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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계청이 발표한 올해 쌀 예상 생산량은 395만5천톤이다. 이는 앞으로 1년간 우리나라 적정 수요량인 375만톤 보다 20만5천톤이나 초과한 것이다.
그렇다면 당연히 산지 쌀값은 떨어져야 하는 게 시장이치에 맞다. 하지만 산지 쌀값은 계속해 오름세를 보이고 있다.
이는 정부가 공공비축미와 시장 격리물량으로 무려 72만 톤을 매입하겠다고 발표하면서 오히려 쌀 공급물량이 수요량 보다 적어졌기 때문이다.
결국 농민들은 앞으로 쌀값이 더 오를 것으로 낙관하고 수확한 쌀을 시장에 내놓지 않고 있다. 심지어는 내년에도 정부가 초과 생산된 쌀을 전량 매입해 시장 격리하면 쌀값이 더 이상 떨어지지 않고 오히려 오를 수밖에 없다는 기대심리가 확산되고 있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내년부터 쌀 대신 콩과 옥수수 등 다른 작목으로 전환하는 농가에 대해 보조금을 지급하는 ‘쌀 생산조정제’를 시행할 계획이다.
과연 농민들이 수익률 좋은 쌀농사를 포기하고 힘든 밭농사로 전환하겠느냐는 부정적인 시각이 우세하다. 정부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 3차 쌀 생산조정제, 2018~19년 시행…1ha당 340만원 책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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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 생산조정제는 문재인 정부의 100대 국정과제 중 하나로, 우선 2018년과 2019년 2년 동안 한시적으로 시행될 예정이다.
그동안 쌀 생산량이 수요량을 초과하면서 쌀값이 폭락하는 등 문제점이 많았던 만큼, 벼 재배면적을 의도적으로 줄여 결국 쌀 생산량을 줄이겠다는 방안이다.
한 마디로 논에 벼를 심는 대신 콩과 옥수수 등 밭작물로 전환하는 농가에 대해선 정부가 보조금을 지급하겠다는 정책이다.
이를 위해 우선 내년에 논 5만ha를 생산 조정하고, 2019년에는 기존 5만ha에 5만ha를 추가해서 10만ha로 확대할 계획이다.
이렇게 되면, 논 1ha당 쌀이 5톤씩 생산되는 것을 감안할 경우 내년에 5만ha를 생산조정하면 쌀 생산량이 25만톤이 줄어들게 된다. 이후 2019년에는 50만톤의 쌀 생산량이 감소하게 된다.
올해 쌀 예상 생산량이 395만5천 톤인데 비해 적정 수요량이 375만 톤인 것을 감안할 경우 우선 당장 내년에 벼 재배면적을 5만ha 줄이면 쌀 수급이 어느 정도 균형을 맞출 것으로 예상된다.
여기에 택지와 공장부지 개발 등으로 해마다 자연 감소되는 논이 대략 2만5천ha에 이르기 때문에 우선 당장 내년부터 쌀 공급량이 수요량을 밑돌고 것으로 예측된다.
농식품부는 논에 벼 대신 다른 작물을 심었을 때 소득 차이를 보전한다는 방침으로 1㏊당 평균 375만원을 책정했지만, 기획재정부 협의 과정에서 340만원씩 모두 1천700여 억원을 편성했다.
◇ 쌀값 상승세, 생산조정제 시작부터 암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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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농식품부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올해 수확기 쌀값이 오르고 있는데 과연 농민들이 내년에 쌀 대신 다른 작물로 전환할 것인지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25일 기준 산지 쌀값은 80㎏ 한 가마에 15만1천164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의 12만9천628원 보다 16.6%나 급등했다. 열흘 전인 지난 15일에 비해서도 180원이나 올랐다.
정부가 지난달 28일 발표한 쌀 수급대책을 통해 올해 생산된 쌀 가운데 72만톤을 매입해서 시장 격리하겠다고 밝힌 이후에 농민들이 쌀값 상승을 기대해서 시장에 쌀을 출하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농식품부와 농민단체 등에 따르면, 이 같은 가격 상승세가 이어질 경우 내년 단경기(6~8월)에는 80㎏ 한 가마에 17만원 이상 형성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는 농민들 입장에서 쌀이 매우 매력적인 농사라는 얘기가 된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추진하는 '쌀 생산조정제'가 제대로 효과를 발휘할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아직까지는 부정적인 기류가 강하다.
실제로,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논벼의 1ha당 총수입은 856만원으로 경영비와 인건비 등을 제외한 소득은 429만원에 달했다. 여기에 정부가 고정직불금 100만원과 변동직불금 211만원을 지원했기 때문에 전체 소득은 740만원에 달했다.
이에 반해 대표적인 밭작물인 콩의 경우 1ha당 총수입이 614만원으로 경영비와 인건비를 제외한 소득은 391만원에 머물렀다.
정부가 앞으로 쌀 생산조정제에 참여하는 농가가 콩을 심을 경우 340만원을 지원한다고 해도 731만원으로 쌀농사에 비해 소득이 줄어들게 된다.
하지만 농식품부는 생산조정제가 콩으로 몰릴 경우 과잉생산에 따른 콩값 하락이 예상되기 때문에 조정제 지원금 340만원을 전액 지원할 수 없고 하향 조정하겠다는 계획이다.
◇ 농민, 쌀 생산조정제 참여 기피 분위기…소득 높은 쌀농사 포기 안해이에 대해 농민단체 관계자는 "쌀 농사를 짓기 위해 그동안 농기계 투자비용이 엄청나게 들어갔는데, 밭작물로 전환할 경우에는 농기계 값까지 보전해 줘야 한다"며 "정부가 책정한 생산조정제 평균 지원금 340만원은 턱없이 부족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따라서 "농민들이 쌀농사 대신 다른 작목으로 전환하도록 유도하기 위해서는 콩 농사를 짓든 옥수수를 심던지 간에 쌀농사 보다 1ha당 소득이 적어도 100만원 이상 나와야 한다"며 "정부가 차액을 충분하게 보상해주지 않는다면 생산조정제에 참여할 농민들은 없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지난 2003~2005년에 이어 2011~2013년에 실시됐던 2차 생산조정제의 경우도 2013년에 전환 목표 면적을 1만3천800ha로 잡았지만, 바로 직전인 2012년에 3개의 태풍이 연속적으로 발생하면서 쌀 생산량 감소에 따른 쌀값 상승으로 실제 시행면적은 7천800ha에 불과했다.
이에 전문가들은 쌀 생산조정제가 발등의 불을 끄기 위한 '임시방편'에 불과하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특히, 내년에 본격 논의될 것으로 예상되는 쌀 목표가격 인상과 생산조정제는 양립할 수 없다는 견해가 우세하다.
목표가격 인상은 결과적으로 쌀 생산을 장려하는 정책이고, 생산조정제는 쌀 생산을 제한하는 상호 모순되는 성격이기 때문이다.
민간농업연구소 GS&J 이정환 이사장은 "생산조정제는 쌀값이 급락하는 상황에서 어쩔 수 없이 선택한 '긴급피난 대책'에 지나지 않는다"며 "그런데 올해처럼 쌀값이 오르고 있는데 농민들이 참여할 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러면서 "정부가 2019년까지 시행하기로 한 만큼 2020년에 이 제도를 계획대로 중단할 수 있는 출구전략을 지금부터 확실하게 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