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산 'E형 간염 소시지'에 대한 불안감이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소시지 원료로 사용될 수 있는 네덜란드·독일산 돼지고기가 올해만 수천톤이 국내에 수입된 것으로 드러나 적잖은 파장이 예상된다.
더욱이 보건당국인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이같은 사실을 알고도 정확한 정보 제공은커녕 인력 부족 등을 이유로 관련 조치마저 미루고 있어, 또다시 당국의 안일한 대응이 화를 키우는 게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 네덜란드·독일산 7400톤 국내 수입…조사는 완제 소시지 12톤뿐27일 식약처와 육가공업계 등에 따르면 8월 초 현재 네덜란드와 독일산 냉동 돼지고기 중 소시지 가공에 원료가 되는 앞뒷다리 부위의 경우 5483톤과 1958톤 등 모두 7441톤이 국내에 수입된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 이 가운데 네덜란드산 돼지고기의 일부는 모 대기업의 가공 원료로 공급된 것으로 알려졌다. 또 일부는 정육점 등과 같은 식육소매상들을 통해 시중에 유통되면서 수제 소시지 등과 같은 형태로 가공됐을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한국육가공협회 한 관계자는 "미국산에 비해 양은 적지만 국내 들여온 일부 네덜란드·독일산 돼지고기가 소시지로 활용되고 있다"며 "두 가지다. 수입 완제품이 있고, 우리나라에서 그 원료로 만든 제품이 있는데, 모 기업 제품은 네덜란드산을 쓰고 있다"고 귀뜸했다.
식약처는 영국발 '간염 소시지'에 대한 공포가 국내로 퍼져나가자, 독일산 소시지 완제품 12톤만 수거 조치와 함께 성분 분석에 착수했다. 하지만 네덜란드·독일산 돼지고기를 원료로 국내에서 가공된 소시지 제품은 이번 조치에서 '쏙' 빠졌다.
그러면서 식약처가 내세운 이유는 추적조사 할 인력 부족과 바이러스 감염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낮다는 것.
식약처 관계자는 "식육이 들어와서 얼마만큼 햄으로 만들어졌고, 소시지로 만들어졌는지 파악하는 건 쉽지 않다"며 "(식육에 대한 조사를) 아예 안하겠다는 것이 아니고, 우선순위를 어디에 두냐는 건데, 현재는 완제품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말했다.
국민 건강권과 직결된 식품안전에 대해 촘촘해야 할 정부 대응에 구멍이 뚫린 게 아니냐는 비판을 피하긴 어려워 보인다.
또한 살충제 계란 파동 당시에도 '오락가락' 발표와 제한된 정보 제공으로 국민의 불신만 키웠던 만큼, 지금이라도 간염 소시지와 관련해 투명한 정보를 제공하고, 적절한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 "저온숙성 가공 방식이나 외부적 요인으로도 옮기 수 있어"아울러 식약처는 국내에서 소시지를 가공할 경우 열처리를 하기 때문에 E형 간염 바이러스가 생존할 가능성이 낮다는 입장이지만, 전문가들 사이에선 이마저도 100% 장담할 수는 없다고 조언했다.
가톨릭대 성빈센트병원 장우임 소화기내과 교수는 "고온처리가 아닌 저온숙성이라면 E형 간염 바이러스가 죽지 않고 남아 있을 수 있다"며 "소시지가 가공돼 나오는 곳 등이 완벽히 고온처리 되지 않으면 바이러스가 전염될 수 있고, 가공자가 이용한 칼 등의 도구와 손에 의해서도 바이러스가 옮겨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여러 가지 소시지 가공 방법 가운데 저온숙성 방식으로 생산된 소시지의 경우 바이러스가 생존할 가능성이 있을 뿐만 아니라, 가공 환경에 따라 얼마든지 외부적인 요인에 의해 바이러스가 옮아갈 수 있다는 얘기다.
이에 바이러스에 감염됐을 가능성이 있는 네덜란드·독일산 돼지고기에 대한 추적 조사가 불가피하다는 지적이다.
E형 간염은 건강한 사람의 경우 감기와 비슷한 증상을 보이거나 설사·황달 등을 앓고 지나가지만 면역력이 약한 임산부 등에게 감염되면, 치사율은 20%, 유산률도 30%까지 올라갈 정도로 위험한 질병이다.