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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테크 하려다…" 가상화폐 중독된 주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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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1위 거래소라서 믿었다가 '낭패', 본전 생각에 계속 매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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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등락폭이 워낙 심하니까, 내가 자는 시간에도 막 떨어지거나 오를지 모르니까 불안하죠. 새벽 4시쯤 또 거래가 막 이뤄지는 시간이라서 자다가도 4시쯤 벌떡 일어나서 체크해서 팔 거 팔고요."

워킹맘 김모(44.여)씨는 올해 초 언니를 통해 가상화폐인 비트코인을 처음 알게 됐다. 재테크를 하려고 대출을 받아 재건축 예정인 아파트를 샀지만, 집값은 오르지 않고 이자만 물게 되자 다른 재테크 방법을 알아보던 차였다.

김씨가 비트코인 거래에 투자한 돈은 5천만원. 대출을 받았다. 올해 초 가상화폐 거래소에 가입해 계정을 만들고 혼자 유튜브와 인터넷으로 공부를 한 뒤 거래를 시작했다. 평소 직장에 다니는 김씨는 근무시간에도 휴대전화를 놓치 못하고 수시로 비트코인 시세를 확인했다.

"쉬는 시간, 점심 시간, 출퇴근 시간에 수시로 휴대전화를 보며 확인하고, 만약 일하는 시간대 등락폭이 있을 것 같다 싶으면 미리 매도를 걸어놔요. 중독성이 너무 심한게 떨어질 수도 있지만 급등할 수도 있으니까 몇배의 차익을 벌 수도 있다는 생각에 벗어나질 못하는 거에요"

◇가상화폐 투자 열풍, 재테크 찾던 주부들에게 '직격탄'

 

가상화폐 투자 열풍에 주부들도 휩쓸리고 있다. '빗썸 서버다운 집단소송 피해자 대책위원회' 피해자들 가운데 주부들의 비율은 3분의 1이 넘는다. 김씨처럼 재테크를 해보겠다거나 소소한 용돈벌이를 하겠다고 시작했다가, 원금 손해를 보고 '본전' 생각 때문에 가상화폐 거래에 매달리는 식이다.

주부 윤모(37.여)씨도 아이들 학비 등에 보태려고 들었던 적금과 생활비를 조금씩 모아 가상화폐 가운데 하나인 비트코인캐쉬에 약 2500만원을 투자했다가 1000만원 넘게 손해를 봤다.

윤씨는 "큰 애가 초등학교 들어가면 사교육비가 많이 들 거 같아서 그거 한 번 벌어보겠다고 투자를 한건데, 낮에는 애 둘을 돌보며 계속 컴퓨터를 보고 밤에도 수시로 휴대전화를 보며 거래 급등락을 확인하니 정신적으로 너무나 피폐해졌다"고 말했다.

특히 윤씨는 지난달 국내 최대 가상화폐거래소 빗썸의 서버 다운으로 인해 손해를 입어 집단소송까지 제기한 상태다. 그는 "신랑 얼굴도 못 보겠고 가정이 파탄 날뻔 했다. 눈물만 나고 극단적인 생각이 날 정도로 일상생활이 힘들었다. 진짜 며칠을 앓아누웠다가 결국 카드론을 대출 받아 메웠다"고 힘겹게 말했다.

가상화폐가 뭔지 몰라도 손쉬운 가입을 통해 돈을 벌 수 있다는 무용담은 인터넷을 통해 빠르게 퍼지고 있다. 수십만명이 활동하고 있는 비트코인 관련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아이를 돌보며 얼마를 벌었다는 '자랑 글'부터, 용돈벌이를 해보겠다고 비트코인 거래를 시작했다는 주부들의 '신고 글'이 매일 수십개씩 올라온다.

한 주부는 "아이들 선물 사주겠다고 틈틈이 모은 돈으로 비캐(비트코인캐시)를 구매했다가 지금은 원금 250만원이 사라졌네요. 주말부터 3일 동안 휴대전화만 보고 있자니 몸살도 온다"며 자신의 상황을 전했다. 댓글에도 똑같은 주부라며 "저도 비캐로 현재까지 원금 1700만원 손해봐서 몸도 마음도 바닥이에요. 매도하자니 본전 생각에 어찌해야할 지모르겠어요"라고 글이 달렸다.

◇ 가상화폐 투자 초보자들, 거래소가 '법적 사각지대'인지도 몰라

문제는 이들이 범죄의 표적으로 쉽게 노출되고 있다는 점이다. 비트코인 관련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주부나 초보자들을 대상으로 '비트코인으로 돈을 벌 수 있게 해주겠다'고 강의비를 내라고 하거나 신종 코인에 투자하라며 투자를 유도하는 글이 계속해서 올라온다.

이를테면 "육아 때문에 경력이 단절되신 주부들이 시대에 발맞춰 뛰어들어 돈을 벌 때다"라거나 "최소 월 500을 목표로 수익이 날 때까지 이끌어준다"고 유혹한다. 또 "신종 코인이 나왔는데 정부에서 인증도 받은 것"이라며 "지인을 모집하면 코인 얼마를 준다"는 방법으로 불법다단계 회원 모집을 노골적으로 권유하고 있다.

이러한 유혹에 손쉽게 넘어가는 이유는 비트코인 등 가상화폐에 투자하겠다는 주부 및 초보자들 대다수가 가상화폐가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한다는 등의 기본적 내용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어서다.

또 가상화폐 거래소가 '법의 사각지대'에 있다는 점도 투자자들은 문제점으로 꼽는다. 투자자 상당수는 가상화폐 거래소가 정부의 인가나 규제를 받을 만한 법적 근거도 없이 운영된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는 실정이다.

투자자들은 가상화폐 거래소가 수시로 시스템 문제를 일으켰는데도 이에 대한 제대로 된 보상조차 이뤄지지 못하는 것을 보고 나서야 거래소가 안전한 곳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입을 모았다.

이모(61.여)씨는 "국내 1위 가상화폐 거래소라고 하고 홈페이지 타이틀에도 '투자자의 자산을 보호해준다'고 써놓은 걸 보고 그래도 믿을만 하다고 해서 투자한 것"이라며 황당해했다. 그러면서 "거래소는 자신들의 시스템 잘못인데 보상을 안해준다 하지, 국가는 나몰라라 하지. 정말 분통이 터진다"고 소리 높였다.

주부들을 포함해 가상화폐 투자를 했다가 낭패를 본 피해 사례는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지만, 정부의 법안 제정 및 규제 움직임은 더디기만 하다.

이미 가상화폐 투자로 인한 부작용이 예고된 상황이었는데도 '관련 법이 없다'고 버티고만 있다가 최근 집단 소송 등 피해자 속출하자 '유사수신 행위 등 규제법'을 제정하려고 준비 중이다. 이러한 법의 사각지대 속에서 가상화폐 거래소 배만 불리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순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현재의 가상화폐 거래소는 온라인 쇼핑몰과 같은 법적 지위만 있을 뿐, 법적 의무를 부과할 수 없는 한계가 있다"면서 "어떤 형태로 법안을 만들지 논란이 많지만, 가장 시급한 건 불완전 판매에 대한 조치를 취해야한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소비자가 피해를 더 이상 입지 않도록 정부가 빨리 손을 써야 한다"고 말했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가상화폐 관련 민원이 들어온다 해도 금감원이 조사할 권한이 없다"면서 "이 때문에 정부가 법안 마련을 추진 중인 상황이다. 현재는 법적으로 보장돼 있지 않은 상품에 투자를 할 때는 유의하라고 조언드릴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한편, 블룸버그통신은 6일(현지시간) "한국만큼 비트코인에 빠진 나라는 없다"며 "가상화폐 정보업체인 코인마켓캡닷컴(Coinmarketcap.com)의 자료를 인용해 이날 하루 전 세계 비트코인 거래의 21%가 한국에서 이뤄졌다고 보도했다.

블룸버그는 또 "한국에서의 비트코인 시세는 국제시세보다 약 23% 프리미엄이 붙는다"면서 "한국은 세계 어느 곳보다 비트코인 등 가상화폐에 대한 격렬한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글로벌 가상화폐 마니아들 사이에서 한국은 일종의 '그라운드 제로(핵폭발의 중심 지점)"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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