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자료사진)
대구에서 자영업으로 생계를 잇는 A(35·여) 씨는 11월 20일 오전 10시 경찰에서 걸려온 느닷없는 전화를 받고 심장이 방망이질 쳤다.
"당신 계좌가 사기 범죄에 이용됐으니 모든 예금을 인출해 금융감독원에 맡겨라"고 재촉하는 내용이었다.
연금보험으로 부은 3500만 원을 해약하려면 이틀이 걸린다는 은행 측 설명을 듣고 A 씨는 속이 탔다.
모 시중 은행에 넣어 둔 예금 1200만 원만 우선 꺼내 찾아온 금감원 직원에게 넘겼다.
얼떨떨한 정신을 수습하니 의심이 싹텄고 경찰에 신고하니 보이스피싱에 당한 사실을 알았다.
굿 뒤에 날장구 격으로 허탈해진 A 씨에게 경찰이 제안을 했다. 남은 3500만 원으로 덫을 놓자는 얘기였다.
작업에 착수한 경찰이 시나리오를 짜 피해자와 은행에 역할을 나눠줬다.
이틀 뒤인 22일 사기 일당이 미끼를 물었다. 3500만 원을 찾았느냐고 확인 전화를 해온 것이다.
현장이 긴박하게 돌아갔다. 사복 경찰관 여럿을 금융기관과 주변에 배치했고 피해자와 은행도 작전대로 움직였다.
보일 듯 말 듯 시간을 끄는 일당에게 은행 직원이 만들어 준 가짜 입금 자료를 SNS로 보내줘 의심을 피했다.
밀고 당기기 끝에 이날 오후 2시쯤 금감원 직원 행세를 하는 조직 수거책이 대구 달서구의 한 인도에 모습을 드러냈다. 잠복한 경찰이 벼락처럼 덮쳤다.
얼이 빠진 표정을 짓는 쪽은 이번엔 피해자가 아니라 사기 조직원이었다.
30일 대구 성서경찰서는 사기 혐의로 보이스피싱 조직원 황모(52) 씨를 구속했다.
황 씨는 11월 14일부터 22일까지 서울, 부산, 김천 등지를 돌며 피해자 5명에게서 1억 4200만 원을 가로챘다.
성서서 이영기 지능팀장은 "이미 한 차례 속인 여성을 일당이 또 노릴지 우리도 반신반의했다"며 "연금보험금도 인출했다는 가짜 자료에 속아 빗장을 푼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