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도 나도 급식봉사…구호현장 '풍족의 역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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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지진 당시 단체 간 갈등으로도 비화… "그림 잘 나오니깐"

지난 11월 16일 경북 포항시 북구 북쪽 9㎞ 지역에서 규모 5.4의 지진이 발생한 가운데, 흥해실내체육관 임시대피소에 이재민들이 대피해 있다. (사진=박종민 기자)

 

경북 포항에 강진이 덮친 지난 11월 15일, 도로는 갈라졌고 건물은 파괴됐다. 공포에 휩싸인 이재민은 거리와 체육관으로 쏟아졌고 이들을 위해 전국에서 구호의 손길이 모였다.

하지만 어쩐 이유에선지 한 달여 가 흐른 지금, 구호에 나섰던 봉사단체 관계자들은 당시를 "실망과 아쉬움이 남는 현장"으로 기억하고 있다.

◇ 급식봉사 진행 중인데 또 급식봉사?

평소 경북에서 단체급식업체를 운영해오던 A 씨는 지진의 공포가 덮친 지난달 15일 포항으로 향했다. 지역에서도 무료급식봉사를 해왔던 그였기에 이날도 이재민들을 위해 발 벗고 나선 것.

포항 흥해실내체육관에 '사랑의 밥차'를 연 A 씨는 850인분의 첫 급식봉사로 활동을 시작했고 이때까지만 해도 순탄하게 진행될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이내 벌어진 광경에 "너무 큰 실망감에 휩싸였다"고 털어놨다.

A 씨를 선두로 다음날부터 전국에서 줄지어 급식봉사단체가 포항에 모여들었다. 재난 발생 사흘째 되던 날인 18일에는 대한적십자사도 급식봉사에 합류했다. 종교단체도 여럿 눈에 띄었다.

이후 각자 이재민들을 위한 식사를 마련하면서 현장에선 자연스레 이재민 분(分) 보다 많은 양의 식사가 공급됐다. 봉사에 참여했던 한 관계자는 "귤같은 과일의 경우는 너무 많이 남아 다른데로 보내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실제 봉사 현장에서는 "급식봉사가 그림이 잘 나와 단체홍보에 효과적"이라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결국 음식이 남는 것은 물론 단체 간 갈등으로까지 번졌다. A 씨는 "적십자에서 돌연 찾아와 식사량을 조절하자며 현장에서 빠지라고 했다"며 "사흘이나 늦게 와서는 급식봉사를 자신들이 맡겠다며 자리를 비우라고 한 것"이라고 밝혔다.

결국 급식봉사를 접고 지역으로 돌아간 그는 당시를 떠올리며 "규모가 큰 단체는 다른 형태의 봉사로도 이재민을 도울 수 있었기에 도통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라고 토로했다.

지난 11월 16일 경북 포항시 북구 북쪽 9㎞ 지역에서 규모 5.4의 지진이 발생한 가운데, 경북 포항시 흥해읍 한 아파트에서 한 이재민의 세간살이가 옮겨지고 있다. (사진=박종민 기자)

 

◇ 결국 서비스 중복‧구멍 문제… "정부가 교통정리 해야"

한 종합복지관 관계자는 당시 현장을 "100원이 필요하면 1000원이 공급되던 상황"이라고 표현했다. 결국 모두 급식봉사를 하면서 서비스 중복은 물론 단체끼리 마찰도 빚은 것이라는 설명이다.

이를 두고 전문가들은 구호현장에서 흔히 발생하는 상황이라며 정부가 나서서 서비스 중복과 구멍 문제를 해결‧조정해야한다고 설명한다.

강철희 연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서비스‧자원의 중복과 빈 공간 문제는 단체 간 코디네이션(조정‧Coordination)이 부족해 발생한 것"이라며 "자원봉사도 조정이나 통합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결국 정부가 나서서 서비스의 중복이 없도록 교통정리 역할을 해야한다"며 "해외의 경우는 정부나 규모가 큰 단체가 나서서 리더 역할을 해 이러한 일을 막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영국은 정부가 나서 자원봉사단체 등 민간영역과의 파트너십 강화는 물론 규제에도 힘쓰고 있다. 실제 매년 홍수피해를 입고 있는 영국 서머셋 주(州)는 매년 '공무원 자원봉사자의 날'을 맞아 공무원을 상대로 자원봉사자 선정과 관리법을 교육한다.

영국은 정부와 학계 차원의 연구도 활발하다. 영국 맨체스터 경영대학원은 올해 재난현장 가이드라인 연구결과를 통해 '이전에 발생한 비슷한 성격의 재난상황을 토대로 봉사자들의 예상치를 계산해 관리·배치', '자원봉사자를 조직화하기 위해 명확한 의사소통 라인 구축'을 핵심으로 꼽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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