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부정권 감시에도 '전두환 그따위 뉴스' 발언 내보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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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10-20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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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뉴스 부활 30주년 특집 좌담 'CBS 저널리즘과 한국의 민주주의' ①

- '전두환으로 시작해 이순자로 끝나는 그따위 뉴스' 시민 발언도 방송
- '뉴스 빼앗긴 7년..광야의 40년과 같았다'
- 보도 기능 지키려 프로그램 제목도 바꿔가며 버텨
- 처음 정부 인가받을 때 시사 뉴스 보도 허가 받아
- CBS는 출발부터 '저널리즘'을 안고 시작
- 80년대 언론사 사주들 소환.. 강제로 '통폐합' 지장 찍게 해

 

CBS 라디오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

■ 방 송 : FM 98.1 (18:30~19:55)
■ 방송일 : 2017년 10월 19일 (목)
■ 진 행 : 정관용 (한림국제대학원대학교 교수)
■ 출 연 : 강대인 미디어시민모임 이사장, 황우선 교수(대덕대), 변상욱 대기자(CBS)

"이 모든 보도 기능이 오늘로 종결되고 역사적인 마침표를 찍으면서 기독교방송 CBS 보도가 우리나라 방송 언론사에 한 페이지를 차지할 것으로 믿습니다. 그동안 저희 기독교방송을 아껴주시고 성원해주신 애청자 여러분에게 뜨거운 감사를 드립니다"
[1980.11.25. CBS 마지막 뉴스를 전한 장미영 아나운서 음성]

◇ 정관용> 청취자 분들 깜짝 놀라셨죠? 방금 울먹울먹하며 뉴스 마지막을 장식한 1980년 그러니까 지금부터 딱 37년 전에 CBS의 마지막 뉴스였습니다. 신군부가 언론 통폐합 조치로 CBS로부터 보도 기능을 강제로 빼앗았습니다. 그 마지막 뉴스 장미영 아나운서의 목소리로 지금 함께 들어보셨고요. 그리고 7년 만에 CBS뉴스를 다시 살려내라 이런 시민들의 요구로 CBS뉴스가 다시 부활하게 됩니다.

"기독교방송 뉴스가 지난 1980년 언론 통폐합 조치로 중단된 지 만 6년 11개월 만인 오늘부터 서울, 부산, 대구, 광주, 이리국 등 전국 방송망을 통해 방송되고 있습니다"
[1987.10.19. CBS 뉴스 부활을 알린 변춘애 아나운서 음성]

바로 이것이 CBS뉴스가 다시 살아난 첫날 1987년 10월 19일 지금부터 정확히 30년 전 변춘애 아나운서의 목소리로 부활된 뉴스의 첫 시작을 여러분이 함께 들으셨습니다. 그래서 오늘 저녁에 특별한 순서를 마련했습니다.

(사진=자료사진)

 

CBS뉴스 부활 30주년 특집 좌담. 'CBS 저널리즘과 한국의 민주주의'라고 하는 제목을 붙여봤는데요. 세 분 손님을 모셨습니다. 한 분, 한 분이 참 소중한 분들이세요. 저희 CBS 출신이시고요. 초대 방송위원회의 부위원장 그리고 위원장도 맡으신 바 있습니다. 지금 현재는 미디어시민모임의 이사장 맡고 계신 강대인 이사장 오늘 모셨습니다. 어서 오십시오.

◆ 강대인> 안녕하십니까. 반갑습니다.

◇ 정관용> 그리고 대덕대학교의 황우선 교수님 어서 오십시오.

◆ 황우선> 안녕하십니까. 황우선입니다.

◇ 정관용> 여러분 잘 아시죠? 저희 CBS의 변상욱 대기자 어서 오십시오.

◆ 변상욱> 안녕하십니까.

◇ 정관용> 먼저 강대인 이사장님 CBS에 몇 년도에 입사하셨던 거예요?

◆ 강대인> 예. 제가 방송생활을 69년에 시작했는데요. 극동방송에서 PD로 출발을 했고요. 서울대에서 석사 마치고 인도에 한 1년 다시 공부하러 갔다가 귀국하면서 CBS에 합류가 됐습니다. 73년부터 이제 편성부 차장, 편성부장, 기획심의실장 이런 것을 지냈습니다.

◇ 정관용> 그럼 PD 출신이세요?

◆ 강대인> 예, 그렇습니다. PD 출신입니다.

◇ 정관용> 80년까지 계셨어요?

◆ 강대인> 80년 언론 통폐합하면서 제가 회사를 떠나게 됐습니다.

◇ 정관용> 해직 당하신 겁니까 아니면?

미디어시민모임 강대인 이사장 (사진=시사자키)

 

◆ 강대인> 해직 당한 건 아니고요. 그런 언론 상황을 도무지 감당할 수가 없어서 대학으로 가는 기회가 생기고 그래서 CBS하고 작별을 고하게 됐습니다. 오늘 처음에 80년 마지막 방송하던 장미영 아나운서의 목소리. 또 뉴스가 부활했던 87년의 변춘애 아나운서의 목소리. 다 새롭고 참 감격스럽네요. 다 사랑하고 좋아하던 후배들인데.

◇ 정관용> 그리고 우리 대덕대 황우선 교수님은 기독교 저널리즘 쪽 연구를 하셔서 CBS에 관한 논문도 많이 쓰셨더라고요.

◆ 황우선> 많지는 않지만 꾸준히 연구하고 있습니다.

◇ 정관용> 통폐합되고 부활되고 그런 배경이라든지 CBS가 처음 탄생하게 된 계기라든지 이런 것들에 대해서 도움 말씀 주시기 바라겠고요. 변상욱 대기자께서는 몇 년 입사세요?

◆ 변상욱> 저는 83년 입사입니다.

◇ 정관용> 83년. 그럼 보도 기능이 없을 때잖아요.

◆ 변상욱> 그렇죠.

◇ 정관용> 그럼 뭘로 들어오신 거예요. 기자?

(좌) 변상욱 대기자 (우) 황우선 교수 (사진=시사자키)

 

◆ 변상욱> 그때는 기자를 뽑는 것 자체가 불법이었으니까요, CBS는. 그래서 PD를 뽑는다고 하길래 사실 MBC 준비하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갑자기 CBS 공고가 났는데 사실 뽑을 수 있는 상황의 회사가 아니라고 생각했거든요, 다들 대학에서. 그런데 갑자기 공고가 나서 그래, 군부정권이 이렇게 짓밟고 있는 상황에서 CBS로 가자 하고 왔는데.

◇ 정관용> PD로 입사하신 거예요?

◆ 변상욱> 네. PD로 입사했는데 갑자기 아티클을 나눠주면서 기사로 바꿔보라고 합격자들한테. 첫 출근했는데. 썼더니 그대는 따로 이쪽으로 와서 기자교육을 따로 받아야겠다. 기자반, PD반을 우선 하고 있어라 이렇게 돼서 기자생활을.

◇ 정관용> 보도기능을 뺏겼습니다마는 뭔가는 하고 있었다?

◆ 변상욱> 왜냐하면 84년이 CBS 30주년이거든요. 그러니까 29년쯤에서 뭔가를 해야겠다는 마음을 먹고 사람들을 뽑아서 충원을 시작하려는 그런 단계였다고 봐야죠.

◇ 정관용> 방금 84년이 CBS 30주년이라는 얘기는 54년에 만들어졌다.

◆ 변상욱> 그렇죠. 창사 30주년.

대덕대 황우선 교수 (사진=시사자키)

 

◇ 정관용> 황 교수님 설명해 주세요. 54년에 어떻게 해서 CBS는 만들어지게 된 건지.

◆ 황우선> 원래 미국의 선교부에서 한국에 방송국 창설을 제안을 했습니다. 한국 교회 측에요. 당시 한국 교회에서는 신문을 원했습니다. 전통적인 매체이기도 하고 앞서서 이미 한국 교회에서는 기독신문을 비롯해서 오랫동안 신문을 통해서 선교 활동 또 저널리즘 활동을 했었거든요. 그래서 신문을 더 선호했었는데 하지만 당시에 상황이 남북으로 이제 분단이 됐고요.

또 그런 상황에서 왕래 자체가 이제 불가능한 상황에서 미국 선교부 쪽에서는 일단 전파를 이용한 라디오를 통해서 복음 전하기를 원했거든요. 그런 가운데 미국에서 또 미국 선교부 쪽에서 한국 교회에 그런 라디오방송의 필요성을 또 이렇게 전하면서 한국 교회가 그걸 받아들였죠. 그러면서 한국 교회가 예전에는 신문 위주로 해서 그런 저널리즘 활동했다면 1954년 이후에는 바로 CBS를 통해서 방송 저널리즘을 통해서 복음을 전하게 된 그런 배경이 있습니다.

◇ 정관용> 그래서 54년 CBS가 한국 최초의 민간방송이었다면서요?

◆ 황우선> 그렇습니다. 당시에는 국영방송 하나밖에 없었던 상황이고요. 그래서 이제 말하자면 독점방송 그런 환경이었는데. CBS가 기독교방송이면서 동시에 방송으로는 두 번째로 탄생했기 때문에 말하자면 독점 방송 환경이 복수 방송체제로, 방송 경쟁체제로 바뀌는 그런 한국 방송의 역사에서 굉장히 중요한 그런 역사적 역할을 하게 됐다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 정관용> 시작은 미국 선교회 쪽으로부터 제안이 왔고 초대 사장도 미국인이셨다고요.

◆ 황우선> 네, 감의도 선교사라고요.

◆ 강대인> 제가 그 부분을 조금 보완 한번 해서 말씀드릴게요. 물론 감의도, 에드워드 오토 디캠프라고 하는 선교사분이 물론 목사님이시고 또 신문방송학도 공부하신 분이신데 그분의 물론 개척자적인 그런 의지도 물론 작용했지만 한국 교회도 변화하는 미디어 환경 속에 어떻게 다양한 선교의 미디어를 가질 수 있겠느냐는 데 고민을 해 왔고 1945년 이후에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안에 라디오와 시청각위원회라는 게 만들어집니다. 라디오 시청각위원회가 그러면 어떻게 미디어를 통해서 방송 선교나 이런 걸 할 수 있겠는가. 관심을 갖다가 오토 디캠프 선교사하고 연결이 되고 그렇게 해서 원래 계획대로라면 사실은 1950년쯤에 6. 25 한국동란쯤에 CBS가 개국할 뻔했는데. 원래 49년도에 발주가 돼서 모든 방송 장비가 들어오려다가.

◇ 정관용> 전쟁 때문에.

◆ 강대인> 전쟁 때문에 그것이 들어오지 못하고 일본으로 가 있다가 그 장비가 전쟁 이후에 들어와서 준비해서 54년 12월 15일이 개국이 된 거니까 그런 역사적 과정이 있었습니다.

◇ 정관용> 알겠습니다. 방송 선교라고 지금 몇 분이 칭하셨어요. 방송 선교만 했다면 80년에 신군부가 여기서 보도 기능을 빼앗아갈 이유도 없었던 거 아니겠습니까? 그러니까 물론 첫 출범의 배경은 선교적 목적도 있었으나 방송국이 출범하고 시작하면서부터 곧장 보도 뉴스 저널리즘적 기능도 함께했던 모양이에요?

◆ 황우선> 처음에 정부로부터 인가를 받을 때 시사 뉴스를 보도할 수 있는 허가를 받았습니다.

◇ 정관용> 54년 당시부터.

◆ 황우선> 그렇습니다. 사실 그래서 CBS가 말씀하신 대로 선교 방송이면서 동시에 일반 방송 저널리즘의 역할을 이미 갖고 시작을 했고요. 사실 그러면 CBS가 왜 뉴스 부활, 보도 부활을 그렇게 원했느냐. CBS는 출발부터 그렇게 저널리즘을 안고 시작했기 때문에.

◇ 정관용> 태생적으로?

◆ 황우선> 그렇죠. 구성원들 전체가 바로 CBS 정체성의 가장 중요한 부분 중의 하나가 뉴스 보도다 하는 그런 공감대가 있고. 그런 일종의 미션, 어떤 사명의식이 있었기 때문에 이것은 반드시 회복시키고 되찾아야 한다, 지켜가야 된다 그런 사명감을 가지고 보도 부활을 한 것으로 우리가 이해할 수 있습니다.

◇ 정관용> 그러니까 강탈당한 것 맞네요. 첫 출범부터 있었기 때문에.

◆ 황우선> 네, 그렇습니다.

◇ 정관용> 80년 당시의 상황은 아마 강대인 이사장님이 가장 잘 아실 것 같은데.

◆ 강대인> 네. 아까 80년 11월 25일 마지막 낮뉴스 11시 반 뉴스를 진행한 장미영 아나운서의 울먹이는 목소리에 참 CBS를 사랑하는 많은 분들이 같마 가슴을 찡하게 하는 그런 과정이었으리라 생각이 됩니다. 우선 언론 통폐합이라고 하는 것은 그 전 해인 1979년 10. 26 박정희 대통령 시해 사건 이후에 신군부의 등장이 있었지만 사실은 한국 정치사에서는 민주주의의 복원이라고 하는 큰 여망을 이룰 수 있는 그런 계기가 아니냐. 그래서 소위 5월의 봄이라고 하는 서울의 봄. 그래서 1980년에 새로운 민주적인 정부를 수립하겠다는 꿈들을 가졌고.

그러면서 이제 언론들이 그간에 70년대의 유신시절에 암혹한 시절을 보내왔으니까 이제 제대로 된 소위 자유 언론을 구가할 수 있는 시대로 들어갈 수 있겠다 이제 그렇게 생각했는데 막상 군부의 그런 공작에 의해서 80년 들어오면서부터 이제 몇 가지 아주 비극적인 사건들이 벌어집니다. 언론인 정화운동 그래서 언론인들 비판적 활동을 해 왔던 언론인들을 신문사나 방송사에서 쫓아내는 그런 일이 벌어지게 된다든지.

◇ 정관용> 대량 해직.

◆ 강대인> 그럼요. 약 1200여 명의 언론인들이 쫓겨나는 일이 벌어지게 됐고요.

◇ 정관용> 1200명이면 참 엄청나죠.

◆ 강대인> 엄청난 숫자이죠. 그다음에 그런 강제 해직에 의해서 언론 통폐합이라고 하는 참 이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지게 됩니다. 신문사 같은 것이 한 60여 개 있던 것이 23개로 줄어든다든지 방송국 같은 경우에도 KBS로 많은 것들이 흡수 통합되어버리는데 가장 저희들이 가슴 아픈 것은 CBS가 1954년부터 정말 한국의 양심적인 목소리를 대변하고 사회 변혁과 이것을 추동해 가는 참 중요한 역할을 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언론 보도 기능을 갖다가 단절시켜버리는 그런 일이 이제 군부에서 자행된 거고. 그로 인해서 참 1980년 11월 그때를 생각하면 아직도 가슴이 벌렁벌렁 거립니다.

(사진=1980년 5·18 민주화운동 당시 CBS 로고가 찍힌 차량이 광주 시민들 사이에 놓여 있다. 당시 CBS 차량에는 광주 CBS 노병유 기자가 있었다.)

 

◇ 정관용> 어떻게 저항할 수 없었죠? 그 시점에서는. 신군부가 막 등장하던 때이기 때문에.

◆ 강대인> 그럼요. 11월 12일날 보안사에서 언론사 사주들을 다 소환시킵니다. 그리고 강제로 거기서 다 통합에 지장을 찍게끔 만드는데 그걸 거부한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죠.

◇ 정관용> 아예 CBS를 문 닫게 할 수도 있었을 텐데 뉴스 보도 기능만 빼앗게 된 무슨 계기가 있을까요?

◆ 황우선> 네. 앞서 강대인 이사장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CBS가 양심적인 소리를 냈다고 말씀하셨어요. 사실 그것이야말로 신군부 입장에서는 CBS를 없애고 싶고 또 최소한 보도를 못하게 하고 싶은 그런 이유가 됐습니다. 저는 이 양심적인 소리를 저는 진실 보도로 이렇게 네 글자 표현을 하고 싶은데요. 그렇기 때문에 국민들로부터 CBS는 굉장한 신뢰를 받고 있었고요. 그리고 또 정치권력에 대한 감시기능 역할을 통해서 한국 민주화에 계속 기여를 해 왔죠. 그런 상황에서 신군부는 어쨌든 CBS의 문을 닫게 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습니다.

◇ 정관용> 왜요?

◆ 황우선> 그 이유가 바로 CBS는 그냥 단순한 기독교방송이 아니라 한국 교회 각 교단들이 연합을 해서 말하자면 창립한 그런 라디오거든요. 그럼 CBS를 없앤다는 것은 결국 한국 교회와의 전면전을 선포하는 거나 다름없고요.

◇ 정관용> 기독교 전체와의?

◆ 황우선> 그렇습니다. 한국 교회는 또 미국 선교부와 연결돼 있고요. 또 미국 선교부는 간접적으로 미국 정부, 직접적으로는 국제사회와 연결이 돼 있기 때문에 결국은 CBS를 없앤다는 것은 바로 한국 교회 또 미국 정부, 미국 선교부, 국제사회까지 정면으로 충돌하는 그런 상황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신군부로서는 CBS를 없애지는 못했고요. 그래서 아마도 궁리 끝에 종교방송이니까 종교방송해라. 보도 빼고 광고용 하지 말아라. 그러면 고사되겠지 아마 그런 기대를 하지 않았을까 생각을 합니다.

◇ 정관용> 바로 그렇게 뉴스 보도 기능을 빼앗겼던 시점에 변상욱 대기자가 입사를 했는데.

◆ 변상욱> 왜 들어왔을까요? (웃음)

◇ 정관용> (웃음) 그런데 지금 자료나 이런 걸 보면 87년 10월이 공식적인 뉴스 부활입니다마는 그 기간 동안에도 80년에서 87년 사이에도 끊임없이 뭔가를 했다면서요?

◆ 변상욱> 80년에 언론 통폐합이 이루어지고 뉴스 기능을 완전히 박탈당했는데 사고 기록을 보면 81년부터 시작됩니다.

◇ 정관용> 사고 기록?

◆ 변상욱> 사고 기록. 그러니까 교계뉴스화제라고 뉴스 레이더라는 종합뉴스 프로그램을 교계뉴스화제라고 하는 프로그램으로 바꿔서.

◇ 정관용> 이름은 교계뉴스로?

◆ 변상욱> 매일 교계뉴스를 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개신교가 민주화운동의 핵심세력으로 등장했기 때문에 늘 민주화운동 얘기를 할 수 있는 상황이 되는 거죠.

◇ 정관용> 아, 그렇네요. 이름은 교계뉴스인데. (웃음)

◆ 변상욱> 예를 들면 NCC를 중심으로 거기에 인권위원회도 다 있고 한국기독교 사회문제 연구하는 파트도 와 있고 그다음에 청년들 KSCF나 EYC같은 청년 민주화운동가한테까지 다 들어와 있으니까 그게 다 기독교권이었으니까.

◇ 정관용> 그 소식을 전하면서.

◆ 변상욱> 그런데 이틀 하다가 잘립니다. 이틀 했는데 맨 처음에는 교계뉴스를 할 줄 알았더니 맨 민주화 소식 나가고 정부의 농촌 정책과 정부의 주택 정책, 부동산 정책에 대한 문제제기 같은 게 나오니까 이틀만 하고 잘리면서 거기에 담당했던 기자 두 명은 해고시키라고 요청이 내려오죠. 그러나 회사에서는 요리조리 빼돌려서 지켜주고 그랬던 게 있고. 아마 우리 강 이사장님 기억하실 겁니다만 70년대 ‘장군멍군’이라고 하는 시사 가십 프로그램 아주 그냥 날카롭게 뭐랄까요. 촌철살인의 유명한 거였죠.

◇ 정관용> 장군멍군.

◆ 강대인> 장군멍군이 10분 짜리 가십프로그램이었는데요.

◆ 변상욱> 70년대 박정희 정권이 제일 싫어하던 것 중의 하나인데. 그게 세상만사라는 이름으로 80년대 살짝 바뀝니다. 그러다가 또 왜 시사 가십을 하냐 그러니까 ‘눈을 들어 하늘을 보라. 신앙 가십이다’ 거짓말을 해 가면서.

◇ 정관용> 계속 이름을 바꾸는군요.

◆ 변상욱> 이름을 계속 바꾸고 CBS논단이라고 시사적인 이슈를 가지고 대중들을 모아놓고 강연하던 프로그램이 있는데 그거는 또 문화강좌라는 이름으로 바꿔서 교양 프로그램이다 이렇게 해서 계속 모습을 바꾸면서 어떻게든 버텨내죠, 시사 분야에서. 그러다가 이제 제가 막 입사했을 때입니다마는 83년 가을에 ‘월요특집’을 준비하기 시작합니다.

그것은 사실 그 당시만 해도 청취자들이 방송국하고 소통하는 것은 엽서로 신청 사연을 보낸다거나 전화로 신청곡을 얘기해서 신청곡을 틀어달라고 한다거나 그 정도였는데 이건 너무 일방향적이고 하향적인 것이다, 새로운 수평적인 커뮤니케이션이 커뮤니케이션의 대세다라고 하면서 김관석 사장께서 그걸 주창을 하셨어요.

◇ 정관용> 전화 참여 프로그램.

◆ 변상욱> 쌍방향으로 직접 청취자가 언론을 통해서 세상에 하고 싶은 말을 하고. 세상 이야기를 또 청취자들한테 이슈를 전해 주고 해서 일주일에 2시간씩 하던 건데 거기에서 또 사고가 많이 벌어지죠. 예를 들면 ‘전두환으로 시작해서 이순자로 끝나는 그따위 뉴스라든가’ 이런 발언이 나가서 이제 또 제작진이 다 바뀌고.

◇ 정관용> 그때는 사실 군부정권에서 모든 언론 보도들을 다 모니터하고 보도 지침에 의해서 통제하고 하던 그런 시절인데.

◆ 변상욱> 그런 얘기가 나가고 그 다음에 87년 1월에는 박종철 씨 고문치사사건 때 2시간을 준비했다가 정부의 압력으로 방송을 중단시키라는 지시 때문에 간부들이, 아마 그런 지시가 있었겠죠. 간부들이 갑자기 나서서 방송 몇 시간 전에 2시간짜리 방송 못한다, 음악이나 틀자라고 했는데 이제 평직원들이 그럴 수는 없다고 해서 간부들을 또 밀어내고 방송실로. 어떻게 보면 점거농성인데요. 점거농성하면서 생방송을 진행하기도 하는 사건 그런 것들이 계속 이어지면서 오히려 그 암흑기에도 이제 청취자들의 신뢰, 국민의 신뢰는 계속 쌓여가는 거죠.

◇ 정관용> 특히 암흑기일수록 용기 내서 그런 걸 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거나 어려웠을 텐데.

◆ 변상욱> 어떻게 보면 블루오션 아닌가 모르겠어요. 다른 데는 아무 데도 안 하니까 하면 튀는 겁니다.

◆ 강대인> 지금 와서야 이제 이렇게 쉽게 말하지만.

◇ 정관용> 그냥 사고라고 표현하지만.

◆ 강대인> 1980년 언론 통폐합 조치로 CBS의 보도 기능, 뉴스가 없어졌다고 하는 그것으로만 보는 게 아니라 광고방송이 중단돼버렸거든요. 그러니까 1980년까지 CBS가 종합편성을 해서 뉴스, 음악, 오락, 교양 뭐 여러 장르의 프로그램들을 다른 일반 방송하고 똑같이 해 왔던 거였으니까. 그래서 이제 운영비의 거의 90%를 광고에 의존해 왔었어요.

그런데 그 광고 재원이 끊어져버리니까 결국 한국 교회의 후원과 선교 헌금으로 운영할 수밖에 없었으니까 남아 있는 직원들이 물론 그런 프로그램의 어떤 변형을 통한 투쟁도 해야 되지만 정말 허리띠를 졸라매야 되는 그런 어려운 시련의 과정을 7년 동안 거쳐 왔으니까 아마 어쩌면 그것이 광야의 40년하고 비유될 만한 아마 그런 어려운 과정이 아니었을까 생각이 되네요.

◇ 정관용> 그러네요.

◆ 변상욱> 말씀하신 액수가 한 45억 정도의 예산인데 거기에서 90 내지 95%가 광고인데 광고를 갖다가.

◇ 정관용> 못하게 해 버렸으니까.

◆ 변상욱> 중지시켜버렸으니까. 그런데 그러고 나서 3억 원인가 아마 공익 자금이라고 1년에 3억 원을 줬을 겁니다.

◇ 정관용> 정부가?

◆ 변상욱> 그런데 이렇게 사고를 치거나 말썽을 부리면 갑자기 돈이 희석돼버려요.

◇ 정관용> 안 주죠.

◆ 변상욱> 그러면 그게 보너스거든요, 그게. 운영자금도 물론 쓰겠지만 그게 나올 때 겨우 보너스를 조금 떼어주는 건데 보너스가 갑자기 안 나와버리죠. 그러면 이제 동료 직원들은 쳐다보면서 아, 또 저 친구들이 사고 쳐서 말이야, 안 나오는데 이러면서.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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