고 오는 꿈이었다. ‘누구냐’고 물었더니 ‘피해자 안사람’이라고 말했다. 돌아가신 피해자 부인이었다. 술상에 맛있는 안주가 잔뜩 있었는데, 정작 술은 보이지 않았다. 꿈을 꾼 다음날 그 원두막에서 다시 모였다. 수사과장에게 꿈 이야길 했더니 ‘일을 해야 하니까 술은 주시지 않은 것 같고, 열심히 수사하고 있으니 감사의 표시로 꿈에 나오신 것 아니겠느냐’고 말하더라. 그리고 그날 오후 흉기를 발견했다.”

사건 발생 9일째인 8월 9일 오후 2시. 풀을 베던 안성시 용역팀에서 연락이 왔다.

피해자의 집 인근 300m 거리에서 결정적 단서인 흉기가 발견된 것이다.

경찰이 흉기를 습득하고 몇분 뒤 곧바로 호우가 쏟아졌다.

“흉기가 발견된 날이 예초기 작업자들과의 계약기간 마지막 날이었다. 그리고 흉기를 발견하자마자 폭포같은 비가 내렸다. 비가 오면 작업이 중단되고, 혈흔도 씻겨 내려갈 수 있었다. 정말 마지막 기회에 물증을 확보했다."

흉기가 발견된 다음날 인근 아파트 15층에서 50대 남성의 투신 소동이 벌어졌다.

남성은 현직 소방관 최모(50, 당시 나이)씨. 공교롭게도 그는 전원주택 화재 발생 최초 신고자였다.

최씨는 아버지가 묻힌 인근 선산에서 제초제를 먹고 투신 소동을 벌였다. 아파트 15층에서 뛰어내렸으나 14층 복도에 걸렸고, 재차 뛰어내렸지만 13층 복도에 걸려 경찰에 붙잡혔다.

그가 바로 부부살인 사건의 범인이었던 것이다.

최씨는 수사망이 좁혀오자 압박을 느껴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했지만 결국 경찰에 붙잡혔다.

수사결과 최씨는 지난 2009년부터 동료 소방관들과 도박을 벌이다 수억원대의 빚을 져 강도짓을 하다 부부를 살해하고 불을 지른 것으로 드러났다.

최씨는 사건 이후 정상적으로 업무에 복귀하고 피해자 부부의 장례식장까지 찾아간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안겼다.

'소방관 살인방화 사건’은 그렇게 세상에 드러났다. 현재 최씨는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옥살이를 하고 있다.

◇ "범인은 사명감 없으면 놓친다. 반드시 놓친다"

이야기를 마친 고 차장은 “당시 사건을 마무리하고 담배를 끊었다”고 말했다. 사건을 맡으며 평생 태울 양의 담배를 피웠기 때문이다. 수사 과정이 그만큼 초조하고 두렵고, 절실했다는 뜻이다.

“묵묵히 열심히 일하는 집단이 경찰이다. 그리고 그중에 형사들이 있다. 내가 그때 느꼈던 형사들이 그런 친구들이다. 촘촘히 구획을 나누고 그물망을 깔아도 결국 사람이 하는 거다. 자기 일처럼 사명감을 갖고 임했기 때문에 물증을 확보하고 범인도 잡은 거다. 사명감이 없으면 범인은 놓치게 돼있다. 분명히 놓친다. 여러 후배 경찰들 또한 깊은 사명감을 갖고 사건에 임했으면 한다. 자신의 일처럼 현장을 누비는 형사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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