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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순병 살린 외상센터…2살 '민건이'는 왜 못살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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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에게 일 몰리는 구조…피해자는 힘없는 환자들"

이국종 경기남부권역외상센터장이 22일 오전 경기 수원 아주대학교병원 아주홀 브리핑실에서 귀순 북한 병사 병실에 태극기가 걸려놓은 사진을 보여주고 있다. (사진=이한형 기자)

 

최근 공동경비구역(JSA)에서 여러 발의 총을 맞고 귀순한 북한 병사의 몸 상태가 진료 이후 호전되면서 중증외상센터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외상진료 시스템이 자리 잡지 못하면서 인력과 시설이 적절한 곳에 투입되지 못하고 있는 현실 앞에 현장 의료진들은 신음하고 있다.

◇ '속 빈 강정'…의사·수술실 없는 외상센터

"사실 여러분은 이 환자에게만 포커스가 맞춰져 있지만, 제가 어젯밤에 출동해서 데리고 온 환자, 저희 의료진들이 사투를 벌이고 있는 그 환자는 생명을 잃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저희에게 지금 그런 환자가 150여 명이 있습니다"

"저희 병원에는 전공의가 거의 없습니다. 저희는 전공의가 없습니다. 외과는 비인기 종목입니다. 중증외상센터는 한국에서는 지속가능성이 없습니다"

총상을 입은 귀순병사를 살려낸 아주대 권역외상센터장 이국종 교수는 지난 22일 언론브리핑에서 이처럼 작심한 듯 격정을 토로했다.

중증외상센터란 교통사고나 추락·총상 등 치명적인 외상을 입은 응급환자를 신속한 응급수술을 통해 치료하도록 인력과 장비를 갖춘 곳이다.

우리나라에선 '아덴만의 여명' 작전에서 크게 다친 석해균 선장이 이 센터에서 치료된 뒤 관심을 모았고, 정부가 2012년부터 2천억 원의 예산을 들여 권역별 설치 지원사업에 착수했다.

하지만 전국에 지정을 목표로 한 권역외상센터 17곳 가운데 현재 공식 운영중인 센터는 9곳에 불과한 상황. 이마저도 막상 환자가 실려왔을 때 인력이나 시설이 준비되지 못한 경우가 상당하다.

전담 전문의 필수인력 기준으로 제시된 20명을 채운 곳은 9곳의 센터 가운데 단 한 곳도 없는 형편이다.

중증외상 분야가 의사들 사이에서 '기피 대상'으로 꼽히기 때문이다. 외상센터는 특성상 365일, 24시간 당직근무 체제가 유지돼야 하는데 극소수의 인원이 투입되다 보니 격무에 시달리기 일쑤다.

그렇다고 성과급이 높은 것도 아니고 추후 개인병원 개업도 쉽지 않은 터라 일부에게는 교수 임용을 위해 '거쳐가는 코스'로 전락해버렸다. 이처럼 기피와 격무의 악순환은 반복되고 있다.

여기에 병원 입장에서도 외상센터는 환자 회전율이나 수가가 높지 않기 때문에 수익성이 높지 않은 탓에 담당 전문의 뿐만 아니라 침상, 수술실 등을 다른 분야에 활용하고 있는 형편이다. 물론 모두 불법이다.

이 교수는 지난해 CBS노컷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두개골이나 골반이 다 부서지고 뇌출혈이 터져 나온 중증외상환자들에게는 응급실만 크게 지어놓아 봐야 소용없다. 전문 외상의사들이 빨리 가서 머리부터 발끝까지 봐야 한다"며 "국제 표준지침에 따르지 않을 거면 외상센터는 운영할 필요가 없다"고 일갈했다.

◇ 이송거부, 거부, 거부, 거부, …, 사망

(사진=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 영상 캡처/자료사진)

 

실제로 지난해 9월 30일 오후 5시쯤 전북 전주에서 교통사고를 당한 故김민건(당시 2세) 군의 경우 외상센터로 옮겨져 수술대에 오르기까지 무려 7시간이나 걸렸다.

후진하던 견인차에 치여 골반이 골절되고 장기 손상을 입은 김 군은 사고 직후 전북대병원 응급의료센터로 실려왔다. 하지만 병원 측은 정형외과 전문의를 호출하지도 않은 채 22분 만에 다른 병원으로 이송(전원)하기로 했다.

인근 권역외상센터였던 전남대병원과 국립의료원 등 병원 13곳에서는 해당 전문의가 없다는 등의 이유로 환자를 거부했다. 결국 이날 정오쯤에야 경기 수원에 있는 아주대병원에 도착했을 때 김 군의 심장은 이미 멈춰 있었다.

응급의료 전용헬기(닥터헬기)를 갖추지 못한 아주대병원 의료진은 경기소방재난안전대책본부와 중앙119구조대에 지원을 요청하며 발만 동동 구를 수밖에 없었다.

아주대병원이 이보다 2시간 전 처음 이송 요청을 받았던 오토바이 사고 환자는 경기 이천에서 옮겨 와 이미 응급수술까지 시작된 뒤였다. "아주대병원 가까이서 다치면 살고 지방에서 다치면 죽는다"는 자조가 의료계 안팎에서 터져 나왔다.

파문이 일자 보건복지부는 권역외상센터가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다른 병원으로 환자를 쉽게 전원하지 못하도록 하는 대책을 내놨다.

이와 함께 논란이 된 병원들의 센터 지정을 잠시 취소했다 사태가 잠잠해진 뒤 재지정했다. (관련기사 CBS노컷뉴스 16. 10. 20 전북대병원 권역응급의료센터 지정 취소는 병원이 자초한 것 등)

◇ 대책 마련한다지만…"그만둘까 고민"

(사진=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 영상 캡처/자료사진)

 

이 교수의 애끓는 성토 이후 이런 외상센터 문제를 해결해달라는 청와대 청원이 최근 20만 명을 넘어섰다. 이에 복지부는 뒤늦게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발벗고 나섰으나 안팎의 불신은 여전한 상황이다.

지방의 한 권역외상센터 관계자는 "닥터헬기 5대를 추가 지원한다는 말이 있던데 차제에 헬기 이송체계 전반을 정비하지 않는다면 이번에도 돈만 퍼붓고 끝날 것"이라며 "지난해 전원 자체를 막겠다는 어처구니 없는 대책을 내놓은 뒤에도 개선된 건 하나도 없다"고 성토했다.

이어 "복지부가 단순히 민원을 해결하는 식으로 접근하고 병원들이 미친듯이 돈에만 달려드는 동안 피해보는 건 결국 힘없는 환자들"이라며 "자원배치는 환자들을 중심으로 이뤄져야 하는 것 아니냐"고 한숨을 내쉬었다.

또 다른 외상센터 소속 전문의는 "관련법이 구체적이지 않아 소수의 의료진에게 일이 몰리고 있는데 복지부는 눈 감아 왔다"며 "너무 힘들어서 아예 그만둘까 고민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그간의 '땜질처방'이 현장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는 얘기다.

이 때문에 근본적으로는 애초 한정된 예산으로 센터 설치를 추진하면서 전국 17곳에서 '지역 나눠먹기'를 포기하지 않았던 문제가 분출된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대책 발표를 준비 중인 정부가 풀어야 할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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